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오늘도 네팔을 향해 달리고 있다. 항상 어디론가 떠나는 싶은 마음 때문에 고속도로로 돌아 출근길을 내달리는 나는 네팔의 하늘과 산 그리고 순진한 아이들의 눈망울을 그리며 오늘도 그 하늘 아래의 내 모습을 그리고 있다.
네팔의 수도 카트만두는 빈곤 무질서 공해 그리고 혼돈 그것이었다. 히말라야를 향하기 위해서는 거쳐야만 하는 도시이기에 첫날 오후에 들린 타밀 시장은 온통 등산용품 가게들로 채워져 있다.
트레킹에서 낙오자가 되지 않을까 하는 걱정으로 첫날밤 잠을 설친 채, 날이 밝아오자 안나푸르나 관문 도시이며 네팔 제2의 도시인 포카라로 향하기 위해 공항에 도착했다. 공해와 먹구름으로 하늘은 어둡고 비행기 소리로 시끄러울 것 같던 공항은 오히려 적막하기조차 하다. 2시간여를 비행기가 뜨길 기약 없이 기다리다 결국 비행시간 30분 거리를 7시간여의 버스 편으로 터덜터덜 달려갔다.
몸은 몹시 피곤했지만 오히려 네팔 시골의 풍경을 담을 수 있어 좋았다. 폭이 1미터도 안 될 듯한 계단식 논으로 빽빽이 깎아진 네팔의 산들. 계곡을 사이에 둔 두개의 산 중턱을 이어 놓은 외줄에 대롱대롱 매달린 네모난 기구에 타고 줄을 당겨 계곡을 건너는 네팔의 산골 사람들. 아쉬운 것은 중간 중간 멈춰 서서 카메라에 담고 싶은 장면들을 단체 버스이기에 놓칠 수밖에 없었던 것이다.
예정된 크래킹 코스에 맞추기 위해 오전에는 포카라의 호수에 있는 쪽배에 몸을 실었다. 안나푸르나 설봉을 볼 수 있다는 그곳은 후드득 빗방울이 쏟아질 듯 여전히 어둡기만 했다. 일정대로 트레킹을 마친 뒤 푸른 하늘과 하얀 설봉을 바라보며 쪽배에 올라 있었다면 고된 산행 뒤의 안도감과 휴식에서 느끼는 행복이 절정에 달했을 텐데!
2시간여를 달려간 나야풀에는 포터들이 기다리고 있었다. 드디어 트레킹이 시작된 것이다. 히말라야 산을 넘어 티벳까지 이어진다는 산길은 마치 아스팔트처럼 넓은 돌로 길을 덮고 있었다. 운반 수단이 오직 말뿐이고 숱한 세월동안 사람의 발길이 이어져왔고 또한 이어져야 하기에 돌로 덮어 길을 보호해야 하기 때문인가 보다.
평온한 시골길을 걷듯 한 3시간여의 첫날 산행은 힐레에서 멈췄다. 우리가 머무는 롯지는 생각했던 그런 산장이 아니라 민박집이었다. 산길을 따라 즐비하게 이어진 민가 중에 몇몇 집들이 숙박과 식사를 겸하여 간판을 내걸고 있었다. 나무침대에 매트리스를 깔아놓고 나무로 벽을 막아 놓은 방은 비교적 깔끔한 편이었지만, 지난해 폭우로 전기시설이 망가져 케익용 수준의 초로 간신히 불을 밝혀야 했고, 난방은 전혀 되지 않아 모닥불이 꺼진 뒤 두툼한 겨울 외투를 입고 침낭 속에서 잠을 청해야만 했다.
어둠이 깔리자 누군가에 의해 모닥불이 피워졌다. 82세의 고령의 할아버지는 먼저 잠자리에 들고 카이스트에 다니는 23살 공대생은 술자리를 피해 모습이 보이지 않았다. 서로의 소개와 흉금 터놓은 시간이 되었다. 두 명씩 일행이 되어 온 열 명의 사람들 그리고 나처럼 홀로 나선 다섯 명의 사람들이 미지의 세계를 향한 한 배를 타게 된 것이기에 서로의 어색함은 알콜에 쉽사리 용해되어 버렸고, 오랜만에 단체 손님들로 북적이는 롯지 옆의 집의 아이들이 늦은 밤까지 장난치는 소리가 저 건너편 멀리 있는 산 중턱에서 희미한 불빛을 밝히고 있는 동네 어느 집에서 울려 퍼지는 결혼식 축하연의 잔치 소리와 어우러져 네팔 안나푸르나 트레킹 첫날밤을 맞고 있는 우리 일행의 마음속까지 전해져 왔다.
0703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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