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리즘

물까치와의 전쟁

묵향의 이야기 2021. 7. 29. 20:03

지난주부터 여기 하늘아래정원의 집 현관 앞에 차를 세우고 차에서 내려 몇 걸음 옮기려 하면, 여지없이 푸드득 소리를 내며 뒤에서 새 한 마리가 내 머리를 가까이 스치고 날아간다. 날이 밝아오면 내가 출근하기를 기다리며 어느 나뭇가지에 앉아 있었던 모양이다.

 

잔디밭에 나가 망중한을 즐기려 현관문을 나서면 또다시 기다렸다는 듯이 뒤에서 내 머리를 향해 쏜살같이 달려든다. 날카로운 부리에 상처를 입기 싫어 어쩔 수 없이 이 더위에도 긴 팔 웃옷을 입고 목도리를 두르고 승마용 헬멧을 뒤집어 쓴 채 산책을 해야 한다. 잠시 차에 물건을 꺼내려 갈 때는 빗자루를 하늘 향해 흔들며 나서야 하니, 이곳이 내 집인가 새들의 집인가?

 

결국 참다못해 나는 그제 반경 30미터에 있는 나무들을 샅샅이 훑었다. 이곳은 거의 30년 전에 심어졌던 향나무 단풍나무 벚나무 등등이 제법 울창한 숲처럼 모습을 갖추고 있다. 게다가 작은 연못과 개울을 만들어 놨으니 새들의 천국이 아닐까? 예쁘게 지저귀는 새들의 목소리는 내게 달콤한 선율보다 더 큰 행복을 안겨주지만, 5월 중순 이쯤의 물까치들의 괴성은 아수라장의 그 현실이 되어 버린다.

 

물까치는 십 여 마리 이상 무리생활을 하며 학습능력도 다른 종에 비해 우수하며 특히 번식과 육아 때는 매우 공격적이란다. 이는 벌써 몇 년째 내가 실감하고 있는 터! 때문에 들 고양이가 이곳을 찾으면 땅 가까이까지 무리를 지어 공격하는 물까치들 때문에 낮은 꽃나무 가지 속에 숨어서 쩔쩔매곤 하고, 전에는 여러 마리의 고양이들이 한가로이 물가에 앉아 햇빛을 쐬고는 했는데, 이제는 어쩌다가 한두 마리만 찾아온다.

 

저 아래 향나무 숲은 제쳐두고 현관 근처만 뒤졌는데도 3미터 장대 높이에 숨겨놓은 다섯 개의 둥지를 찾았다. 그래서 그토록 짹짹 새끼 소리, 깍깍 어미 소리가 내게 소음 공해로 찾아왔던 것이다. 하지만 어제 오늘 출근길에도 나는 두려운 마음을 떨구지 못하고 차에서 발을 땅에 내딛어야 했다. 오전 운동을 갔다가 빗자루를 머리 위로 흔들며 현관으로 가려는데, 차를 세워놓은 그 자리 바로 옆 소나무 아래에 아기 새 한 마리가 앉아 있었다.

 

작년에 구입했던 새총을 며칠 전부터 현관 밖을 나설 때는 손에 들었다. 작은 조약돌을 물까치가 앉아 있는 나뭇가지 끝으로 날려보지만, 그 돌은 나뭇가지에 맞아 오히려 내게 되돌아오고 물까치는 다른 나무로 날아갔다가 내가 뒤돌아서면 여지없이 내 뒤통수를 향해 달려들었다. 학습효과가 뛰어난 물까치라고 하였으니, 이렇게 헛방 새총 질이라도 하면 내년에는 이 근처에 둥지를 틀지 않으리라 기대하며 고무줄을 당겼다가 놓았던 것이다.

 

날지도 못하는 아기 새가 땅 위에 앉아 있어서 그런지 이모 고모 삼촌 오촌 아줌마 아저씨까지 다 모여 있었다. 고개를 숙이고 빗자루를 하늘 향해 허공에 흔들며 현관으로 들어서서 새총을 들고 고무줄을 당겼다. 차에서 운동복 가방은 갖고 나와야 하는 것 아닌가? “아냐~ 날지도 못하는 새끼가 땅에 있으면 바로 그 나뭇가지에 둥지가 있는 거야!” 나는 머리에 헬멧을 머리에 뒤집어쓰고 중무장을 한 채 장대를 들고 그 소나무 아래에 서 보니!

 

난리도 이런 난리가 아니다. 현관문을 한쪽 방패삼아 새총을 연신 당겨 본다. 시간이 지나고 조약돌에 맞은 이파리가 여지없이 떨어지는 그 위력에 놀랐는지 이모 고모 당숙들은 물러나고 한 마리만 내게 달려든다. 몇 십번을 헛방 날렸던가? 하지만 소가 뒷걸음치다가 쥐를 밟았다고 하듯 날아드는 돌멩이를 피해 날던 그 새가 이파리를 스쳐 지나가는 그 돌에 맞고 땅에 떨어졌다. 쩔뚝쩔뚝 땅 위를 뛰면서 풀 속으로 달아났다.

 

이제는 헬멧을 안 써도 될까? 이제는 하늘을 향해 빗자루를 흔들며 오가지 않아도 될까? 나도 사이좋게 서로를 바라보며 지내고 싶다. “목마르면 언제든지 찾아와 물을 마셔도 좋아. 큰 벚나무의 버찌를 마음껏 따 먹어도 좋다. 앵두 오디로 한껏 배를 채워도 좋아. 제발 이곳에 둥지를 틀지 말아다오! 여기는 나의 안식처이니, 빗자루를 흔들고 헬멧을 쓰고 나의 하늘아래정원을 걷고 싶지 않아! 너와 나의 싸움은 올해로 마무리하자! 저 아래 향나무 그리고 길 건너 산 나무들도 너희들 몫이니 그곳에 머물러! 더 이상 너희들에게 미안하지 않게 해 다오!”

 

2019년 5월 23일

 

나를 공격하기 위해 나뭇가지에서 수직하강하고 있는 물까치

'프리즘' 카테고리의 다른 글

변신  (0) 2021.07.30
해탈  (0) 2021.07.29
걸어야만 하는 삶  (0) 2021.07.29
겨울 속 삶  (0) 2021.07.29
제삿밥  (0) 2021.07.2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