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weet home

출근길

묵향의 이야기 2007. 3. 17. 15:06
 

  그냥 현관문으로 향하려다 조용히 안방문을 연다.

이불을 걷어 내고 잠들어 있는 아기에게 잠깰라 살며시

큰 수건을 덮어 주곤, 옷도 벗지 못한 채 꿈속에 빠져

있는 아내 이마에 살짝 입맞춤을 하고 현관으로 향한다.

방문이 열려 있는 공주 방으로 들어가 ‘뮤직엔젤’의 태엽을

감아 주고는, 깔다만 이불 위에 그냥 쓰러져 잠들어 있는

아들 얼굴에서 안경을 벗겨내 입김을 호호 불며 손수건으로

닦아 준다.  밝은 눈빛으로 세상을 바라보라며.....


  밤새 굳게 창문이 닫혀 있던 의전용 승용차 안을 상큼하게

가꾸고 싶어서, 폴로 향수를 세 번 씩이나 뿌리고는, 매일 다니던

이배재 고갯길로 향하려다 급히 남한산성 길로 핸들을 꺾었다. 

산 정상 가까이는 아직도 아카시아 꽃들이 주렁주렁 달려 있다. 

짙게 드리웠던 그 향기를 가슴에 담고 굽이진 길을 돌려 하니,

이름 알 수 없는 산새의 지저귐이 나를 놀라게 한다. 


  어머니 아버지의 사구제를 지냈던 장경사를 지나쳐 나뭇잎으로

덮혀진 외길을 따라 내려가니, 식구들과 이 길을 지나칠 때마다

잠시 멈춰 서서 산내음을 맡게 했던 계곡 빈터에 차를 세운다.

주유소에서 사은품으로 받은 쵸코파이를 하나 꺼내어 커피 한 잔과

함께 아침 식사로 때우고는 담배 연기 깊게 가슴에 채운다.


  못자리 물로 가득 채워진 길 가 논에는 아침 햇살에 빛나는

숲이 그 모습을 드리운다.  돌아간 남한산성 길은 어느덧 끝나고,

너무도 더디 흘러만 가는 세월이 얄미워 엑셀을 깊이 밟는다.


  내친 김에 넓게 세상을 담고 있을 팔당호수로 향하려다

미련으로 남긴 채, 철쭉꽃의 고운 빛과 라일락 향기를 던져

버리고 붉은 장미 하얀 장미로 단장한 농장에 다다랐다.


  그리고는 나는 아침 출근길에 만끽했던 자유를 벗어 제끼고,

몇 평 남짓한 나의 사무실에 또다시 갇히고 만다.


02/05/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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