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리즘

겨울 속 삶

묵향의 이야기 2021. 7. 29. 13:31

다음 달 말이면 장학회를 만든 지 23년째가 된다. 설립할 때는 무척 높은 이자율이었기에 지역 내의 이삼십 명의 중고교생들에게는 많지 않은 장학금이나마 여유 있게 지급할 수 있었지만, 이제는 턱없이 부족하여 해마다 장학회 이자보다 더 많이 나의 통장에서 꺼내어 보태고 있다.

 

하지만 때때로 장학금신청서와 자기소개서를 살펴보면 미안한 마음을 억누를 수 없을 때가 많다. 일주일 전에 봤던 80대 조부모와 살고 있는 초교 6학년 소녀의 이야기도 내 양심을 들쑤셔 놓았고, 십이 년 전 네팔 트레킹에서 무심히 스쳐 지나쳤던 산골소년의 모습이 아직까지도 내 눈에 아른거리고, 나의 자식들에게 꼭 읽어보라며 건네주는 어려운 아이들의 삶의 애환 고통 좌절은 메마른 눈물일지라도 내 얼굴을 적시곤 했다.

 

지난 주 화요일에는 20년을 마주 바라보던 진돗개가 땅 속에 묻혔고, 어제는 여기 농원을 지켜 오셨던 40년 한솥밥 할아버지께서 작은 항아리에 담긴 채 수목장에 안치되셨다.

 

너무도 춥다! 살아있기에 바동거려야만 하는 삶이라는 것은 무엇이며, 아무리 풍요로운 세상이 되었다 할지라도 빈곤이 풍요보다 더 널리 퍼져있는 현실은 무엇이며, 존재와 비존재의 경계선에서 떠나는 자의 고통과 떠나보내야만 하는 자의 창자 끊어지는 애통함은 무엇인가? 춥다 추워!

 

그나마 꺼져가는 숯불의 따스함을 오늘 느낄 수 있었다. 배려에 대한 메아리의 편지 한 통! ‘나’와 ‘너’가 내가 내민 작대기 하나를 반쯤 걷어 들이고, 너의 움츠린 작대기 하나를 내가 반쯤 받아들인다면, 결국 너와 나는 하나인 것을!

 

오늘 내게 한 통의 감사 편지를 보내 준 그 학생의 신청서와 자기소개서를 들춰봐야겠다. 오늘 그 편지를 나의 아이들이 볼 수 있도록 식탁에 펼쳐놔야겠다.

 

부모의 마음은 자식들이 행복하게 살아가길 바라는 것일 터이니, 세상은 춥다 말고 따스하다고 보여줘야 할 테니!

*******

 

“길거리에서나 주위에서 형편이 무척 어려운 사람들을 대하게 될 때마다, 무심히 지나쳐 버리던 나의 모습이 스스로 부끄러울 때가 많았다. 아버지의 뜻을 받들고, 늘 나의 가슴 속에 드리워져 있던 어려운 이들에 대한 죄의식을 다소간 씻어낼 수 있을 거라고 생각했다. 내 놓은 것이 아니라, 마음의 기쁨으로 되돌려 받는 것이었다.

하지만 ‘아껴 써라, 헛되이 낭비하지 말라’는 숱한 말씀 속에서 자랐던 내게는 아버지께 장학재단을 설립하자는 청을 드리는 것 자체가 커다란 고민거리였다. 생활에 별다른 어려움 없이 살아온 나였다. 그런 내가 아버지의 재산을 갖고 세상 사람들에게 선심을 쓰는 척하느라 장학재단이나 만들자고 철없이 떼쓰는 모습으로 비춰질까 걱정이 되었던 것이다.” <2002년 저술한 선친 추모록 중>

 

2018년 2월 12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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