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름 따라 길 따라

아이슬랜드 오로라 여행 (2015년 2월 22일~3월 6일)

묵향의 이야기 2017. 8. 13. 16:45

아이슬랜드의 추억 (2015년 2월)

 

Shall we dance?

 

그녀가 내 앞에 나타나 준다면,

나는 손을 내밀 것입니다.

“함께 춤을 추실까요?” 라며!

 

별을 헤아리게 된 이후로 몇 십 년 동안 동경하던

그곳을 이제 며칠 뒤에는 발을 내딛게 됩니다.

평생 한 번 갈까 말까하는 연회 장소이지요.

운이 좋다면 무도회도 열린답니다.

 

그녀의 환상적인 춤사위 모습을 담기 위해

여행 가방을 항상 채워왔던 소주를 빼내고

캠코더 그리고 카메라 2대와 삼각대 3개를 넣었어요.

 

세상을 환히 비추던 조명이 시나브로 꺼지면

그녀는 저기 북쪽 하늘 끝에서 불현듯 날아 올 겁니다.

 

왈츠의 부드러운 곡이 내 입술을 스쳐갈 지

플라밍고의 신바람 난 선율이

내 얼굴을 어루만질 지 알 수 없지만,

내 몸은 그녀를 품고 저 하늘 아래에서

가장 아름다운 몸짓을 함께 펼치게 될 것 같아요.

 

매일 매일 기다리던 마음은

어느덧 사랑이 되어 버린 것 같아요.

무대의 장막이 그녀의 모습을 끝내 볼 수 없게 만든다면,

아마도 나는 목 놓아 울어 버릴 지도 몰라요.

그 얼마나 오랫동안 기다리던 만남인데!

 

혹시라도 내가 이곳으로 다시 돌아오지 못한다면,

나의 혼을 빼앗는 그녀의 손을 잡고 춤을 추다가

북쪽 오로라 여신의 나라로 이끌려 간 줄 아시구려.

아니면 그녀의 눈빛에 나의 심장이 멎은 줄 아시구려!

 

2015. 2. 16. 출발 전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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집은 나선 지 30시간이 경과되었는데

아직도 아이슬랜드 땅을 밟지 못하고 있다.

 

지금은 스웨덴 스톡홀름 공항 호텔에서

동터 오는 아침을 방의 창을 통해 맞이하고 있다.

 

앞으로도 8시간이 지나야

아이슬랜드 땅에 발을 내딛게 될 거다.

 

아~ 오로라 여신을 마주하는 길이

이리도 멀고도 멀다!

 

2015년 2월 23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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춤바람 나지 말라고,

그 미소에 내 심장 멈추지 말라고

신비한 모습 보여주지 아니하는 여신!

고마워해야 하나? 야속해야 하나?

 

어제 오늘 아이슬랜드의 하늘은

먹구름으로 잔뜩 찌푸리고 있다.

게다가 거센 바람은 저 파도로 하여금

일행 중 2명의 중상자와 다수의 경상자를 만들어 버렸다.

 

두 명은 파도를 뒤집어쓰고

카메라와 온 몸을 바닷물에 세탁했고,

나머지 경상자들도 신발과

아래 바지의 묵은 때를 씻어냈다.

 

아름다운 여인을 품에 안고

저 하늘에서 춤을 추는 것이

이토록 힘든 것인가?

 

2015년 2월 25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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꿈과 낭만은 사라지고,

현실만이 나를 짓누르고 있다.

 

거센 폭풍으로 도로가 폐쇄되어 버렸다.

사람도 차도 바람을 피해 숨어 버려야 했지만,

차량 세 대 중 두 대가 일부 파손되고 말았다.

 

7시간 동안 휴게소 신세를 진 뒤

얼마 전에 게스트 하우스에 도착했다.

 

밤하늘은 여심처럼 변덕이 심하다.

별빛이 보였다가는 이내 눈발이 내린다.

 

오로라 여신의 미소가 그리워 유빙 해변으로 나갔지만

결국 허탈한 마음에 숙소로 되돌아 와야 했다.

 

2015년 2월 26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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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슬랜드를 그림으로 그려 달라면, 하얀 도화지 한 장을

그냥 건네 줄 것입니다. 나무가 거의 없는 산과 들을

하얀 눈이 온통 덮었고, 거센 바람이 눈보라를 일으켜

파란 하늘을 가렸기 때문이지요.

 

도착 첫날부터 바람의 여신은 우리 일행을 열렬히 환영하여

주었습니다. 대서양 해류 때문에 비교적 춥지 않은 곳이지만,

매서운 바람결은 여신에 대한 경외감에 온 몸을 움츠리게

만들었지요. 그리고 여정 중 두 번을 바람의 여신의 열정적인

포옹을 피해 휴게소에서 몇 시간씩이나 대피해 있어야만

했습니다. 그 여신의 입김은 일정 내내 먹구름을 몰고 와

오로라 여신에 대한 알현을 계속 방해했지요. 분명 아이슬랜드

바람의 여신은 무척 심술 많고 질투가 심한 것 같습니다.

 

그런데 오로라 여신만 있다고 믿고 갔던 우리들에게 바람의

여신보다 더 고약한 여신이 다가섰습니다. 바로 파도의 여신

이었지요. 이틀 째 날, 백사장에서 바람의 여신이 몰고 온

눈발을 맞아가며 새로운 세상을 렌즈에 담고 있는데,

반갑다며 달려든 파도의 여신이 두 명을 카메라와 함께

그만 바닷물에 목욕재계하게 했고, 여러 명의 바짓가랑이까지

젖게 했지요. 그 뿐만 아니었어요. 유빙 해변에서 오로라 여신을

알현하기 위해 기다리고 있는 일행들을 볼링공이 핀을 넘어

뜨리듯 덮쳐서는 17개의 핀 중 4개의 핀을 줄줄이 쓰려 뜨려

카메라와 함께 수장시켜 버렸지요. 참으로 아이슬랜드 여신

들의 심보는 고약하기만 했어요.

 

하지만 정말 댄스는 참~ 잘 추고 왔네요. 바람의 여신의

유혹에 이끌려 이리저리 스텝 밟고 요리조리 몸을 비틀었지요.

그리고 파도 여신은 우리를 밀고 당기고, 앉혀다 일으켰다

전신 운동을 시키며 춤사위의 기본부터 가르쳐 주었지요.

결국 일정을 바꿔가며 기다렸지만 두 여신에게 혼이 빠져

오로라 여신의 미소를 마주하리라는 기대는 포기하고 말았어요.

 

아이슬랜드 출국 전날! 공항 근처로 가는 중에 큰 버스도

작은 승용차도 길가로 미끄러져 나가 버린 모습을 거세게

흔들거리는 승합차에서 바라봐야만 했습니다. 그나마 바람

그리고 파도의 여신의 프러포즈를 살짝 피해갈 수 있었던 것을

다행이라 생각하며, 비록 하룻밤이었지만 아이슬랜드에서

가슴 터지도록 행복했던 그 순간을 되새기며 마지막 날 밤

귀국길 짐을 챙겨야 했답니다.

 

2015. 3. 4. 귀국 전전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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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이저 빔을 쏘아 올리듯 남쪽 하늘을 향해 불쑥 모습을

드러냈다. 며칠 동안 먹구름 하늘의 장막이 가려져 마주할

수 없었던 오로라 여신이 드디어 아이슬랜드의 밤하늘을

수놓기 시작한 것이다.

 

그냥 길쭉하게 남쪽을 향해 뻗어 있던 빛줄기는 서서히

나래를 펼치는가 하더니, 오작교 위에서 연인이 만나듯

남극과 북극을 한 줄기 빛으로 이어 버렸다.

 

그녀의 모습을 담기 위해 타임을 벌브 모드로 놓고

“하나 둘 셋...” 숫자를 세기 바빴다. 그러나 더 이상 릴리즈를

손에 쥐고 있을 수 없었다. 끊임없이 펼쳐지는 여신의 율동을

쫓아 바라보려 하니 내 몸 또한 제 자리에 멈춰있을 수 없었던 것이다.

 

그냥 얼음판 위에 벌렁 누워 하늘을 바라보니, 여신의 무희가

새색시 첫날 밤 옷고름 풀 때 가슴이 부풀었다가 오그라지듯

하니, 내 심장이 멈출 것 같아 차라리 고개를 돌려 버린다.

 

그녀가 치마폭을 펼친다. 살짝 열린 창문으로 들어오는 바람결에

흩날리는 속치마가 내 얼굴 위를 스쳐 지나가듯 하니,

내 숨결은 가빠지기 시작한다.

 

더 이상 바라볼 수 없어 차라리 눈을 감아 버렸다. 비로써

나는 여신의 손에 이끌려 보석처럼 깔려 있는 별들을 밟으며

춤을 춘다. 그녀의 “Shall we dance?" 그 한 마디에

나는 세상을 잊고 하늘을 날고 있다.

 

기진해 버린 나를 배려하기 위해 잠시 모습을 감추었다가는

또다시 유빙 해변에 모습을 드러낸다. 나를 잡고 있던 손을

놓고서는 독무대의 화려한 댄스를 펼친다. 내 귀에는 천상의

천사들의 코러스도 들려온다.

 

열흘 간 아이슬랜드 밤하늘을 바라보면서 단 한 번 오로라

여신을 마주했건만, 귀국길 짐을 싸면서 그 것만으로도

더 이상 채울 수 없는 행복을 되새길 수 있었던 것이다.

 

그냥 떠나보내기 미안했던지, 마지막 날 밤 여신은 그녀의

시녀를 보내 또 다시 북극 나라의 무도회를 펼쳐 보여

주었다. 그 여정의 추억은 이제 잠결 속 꿈으로 이어지고 있다.

그 꿈은 남미 여행의 꿈으로 이어진다.

 

수 없이 많은 사람들이 살았던 삶의 여정을 나 또한 밟아

가고 있지만 나는 매일매일 새로운 세상을 살아가야 하듯,

내 발을 내딛지 못한 그 곳을 향한 새로운 꿈을 꾸고 있다.

 

2015. 3. 9. 귀국 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