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방부 시계는 그래도 돌아간다는 말이 있었지.
하지만 국방부 시계보다 더 빨리 돌아가는 것이 삶의 시계인 것 같구나.
아빠도 그렇게도 멀리만 느껴지던 50대 아저씨를 넘어선지도 벌써 두해가 지났구나.
그리고 입영하는 아들을 조마조마하는 마음으로 바라본 지도 이미 4개월이 지나
다음달이면 휴가를 나온다 하니 삶의 시계, 국방부 시계 모두 정신없이 돌아가는군.
할머니를 따라 1년도 채 안되어 돌아가신 할아버지 10주기가 바로 지난 1월이었단다.
그동안 명섭이와 아빠가 함께 아프리카 여행을 갔던 때를 빼고는
항상 할아버지 제삿상과 명절 차례상에 명섭이 네가 잔을 올리곤 했는데,
올해는 정훈장교님이 찍어 올려주신 사진을 차례상 옆 컴에 올려놓고
멀리서나마 인사를 드리게 해야만 했단다.
예년처럼 차례 모시고 작은고모네와 함께 팔당에 성묘 갔다가
저녁에는 이젠 홀로 계신 외할머니를 모시고 큰고모 작은고모 가족 모두 모였지.
함께 윳놀이를 하다가 심뽀를 잔뜩 부린 막내 현주가 호되게 꾸지람을 받기도 했단다.
어이 우리 아이들은 심통 심술 심뽀가 센지~ 모두 아빠 잘못인 것 같다.
갓 결혼해서 아빠 직장 동료들에게 그런 얘기를 했단다.
나는 아이들을 이렇게 이름을 지워 주겠다고...
첫째 나으면, 세상만상 형통하라고 형통할 '통'
둘째 나으면, 재주 많은 아이 되라 재주 '술'
혹이라도 셋째 나으면, 정말 보배같은 막내가 될테니 보배로울 '보'를
붙이겠다고.
그래서 너를 비롯해서 세 놈들이 모두 한 심통 심술 심뽀 하는 것 같구나.
설날 어둠이 찾아올 때까지 네게서 일주일이 다 되도록 전화 한통 없기에
은근히 걱정되던 차에 반가운 전화벨이 울리더군.
또다시 새로이 함께 하게 된 후배 2명을 비롯해 너의 후임이 3명이 되었다는
이야기가 처음에는 무척 반갑게 들렸지만, 이내 아빠 마음에는 걱정이 앞서게 되더구나.
아마 곰곰히 생각한다면 너도 이해할거다.
네가 마냥 어릴 때는 그저 엄마 아빠의 얼굴만 바라보아도 되었지만,
4년 밑의 현지 그리고 12살 아래 현주가 너와 함께하게 되었을 때부터는
너는 가장 큰 오빠로서의 역할이 새롭게 주어졌었지.
세상 살아가면서 흔히 윗사람에게 잘보이면 출세한다는 이야기도 있지만,
더 큰 삶의 성공은 아랫 사람에게서 존경받는 사람이 될 때 비로서 완성되는 것이라 생각한다.
불과 얼마 차이 안나는 시간의 후임들이기에 조금더 시간이 흐르면
너보다 삶의 경륜이 더 많거나, 좀더 현명하게 세상을 헤쳐가는 후임들이
자신의 직분과 군 조직의 역할을 모다 충실히 이행할 수도 있는 상황이 생길 수도 있다.
그러나 아빠는 나의 아들 명섭이를 믿기에 위계질서가 절대적인 군에서
선임으로서의 너의 역할을 충실히 이행하게 되리라 믿는다.
선임의 역할은 짠밥의 그릇수가 결정하는 것도 아니고 작대기의 숫자가 결정하는 것도 아니다.
결국 솔선수범이 있어야 후배들에게서 진정한 선임에 대한 예우가 생기는 것이겠지.
무엇이 솔선수범일까?
결국 너의 직분에 충실하고 그 충실을 바탕으로 실력을 갖춰야 할테고,
편함과 안주에 머물고 싶어하는 나태함을 떨구고,
네가 해야 할 일들을 우선으로 이행해 나갈 때,
비로서 솔선수범이란 것이 네게서 빛을 발하게 될 것이다.
네 인생에는 앞으로도 올라가야 할 계단이 무척 많이 남아 있다.
한 두 계단은 뛰어 넘을 수 있을지 몰라도
아래에 있는 계단을 제대로 밟고 올라서야만
결국 더 높은 계단에 발을 내딛을 수 있는 것이다.
군에서는 적당히 중간만 가라는 말이 있다.
아랫 계단을 허술하게 밟고 나면
윗 계단에 발을 내딛을 때 그만큼 또다른 노력이 요구된다.
현재의 안주는 필연적으로 다음의 댓가를 요구하게 된는 것이다.
아빠는 2년여의 짧은 군에서의 너의 편안함을 위해 말하는 것이 아니다.
네 삶에서 보다 나은 길을 꿈꾸고 싶다면,
편안함에 안주하지 말고 주어진 일을 넘어서 찾아 나서라.
설사 실패가 따를지라도 그렇게 네 직분을 다해 나갈 때,
위로부터 사랑을 받고 아래로부터 존경을 받고,
더 나아가 다음에 만나게 될 네 삶의 디딤돌이 견실해질 것이다.
엄마 아빠가 아무리 너희들을 감싸 준다 할지라도
세월은 결국 너희들 자신만의 몫으로 남게 된다.
그저 부모는
환히 웃으며 행복하게 살아가는 자식들을 바라 볼 수 밖에 없는 것이다.
네 인생은 너 자신이 헤쳐 나가야 하는 것이다.
어떤 길이 가장 올바른 길인지 내산리에서 배워오길 바랄 뿐이다.
군복입고 처음으로 현관문을 들어서는 너의 모습을 그려본다.
그리고... 후임들을 자상히 보살펴 주는 너의 모습을 그려본다.
편한 밤 되렴!
'sweet home' 카테고리의 다른 글
아들의 생일... (0) | 2010.03.10 |
---|---|
감춰졌던 현주의 편지 (0) | 2010.03.09 |
찢겨진 현주의 꿈과 몇 장의 사진들... (0) | 2010.01.12 |
아들과의 첫 외박 (0) | 2010.01.03 |
산타할아버지 이야기 (0) | 2010.01.03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