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weet home

방백

묵향의 이야기 2007. 3. 17. 14:53
 

  이년 전에 아들에게 뺏긴 나의 방에서 쏘주와 고기 몇점을 안주 삼아 앉아 있다.   통이와 술희는 일키로 떨어진 장모에게 맡겨 버렸고, 이십일간 누워 있는  아내는 마지 못해 발 끝에 앉아 그녀의 발을 주무르는 나의 손길에 꿈 속으로 빠져  버렸고, 앞 뒤 창문 활짝 열어 제낀 32평 좁은 아파트 한 구석에 앉아 제목 알 수 없는 클래식 선율로 집 안을 가득  채운 채 모든 불을 끄고 촛불 하나에 의지하며 나는 술 속 그 자유를 만끽하고 있다.

  아마도 거의 일년을 지났으리라...  이 자유의 향내음 느낀지도...   그저 밀려 오는 공허감을 채우기 위해 이 자리에 앉았지만 또 다시 헝클어진 사고 속에  빠지고 만다.  마냥 자유로웠던 잠시 전의 사고는 세상이란 거울 앞에서 움추려 들고 말았다.   그냥 떠들고 싶었다.

  불과 30여분 거리에 따로 계신 아버지는 지금 무엇을 하고 계실까?  잠에서 깨어나 무료한 시간을 지우기 위하여 여기 저기 서랍을 뒤지고 계시리라...   몇 걸음 걸어 보지도 못한 채 20여일을 남편의 욕심을 채워 주기 위하여 그냥 마냥 침대에 누워 있는 아내는 그저 그렇게 잠들어 있다.  아마도 통이는 장모 집에서 오락에 빠져 있으리라...   술희는 내일을 위해 가벼이 이불을 안은 채 백설공주가 되어 있으리라.   나는 술 속에 빠져 있고...

  마음 속 세계에 애인을 만들어 봄도 너무  좋을 것 같다.  나 만나고 싶을 때 만나고 나 홀로 있고 싶을 때 한껏 고독 즐기고 애써 무엇을 하고 있는지 눈길을 주지 않아도 되고 그녀을 기쁘게 하기 위하여 난 고통을 인내하지 않아도 좋고...   말 없는 그녀를 가슴에 새기면서 한껏 그리워 하고 싶다.  그녀에게 속삭이고 싶다.   그녀 가슴에 묻혀  있고 싶다.  시간을 내어 주지 않는 그녀를 원망하지 않아 좋고 매정하기만 한 그녀의 목소리 더 이상 듣지 않아서 좋고 나의 가슴 에이며 눈물 앗아가는 그녀을 애초에 지울 필요 없어 좋고...

   잠시 평온의 유리창이 깨져 버렸다.  침대에 누워 있던 아내의 나를 찾는 외침  - 그 외침에 나의 자유는 깨져 버렸다. 

  에고 결론이 없구나.   애초에 결론을 내림은  아니었지만, 이 정도 방백으로 만족하지는 않을 것이었는데..   아뭏든 밖에는 늦은 봄비로 세상을 씻어 내리고 있고. 라디오에서 흘러 나오는 선율들은 나의 눈꺼풀을 더욱 무겁게 한다.

  잠시 쉬련다.                                                     오월 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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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틀이 지났나?  삼일이 지났나?  아니구나...  어제였구나!  아내와 함께

병원을 갔었고, 유산을 권하는 의사의 얼굴 보기 싫어 문을 박차고 나와  애궂은

담배만 빨아 대었고, 아내는 몸조리를 위해 장모집으로 가 버렸다.  어제는

만취되어 나의 존재를 잃어 버렸었다.

  편하다.  베라다에 나가 담배를 피지 않아서 좋고, 앞 뒤 유리창 열어 제끼어

안팎의 세상을 넘나 들 수 있어 좋고, 나신이 되어 쏘주 한병과 볶음김치 들고

이 방 저 방 오갈 수 있어 좋다.  게다가 오늘은 폼잡고 씨디에서 클래식을 끌어

내어  나의 보금자리를 가득 채우고 있다.

  행복이 이런 것 아닐까?  걱정 욕심 떨구어 내고, 털고 싶은 말들 꺼내 버리고,

의자 흔들 흔들거리며 그저 망중한으로 있음도 행복 아닐까?  오늘은 모든 것을

비우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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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자야겠다.  홀로 있음의 자유 보다는 육신의 피곤이 앞서니...


                                   9906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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