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름 따라 길 따라

몽골의 여정

묵향의 이야기 2011. 8. 18. 16:32

별빛으로 수놓아진 밤하늘로 온 몸을 덮고 있다.

이불 속 사랑하는 연인처럼 너와 내가 없다.

동떨어진 두 개는 하나가 되어 버렸다.

 

마주하고 있는 눈빛에 나는 사라져 버리고

쏟아지던 그 빛은 내 가슴에 묻혀 버렸다.

하늘과 땅이 한 점이 되어 있을 뿐이다.

 

내 행복은 은하수 되어 흐르고 있고

내 고뇌는 별을 가둬버린 어둠이 되어 있다.

 

구름과 햇살에 가려질 별빛과 암흑처럼

몽골 초원에 쏟아진 그 빛줄기를 타고

나는 그날 밤 밤하늘로 사라져 버렸다.

 

발전기 소리가 멈추고서도 한 시간여 남짓 게르 옆 풀밭에 누워 하늘을

바라보고 있었다. 아프리카 세렝게티 초원의 별빛에 사라져 버린 나를

되찾아 보고파서 달려왔던 몽골의 밤하늘도 또다시 나를 앗아갔다.

캠프의 첫날밤은 그렇게 흘러갔다.

 

칭기스칸 캠프까지 달려온 시간은 몇 장의 사진들처럼 남겨져 있었다.

한참을 달리다가 꽃 따려고 말 보려고 멈춰 섰던 푸르공에서 발을 초원에

처음 내딛었을 때, 가슴 깊이 스며드는 짙은 풀 향기가 몽골의 첫인사였다.

길은 있으나 그저 내달리면 길이 나오는 것이 몽골의 두 번째 인상이었다.

광활한 초원에 말발굽 자국 남기면 가고픈 곳 갈 수 있던 그 옛날의 습관

때문이리라!

 

유채밭이 끝없이 펼쳐져 있고 곧바로 드넓은 경작지가 개간되고 있었다.

변화의 몸부림이고 혼돈의 출발점이었다. 그 출발점은 쌍무지개가 되어

130여명의 우리를 맞이해 주었다. 그 많은 인원들이 아무런 문제없이

이곳까지 함께 온 것이 그저 경이로울 따름이다. 9년의 노하우인가?

 

‘기상~~~!’ 30년 만에 들어 본 소리에 화들짝 놀라 복장불량의 젊은

친구들 등 떼밀며 나선다. 맨 뒷줄에 자리 잡고 어슬렁 조깅을 하려던

것이 졸지에 줄이 바뀌어 앞줄에 서게 되었다. 조깅 스트레칭을 하고 나니

기분이 상쾌하다. 그렇게 우리들의 추억은 시작된 것이다.

 

몇 번 승마해 봤던 경험은 8년의 시간이 흘러도 남아 있는 듯했다. 이틀의

승마에도 엉덩이 안 까졌으니 그나마 다행이었고, 가난한 조교 덕분에 오후

에는 홀로 말고삐를 잡은 채, 걷고 경보하고 내달리는 짜릿함을 만끽할 수

있었다.

 

자기소개 시간을 끝내고 다시 밤하늘을 마주했다. 그리고 다음날 이틀째

오후를 맞이했다. 뇌 마사지 시간에 흐느끼는 소리가 들렸다. 깊은 자기

성찰의 시간! 나 또한 오래 전 신비한 경험을 했던 탓에 또 다시 느끼고

싶었다. 하지만 때 묻을 데로 때 묻은 내게는 밤하늘의 별처럼 멀고 먼

동경일 뿐이었다. 오전 오후 ‘몽골에서 말타기~!’를 했다. 끝내고 나니

출발 전부터 걱정했던 허리의 통증이 오기 시작한다. 몇 걸음 떼지도

못한 채 통증이 온 몸을 감싼다.

 

4일째 수요일! 억지로 말 타기를 끝내고 오논 강에 몸을 담는다.

음과 양의 조화! 홀로 왔던 나는 낯선 이성과의 접촉이 어색해서 제환이와

그 자리에 파트너 되어 앉아 버렸다. 4살 터울의 남매를 내년 캠프에 보낼

것이라던 내 마음이 흔들거린다. 내 영혼이 불손해서인가?

 

어둠이 깔릴 때 이어진 ‘꿈 너머 꿈!’ 특강시간이다. 진정한 꿈 너머 꿈까지

생각해 보지 못했다. 나의 세 아이들에게 들려주고 싶은 이야기이다. 헛된

꿈꿔봤다. 때론 텅 빈 사고로 생활해야 했던 군 생활 때 한없이 꿈을 꿔

봤다. 꿈을 이어 꿈을 꿔봤다. 결국 허무! 하지만 내 아이들에게 삶이 허무

하다고 말해 줄 수는 없지 않은가? 그러나 아름답게 이야기해 주어야 할

꿈 너머 꿈에 대한 결론은 단정 지어 줄 수 없다. 우리 9조의 마지막 연의

그림처럼 사랑은 한없이 넓고 넓은 것이기에 단정 지을 수 없는 것이다.

아쉬웠다!

신나는 날이었다. 일반 여행사에서는 경험할 수 없는 멋진 일정이었다.

마라톤에서 시작한 그 날 하루의 일정은 어린 시절 소풍보다 더 재미난

일과였다. 강에서의 물장난! 초원에서의 투우 놀이! 아름다운 이빨을

드러내며 쫙 찍어 먹은 호르헉 염소고기! 그리고 신나는 허슬과 배꼽 잡는

게임과 응원! 이제부터 본격적인 조별 모임이다. 배꼽 잡는다!

 

여섯째 날 금요일이다. 오논 강을 마주한 채 눈을 감고 명상에 잠긴다.

느끼고 싶었지만 느낄 수 없었다. 조용히 멀리 물러나 풍경을 담고자 셔터만

누른다. 흔치 않은 자신과의 대화의 시간! 많은 분들이 명상 속에서 자신을

바라볼 수 있길 바라면서 오논 강을 향해 조심스레 셔터를 누른다.

 

대장정 바로 전 날! 가벼운 언덕길 승마 연습이 있었다. 오후에는 여기

저기서 조별 장기자랑 연습에 여념이 없다. 이미 연 대회에서 1등을 굳힌

우리 9조는 여유만만이다. 마라톤 남자 1등한 세찬님! 여자 2등 순홍님!

연 만들기 1등! 조별 게임 응원 2등! 종합 우승이다!(물론 시상은 없지만)

그저 깔깔 껄껄 웃는 장기자랑 연습시간이다. 양민화 조장님! 그의 낭군

부조장님! 그리고 두 분의 왕언니들이 맹활약이다! 실수 투성이었지만 정말

즐거웠던 시간이었다. 장기자랑 연습을 하면서 아주 오랜만에 우리 조원들

덕분에 큰 소리로 웃으며 몽골의 추억을 만들 수 있어서 행복했다.

대장정의 날이 밝아왔다. 아마도 많은 분들이 긴장했으리라! 드디어 마지막

한 획을 긋는 시간이 밝아 왔기 때문일 것이다. 그나마 며칠 쉬면서 완화

됐던 허리의 통증이지만, 서울로 돌아가 고생할 것을 생각하니 피하고 싶은

고통이었다.

 

웅장한 행렬이었고, 어떤 단체에서도 쉽게 도모하기 힘든 그런 대규모 승마

행진이었다. 개울을 건너고 초원을 달려간다. 호수를 지나 언덕 능선을 따라

말과 말이 이어져 발길 내딛으니 하늘과 구름 그리고 사람과 땅이 평행선을

이룬다. 대열의 뒤를 쫓아가야만 하는 푸르공에 타고 있으니 먼지 날리는 뒷

모습만 렌즈에 담을 수밖에 없다. 안타까움을 억누르며 하늘과 초원과 호수

를 바라보니 내 마음에 여백이 넓어져간다. 느림의 여유가 행복 되어 그

여백을 채워온다.

 

푸른 숲이 보이자 푸르공의 기사 아저씨는 기어를 바꾸고 엑셀을 깊이

누른다. 달려오는 장엄한 대열의 사진을 앞서가서 담고 싶었던 내 마음을

알아차린 듯 했다. 달콤한 낮잠시간! 육체의 휴식만은 아니었다. 뇌 마사지

그리고 명상의 시간이 자신을 되찾는 기회를 주었듯이, 말발굽 자국이 남긴

지나온 길을 되돌아보고 또다시 나가야 할 길을 살펴보는 자신과의 대화의

시간이었다.

 

멈춰서 있을 수만 없는 것이 삶이듯 출발 신호와 함께 긴 대열은 다시 만들

어진다. 맨 끝을 지키며 뒤를 쫓는 푸르공이 호수를 지날 때쯤 선두 행렬은

이미 절반 이상 달려갔다. 터벅터벅~ 조교가 고삐를 잡아 당겨도 말의 발길

은 느리기만 하다. 애써 추~추~ 외쳐도 타박타박! 킬리만자로 산을 오를 때

뒤쳐져 오는 아들을 바라보면서 스스로 위안을 삼았다. 빨리 오르면 먼저

목적지에 도달하고 더 많은 휴식을 취하겠지만, 느림보 걸음으로 둘러보는

세상은 볼 수 없는 것! 어떤 것이 더 행복을 주는 길인가?

 

맨 뒤를 책임지던 버라마하 교수는 한참 뒤쳐진 분께 푸르공을 타고 가라

차마 말하지 못하고 그저 뒤만 쫓아온다. 말보다도 훨씬 안락하고 편안한

푸르공의 행복을 느껴 보시라며 두 분을 태우고 내달렸다. 몸은 지쳐있지만

마지막 개울을 건너는 그 모습들은 성취감과 기쁨이 충만 되어 있었다.

30키로의 대장정을 낙오자 없이(참~ 나 한 사람 있네요! 두 분은 다시 대열

에 합류!), 사고 없이 모두 몽골 여행의 목적을 이루어 낸 것이다.

 

굵은 빗줄기가 게르에 떨어지는 소리도 잠시 들었고, 뜨거운 햇살을 피하라

고 어쩌다가 구름 흘러 그늘도 만들어졌지만 여행 기간 내내 파란 하늘과

별빛을 바라볼 수 있었던 행운의 여정이었다.

 

서로에게 사랑하고 감사하는 마음 나누기 시간! 우리들의 고운 만남을 방해

하지 않으려는 듯 천둥소리는 감추고 어둔 밤하늘의 축제가 시작되었다.

하늘과 땅이 사랑하기 시작했다. 아니 하늘이 땅에게 사랑을 고백하기 시작

했다. 엊그제 무섭도록 번개 치던 남동쪽 하늘만 침묵을 지킨 채 삼면의 하

늘이 경쟁하듯 불빛을 뿜어낸다. 내 평생 한번 올까 말까한 기회! 슬쩍 빠져

나와 카메라를 찾으러 게르로 달려간다.

 

어떤 의미가 있을까? 사진 한 장 남긴다 할지라도 그 감동 그 마음 되새겨

볼 수 있을까? 그저 희미한 추억잡기 밖에 안 된다. 하지만 추악한 세상을

마주하면 내 얼굴이 찡그려지지만, 몽골의 파란 하늘과 초원을 떠올리면 미

소를 짓게 되듯이, 혼잡한 세상사에서 아침마다 마주하는 좋은 이야기를 담

게 된다면 평온과 행복을 마음에 담게 되지 않을까?

 

몽골의 정부가 존재하는 가 스스로 물을 정도로 낙후해 있다. 자연 그대로

유지되기 바라는 배부른 자의 오만은 이제 하룻밤만 몽골에 남아 있다.

야시장 포장마차 몽골 서민의 생활을 맛보지 못한 아쉬움도 뒤로 해야 한다.

하지만 당당했던, 책임을 다했던 울란바트로 젊은 학생들의 모습은 초원에서

의 행복만큼 내게 몽골의 미래에 대한 포만감을 안겨 준다.

 

여행에 대한 결심과 긴 기다림은 순간의 추억만 남긴 채 인천공항에서의 작

별의 시간을 맞게 했다. 비록 아름답던 인연들은 뿔뿔이 흩어져 버스에 올랐

지만, 백 삼십 여 명의 잔영은 영원히 지울 수 없을 것이다. 우리가 바라봤

던 쌍무지개처럼 아름답던 여정을 함께해 준 모든 분들께 감사드린다.

 

2011년 8월 17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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