프리즘

지난 여름에는...

묵향의 이야기 2008. 12. 7. 15:37

잠을 잊은 깊은 밤에 길을 걸었습니다.

한동안 먹구름으로 가려졌던 밤하늘에는

이제 달님 별님이 미소를 짓고 있습니다.

지겹던 여름은 지나가고 가을이 찾아 왔습니다.

 

하지만 이미 오래전 사색의 여백을 잃어버린 채

뼈 속에 갇혀 뇌파를 일으켰던 물렁물렁한 뇌는

단단히 굳어버려 더 이상 아무 것도 만들어내지 못합니다.

 

세상의 아름다운 모습을 담았던 나의 눈동자는

동태눈깔이 되어 망막을 검은 커튼으로 가리고 말았습니다.

 

바람소리 새소리를 담았던 귓구멍은

찌든 때로 가득 차버려 귓가에서 흘려버리고 말았습니다.

 

볼 수도 들을 수도 없는 내 혀는

목구멍 깊숙이 말려들어 한 마디 말도 못하고 말았습니다.

 

잠시 햇빛을 피해 찾아 들었던 그늘은

세상의 눈빛에서 나를 못 찾도록 꼭꼭 감추고 말았습니다.

 

감미로운 눈망울은 분노의 빛을 띄우고

달콤한 귀청은 금속파열음으로 가득 차버렸고

부드러운 혀끝은 통곡이란 단어 하나만을 되풀이하고 맙니다.

 

파란하늘을 가린 어둠속은 이미 떠날 수 없는 곳이 되었습니다.

빈자리를 채워보려 했던 니코틴은 이미 폐속을 가득 메워버렸고

흔들거리는 세상에 맞춰보기 위해 적셔 보았던 알콜은

나의 이성과 육신을 길거리에 곤두박질쳐 버렸습니다.

 

더 이상의 호기심도 없고

 

더 이상의 꿈도 사라져 버렸고

더 이상의 삶의 의욕도 내팽기쳐 버린

지난여름은 잔혹한 날들이었습니다.

 

풀 한포기 못자라는 사막의 먼지바람으로

나의 가슴이 가득 차 버렸던 날들이었습니다.

 

 

그렇게 나의 영혼이 죽어가고 있기에,

나의 몸도 그렇게 죽어가고 있었던 것입니다.

이렇게 나는 지천명의 나이를 맞이하고 있는 것입니다.

 

0709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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