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weet home

현주가 처음 집에 온 날

묵향의 이야기 2007. 3. 17. 15:04
 

  “일자형을 사야할까?  팬티형으로 사야할까?”  기저귀 코너에서

한동안 망설이다가 하나 고르고 분유코너로 향했습니다.  거~  쑥

스럽더군요.  손주도 볼 수 있는 나이인데......

  지겨운 일주일이었습니다.  좁은 병실에서 아내의 발을 주무르며

지난 월요일부터 오늘 아침까지 갇혀 있자니 몸이 쑤실 정도였지요.

첫째 통이와 둘째 술희 때는 직장생활에 녹초가 되어 늦은 밤이

되서야 병실에 누워있는 아내 곁으로 가서, 팔에 끈을 묶고 필요하면

깨우라며 코를 골며 잠에 떨어져 버렸었는데, 이번에는 세월이 흐르

면서 아내 모르게 지은 죄가 많기에 찍 소리 못하고 시키는 대로

밤낮으로 병실을 지켜야 했지요.

  깜박 졸고 있는데, 분만실에서 간호사가 아기를 안고 나오며

아내 이름을 불렀습니다. 첫째 때 긴 밤 지새우기 지겨울 것 같아

저녁 식사하며 쏘주 몇 잔 들이키고 대기실 긴 의자에 앉아 코를

드르렁 골며 졸았다가 십 여 년간 구박받고 있고 있던 터라, 간호사의

호출에 기겁을 하며 자리에서 벌떡 일어섰습니다. 

  아들이라며 아기의 고추를 보여주는 간호사는 보았어도, 딸이라며

고추없는 고추를 보여주는 간호사는 처음 보았습니다.  아마도 일말의

아들에 대한 미련이 있다면, 깨끗이 포기하고 단념하라는 무언의 충고

였던 것 같습니다.  볼멘 소리로 말했지요.  ‘알고 있었어요~“

  아들이 커가면서 너무나도 나를 닮은 모습들이 드러나게 된 뒤,

통이와 나와는 달리 좀더 깊은 삶을 살고 세상에 빛이 될 수 있는

또 다른 아들을 얻게 되길 바랬지요.  하지만 내 마음속의 갈등도

컸습니다.  인생이란, 삶이란 기쁨과 평화보다는 고통과 번뇌가 더

깊이 자리하는 것이라 생각되기에, 한없이 뻗혀 나갈 생명의 고리를

만들어서는 아니 되는 것이 아닌가?  그러나.....  그 또한 인간에게

주어진 가장 진실된 진리일거란 변명으로 또 다른 아들에 대한

욕심을 이기지 못하고 재작년 그리고 작년 두 번에 거쳐 아내에게

유산의 고통을 안겨 주었습니다. 

  지난 2월 태백산 눈꽃 축제에 다녀와서 한껏 태백산의 정기를

아내에게 쏟았더니, 바로 그날 새 생명이 잉태하게 되었습니다.

어찌 그 날인 줄 아느냐 하면, 앞뒤로 함께 했던 날이 없었기에....

  그래...  태백산의 정기를 받았으니, 분명 아들일거야! 

하지만 그 꿈은 불과 몇 달 지나지도 않았을 때 산산이 흩어지고

말았습니다.  “막내는 예쁜 게 낫지?”

  혹시나 하는 마음조차 갖지 않았지만, 그래도 서운하네요~

아들이라는 확신만 있다면, 그리고 아내의 허락이 있다면

어차피 늙은 아빠가 되었는데 줄줄이 사탕이라고 내년에도

이 고생 감수하련만.

  오늘 퇴원할 때 딸딸이 아빠가 늦둥이 아들을 안고 함박

웃음이 되어 어깨 으쓱 들먹이며 내게 등을 보이던 어떤 아저씨

모습에 배가 아팠지요.  하지만 그래도 어여뿐 나의 자식이기에,

어둠이 채 걷히기도 전에 나의 애마 엑센트를 쳐 박아 놓고

아름답고 품위있는 여인으로 자라나길 바라며 의전용 승용차를 몰아

압구정동 그 병원 앞에 대기시켜 놓았지요.  그리고 마음 속

으로 빌었습니다.  “너의 마음속에 행복 가득하길 바란단다.

그리고 세상에 빛을 남길 수 있는 삶이 되길 바란단다. 

나의 둘째 딸 아가야~“

  아내 가슴에 안겨 있는 아가의 얼굴을 다시 보았습니다.

내 얼굴을 판박이 했습니다.  “ 에고~  걱정되네...”

  아내 하는 말 - “딸딸이 아빠가 된 소감이 어떠우?”

  병실 앞에 앉아 있던 수간호사에게 내가 말했습니다. 

“내년에 또 봐요~” 

  이어서 아내 하는 말 - “고마웠어요.  다시 뵈요~

아참!  다시 보면 안되지...“


                     2001. 11. 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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