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리즘

새로 산 차

묵향의 이야기 2007. 3. 25. 06:18
 

48살 여름에, 운전면허 취득한지 20년 만에 내 차를 처음으로 샀습니다.

출고된 지 10년 된 다이너스티가 200,000km를 돌파했기에,

미루고 미뤘던 새 차를 샀습니다.


외제차는 애초 배제하고(왜? 국부유출을 막아 이웃과 더불어 살기 위해),

국산 외국회사 차는 외면하고(쌍용 삼성 대우차가 그렇죠),

남은 회사 차 중 가장 비싸다는 차종은

돈 더 많은 이들과 더 높은 지위에 사람들에게 양보하고

백진주 투톤에 선루프(담배 연기 배출을 위해)가 있는

내 차를 처음으로 샀습니다.


1989년, 결혼 1년 만에 분가 후 아기를 핑계 삼아 ‘프라이드’를 사겠노라

아버지께 말씀 드렸더니 당신이 모시던 ‘프레스토’ 키를 건네주신 이후로,

당신께서 차를 바꾸고 싶으시면 언제나 자식의 안전이 걱정된다며

당신이 타시던 차를 물려주시고는

저 세상으로 가시면서 마지막으로 넘겨주신 차가 다이너스티였죠.


4만 km 주행한 3년 된 차를 떠맡아 16만 km를 더하여

거의 고물차 수준까지 끌고서야 목표 주행거리를 채우고

처음으로 내 차를 샀습니다.


그저 고마울 따름입니다. 사고 한 번 없이 가족의 안전을 지켜 준

그 차를 이제 떠나보내야 할 때가 되었습니다.

마음 같아서는 잘 가라 고사라도 지내주고 싶지만,

안팎으로 깔끔히 세차나 하고 떠나보내야겠습니다.


당신 생애에서 거의 낭비를 하지 않으셨던 아버지이셨지만,

자동차만큼은 변덕이 심하셨죠.

77년 흰색 포니픽업(짐차), 84년 빨간색 포니(중고차)

87년 프레스토, 89년 콩코드1800, 90년 콩코드 2000,

소나타, 마르샤 2500, 그리고 96년 12월 다이너스티

그 후 기름 값 많이 든다며 단거리용으로 장만한 기아 소형차.


덕분에 나는 프레스토, 콩코드, 콩코드, 소나타, 마르샤 등

10년 동안 거의 2년에 한번 꼴로 차를 바꿔 탔기에,

마지막으로 물려받은 다이너스티만큼은 10년을 채우거나

20만 KM를 돌파한 뒤에 새 차를 사겠노라 결심했던 것이죠.


때문에 처음으로 새 차를 몰게 되었다는 기쁨보다는

정들었던 헌 차를 떠나보내야 한다는 아쉬움이 더 큽니다.


하지만 올 해는 많은 것들을 새 것으로 바꾸는 해인 것 같습니다.

핸드폰도 더 이상 작동을 하지 않기에 흰색 슬라이드폰을 장만했고,

3년 쯤 신은 구두도 새 것으로 교체했고,

농장의 여기저기 구석구석마다 지난 봄 새 나무와 화초를 심었고,

결국 7년 만에 새 차도 마련하게 되었습니다.


그러나 변치 않는 것이 있습니다.

17일간의 티벳 여행 뒤 삶의 깊이가 변하기를 바랐지만,

혼탁한 영혼의 세계는 변하지 않은 것 같습니다.


차는 새 것으로 바꿀 수 있어도

삶은 새로이 가꾸기가 힘든 것이겠죠.

또한 인과응보겠지요.

그리고 주어진 운명이라 할 수도 있겠죠.


때문에 그저 바랄 뿐입니다.

미적분 곡선이 미세한 기울기의 변화 뒤 그 방향을 바꾸듯

내가 꿈꾸는 ‘묵향’의 그런 은은한 삶으로 변화하기 바랄 뿐입니다.


그래도 새 차를 장만하니 기분이 너무 좋네요.

아직 아무도 태우지 않은 그곳에

나의 늦둥이 공주 현주를 앉히고 드라이브 가야겠습니다.


0608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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