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름 따라 길 따라

코타키나발루

묵향의 이야기 2021. 7. 29. 13:44

말레이시아의 한쪽 끝에 있는 코타키나발루에 드디어 발을 내딛었다. 12년 전 아프리카 여행 팀과 갈 기회를 외면했었고, 재작년에는 딸의 훼방으로 대만으로 행선지를 바꿔야 했고, 고심 끝에 일정과 여행사를 확정했건만 몇 만원을 아끼겠다며 부분적인 일정을 현지 여행사를 통해 예약하겠다는 아내의 성화에 뒤늦게야 코타키나발루의 여행 계획을 확정하게 됐다. 현지 가이드들 사이에 코딱지발루라고 불릴 만큼 좁은 지역에 다양한 숙소와 많은 여행 상품들이 있기에, 패키지 여행사를 선정하기도 힘들고 여행사마다 각기 제시한 일정을 고르는 것도 혼란스럽기에 지금까지의 어떤 여행보다도 힘들게 출발하게 되었다.

 

여행 상품의 가격도 천차만별인데, 그 차이는 숙소와 선택 관광의 포함 여부이고 결국 국내 여행사를 통해 전부 패키지로 엮어 갈 경우는 그 금액은 대동소이한 것 같다. 한편 숙소와 비행편만 여행사를 통하고 현지에서 관광 상품을 찾아 나설 경우 비용을 절약할 수 있지만, 국내 여행사의 현지 가이드를 통할 경우는 오히려 출발 전에 사전 예약을 하고 가는 것보다 더 비싼 지출을 할 수 있다. 한편 일부는 국내 여행사 그리고 일부는 현지 한국 여행사에서 예약하면 가장 저렴하게 코타키나발루를 즐길 수 있지만 일정 진행의 불확실성 등 많은 불편과 예상치 못한 손실이 발생할 각오를 갖고 출발해야 할 것 같다.

 

결혼 30주년 기념으로 떠나는 여행이기에 숙소 선정에도 많은 신경을 썼는데 결론은 샹그릴라 탄중아르 리조트를 가장 추천(비쌈)하고, 자동차로 십 분 거리에 있는 마젤란(또는 퍼시픽) 수트라하버 리조트(비쌈)가 그 다음 순위로 생각되었다. 애초에 넓은 백사장의 일몰 사진을 담고 싶었던 나는 샹그릴라 라싸리아 리조트를 찾으려 했지만 결국 수트라하버에서 머물게 되었는데, 라싸리아는 시내에서 50분 거리에 위치해 있고 같은 샹그릴라의 탄중아르보다 수영장 등 유희시설이 부족한 반면 대체로 서양사람들이 즐기는 휴양 즉 독서 사색 등의 한적한 휴식의 시간을 갖기는 좋은 곳이었다.

 

코타키나발루의 관광상품은 크게 보르네오 리프(폰톤)이란 섬 가까운 바다 위에 설치해 놓은 구조물에서 스노쿨링(무료)과 다이빙 씨워킹 패러세일링 바나나보트 등 해양 스포츠(유료 선택)를 즐긴 후 작은 섬의 작은 모래사장에서 자유 시간을 갖는 상품과 강에서 보트를 타거나 산책로를 따라 걸으며 반딧불이의 작은 불빛 속삭임을 가슴에 간직하는 상품 또는 동남아 최고봉의 장엄한 모습과 캐노피 체험 및 온천욕을 즐길 수 있는 키나발루(코타+키나발루)로 향하는 상품을 주된 것으로 꼽을 수 있다. 그리고 마지막 날에는 시내 관광(별 것 없음)과 쇼핑센터 방문을 한 후 탄중아르 근처에서 석양을 보고 야시장을 들린 뒤 특별하지 않은 저녁식사를 하는 일정으로 마무리하게 되는데, 삼 일 일정으로는 더 많은 관광 상품을 선택하기에 무리가 있다.

 

아내와 나는 마젤란 수트라하버 리조트에 머물렀는데, 십 여 분 걸어 갈 수 있 수 있는 퍼시픽 수트라하버 리조트의 물놀이 시설(아이들을 위한 시설)를 사용할 수 있지만 샹그릴라 탄중아르 리조트에 숙소를 정하면 다양한 해변 카페와 수영장을 이용할 수 있을 것이다. 우리는 첫 날 자유일정으로 국내 여행사에서 예약하고 가서 사전에 현지 여행사에 예약한 보르네오 리프(스노쿨링, 스쿠버, 패러세일링 등)에서 해양스포츠를 즐긴 후 근처 사피섬에서 잠시 여가를 보내고 숙소로 귀가했다. 국내여행사의 사전 예약보다 비용은 저렴(스쿠버 기준 국내 예약은 110달러이지만 그곳에서 현지 구입은 280링킷 8만 4천원 지출)했지만, 현지인과의 접촉 등 다소간의 어려움을 겪어야만 했다. 그리고 4시 쯤 숙소로 돌아와서는 택시를 타고(25링킷. 시내 구간에서는 대체로 그 정도 지불해야 함) 샹그릴라 탄중아르 리조트를 석양과 그곳 시설물을 보기 위해 찾았다. 역시 사전 정보처럼 적절히 전경과 석양이 어우러진 풍경과 추억을 가슴에 담을 수 있었다. 참고로 정차 또는 주행하는 택시를 잡기는 거의 힘들고 호텔 주차서비스 포인트나 택시 서비스 창구에서 콜 해야만 했다.

 

둘째 날 오전은 사전 예약한 수트라하버 리조트의 골프장을 찾았는데 국내 또는 현지 여행사의 가격은 별 차이 없었고 단지 현지 가이드를 통해 갈 경우(셋째 날 오전) 20달러 정도 더 비싼 비용을 지불해야만 했다. 오후에는 사전 예약한 나나문 리버 반딧불이 투어를 출발했다. 1시간 30분쯤 버스를 타고 가서 나나문이란 곳의 강을 따라 보트를 타고 맹글로브 숲을 즐기며 울창한 나무 사이의 큰 코 원숭이를 찾아 나섰다. 그리고는 근처의 식당에서 식사를 한 후 나나문 비치에서 훤히 뚫린 수평선으로 저무는 석양을 감상한 뒤 어둠이 내려앉은 강 위의 보트에 승선했다. ‘메리크리마스’라고 함께 외치니 강가의 나무에서 크리스마트 트리처럼 불빛이 화려하게 깜박거렸다. 현지인이 작은 손전등을 껐다 켰다 하니 반딧불이 수컷들이 암놈을 찾아 나선 것이다. 팅커벨 요정이 되어 내 마음에도 날아들었지만 왠지 미안한 생각이 든다. 나의 유희를 위해 그들을 속이는 것 아닌가? 불빛이 새어나가지 않게 꼭 감싼 채 ISO를 12,000까지 올려 사진을 찍고 캠코더를 돌렸지만 담겨진 것은 검은 색 뿐! 결국 요정은 내 가슴에만 담을 수 있을 뿐 결코 그 모습을 남길 수는 없었다.

 

다시 날이 밝았다. 동쪽 하늘 키타발루 산 쪽부터 물들어 오는 하늘빛이 떠남의 아쉬움을 더해 주었다. 무거운 골프채를 하루만 쓰고 되 갖고 오는 것이 아쉬워서 현지 가이드에게 자유일정인 오전 시간에 20달러 더 지불하고 첫 티업 시간으로 필드에 다시 발을 내딛었다. 좋다~ 골프 장애로 몇 년 전부터 창고 속에 골프가방을 쳐 넣었지만 한참 재미를 붙이고 있는 아내를 위해 희생(?)하기로 했지만, 공이 맞건 안 맞건 간에 바닷가 필드를 걸으니 좋기는 좋다! 서둘러서 짐을 챙겨 체크아웃하고 버스에 오르니 이곳저곳에서 머물렀던 사람들이 탑승하게 되었다. 네 곳의 시내 관광과 세 군데 사전 고지된 쇼핑센터를 들렸다가가 서둘러 석양을 맞이하러 갔다. 아마도 샹그릴라 탄중아르 리조트 근처로 향해야 했지만, 수트라하버 리조트 근처 바닷가에서 먹구름 가득한 하늘의 희미한 석양빛을 바라봐야 했다. 그리고는 야시장에 찾아 주스 한 잔을 얻어 마시고 닭 꼬치구이에 소주 몇 모금을 목으로 넘긴 뒤 저녁 식사를 하고나서 공항으로 향했다.

 

삼십 년 전 제주도 신혼여행은 내 삶의 딱 절반을 함께 살아온 아내와의 가장 행복했던 시간이었다. 이십오 주년 하와이 여행도, 아이들 그리고 대가족 모두가 함께 했던 여행도, 또한 이번의 여행도 서른 살 그 시절 그 때의 행복을 넘어 설 수 없었다. 사랑의 열정보다도 삶의 열정이 식었기 때문이겠지. 이제는 열정이 아니라 온유의 마음으로 채워나가야겠지. 맑은 햇살을 내리비추는 한낮의 화사함이 아니라 석양빛의 아쉬운 아름다움으로 채워나가야겠지. 그래서 코타키나발루의 석양을 찾아 나섰던 것이다.

 

2018년 3월 3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