차가 있는 곳까지 하루를 걸어가야 하는 네팔의 촌락을 지나칠 때였다.
내리막길임에도 걷기 힘들 정도의 급경사에 작은 집 한 채가 있었고,
그 앞마당 한 구석에 멍석을 깔아놓고 앉아 있는 소년이 있었다.
그의 곁에는 서너 살 남짓한 어린 소녀가 오빠 곁에서 흙장난을 하고
있었고, 찌들어지게 가난한 그의 부모는 밭에 나간 모양이다.
카메라 렌즈를 들이대는 이방인의 시선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그 소년은
몽땅 연필을 꼭 쥔 채 책에서 눈을 떼지 않는다. 말 한마디조차 건네기
힘들 만큼 고요함 속에서 책장을 넘기는 그 소년의 눈빛을 잠시 훔칠 수
있었다. 뜻이 있고 꿈이 있었다.
더 이상 소년의 정신을 어지럽히기 미안하여 일행을 쫓아 서둘러 내리막길로
발을 내딛는다. 한참을 내려간 뒤 뒤돌아보니 그 집은 아득하게 멀기만 하다.
큰 후회를 해도 소용이 없었다. 카메라를 들이 대기보다 뒷주머니의 지갑을
꺼내지 않았던 나의 무심함을 자책할 수밖에 없었다.
나머지 트레킹 내내 떠올린 그 소년의 눈빛은 내게 미안함과 함께 미소를
안겨 주었다.
0709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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