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신 4일째 - 수요일 하동과 진주를 잇는 도로에서
지리산쪽으로 난 길 끝까지 들어가니 청학동이 나왔습니다.
예상대로 세태에 물들어 버린 그 모습이었습니다.
여기저기 서당이란 간판이 즐비했고 동동주와 파전을
파는 먹거리 장터와 같았습니다. 하지만 '도인촌'이라고
쓰인 곳 끝까지 걸어 올라가 보니 몇 채의 집들이 청학동의
그 이미지를 살려 주었습니다.
맨 끝 집에 마루에 쓰여진 '잠시 머물다 가세요'라는 글귀에
마루턱에 걸쳐 앉아 있으니, 상투를 틀어맨 훈장이 나와 반겨
주어 잠시 한담을 나누고 왔습니다. 창학동 다른 한편 계곡에
있는 삼성궁으로 차를 몰았습니다.
"뭐 뻔하겠지"라는 생각에 입장권을 살까 말까 고민하다가
관광버스 사람들과 섞이어 산길로 발을 내딛었습니다.
숲속 작은 길을 따라 오르니 숲 사이 뒤로 파란색의 커다란
지붕이 보였습니다. 무척 큰 크기에 놀라 어찌 만들었을까
생각하며 몇 걸음 내딛자, 그 지붕은 푸른 하늘로 바뀌어 버렸습니다.
헛것을 본 것이었지요. "결국 며칠을 굶었더니 제 정신이 아니구나~"
토굴처럼 생긴 입구를 지나니 절로 탄성이 흘러 나왔습니다.
아주 큰 규모는 아니었지만, 30여년 전쯤 만들어졌다는 삼성궁은
사람의 정성과 신념이 얼마나 위대한가를 느끼게 해 주었습니다.
마이산의 돌탑들과 같이 하나하나 돌을 쌓아 옹벽을 만들어 놓는
삼성궁에서 그 옛날의 땀과 노력 그리고 합심의 마음을 읽다보면
지나온 자신의 삶이 얼마나 초라한 것인지 생각하게 들었습니다.
하동으로 다시 나와 모래사장과 통통배가 떠다니는 섬진강을
거슬러 올라가다 보니 소설 토지의 무대였던 평사리가 나왔고,
드라마 '토지'의 세트장이었던 최진사댁과 초가집들이 맞이하여
주었습니다. 다시 구례 쌍계사를 향하니 구례계곡과 섬진강이
만나는 곳에 화개장터가 있었습니다. 노랫가락에 익숙해져 있어서
큰 기대를 갖고 찾아갔던 곳이지만 너무도 초라하고 관광지화
되어 버린 장터의 모습에 실망감을 더해 장바구니에 담게 되었습니다.
멀지 않은 곳에 있는 구례 쌍계사를 둘러보고 서둘러 사천으로
되돌아 왔습니다.
오는 길에 섬진강 나루터와 강변의 산책을 품어 보았지만
늦어진 일정과 눈에 띄지 않는 이정표 때문에 그냥 지나쳐야 했습니다.
"내일은 무엇을 할까? " 태양이 떠오르는 우포의 아침을 렌즈에
담기로 하고 새벽 3시에 알람을 맞춰놓고 일찍 잠자리에 들었습니다.
***** "아빠~ 어디있어?"라며 눈을 비비며 나를 찾는 현주 때문에
짧게 일정만 남겨야겠습니다. 놀아 달라니... ******
단식 5일째 - 목요일 처음 찾았던 우포는 남쪽 방면이었지만,
이 날은 북쪽 방면의 우포를 찾았습니다. 칠흙같은 어둠속에서
간신히 다다르니 5시였지요. 후레쉬 불빛을 비추며 촬영장소를
선택하고 해가 뜨기만을 기다렸습니다. 멋진 장면을 담게 되길
바라며 몇시간을 허비했지만 만족할 만한 것은 찾아오지 않았고,
결국 북쪽 방면의 우포의 여기저기를 샅샅이 둘러 보는데 위안을
삼아야 했습니다. 단식 6일째 - 금요일 이제는 드라이브도 귀찮아졌습니다.
속을 비운 몸은 가볍고 정신은 더욱 또렷해진 것 같지만 할 일없이
기름만 낭비할 것 같다는 생각에 망설였습니다. 하지만, 하루를
그 좁은 곳에 머물러 있으면 답답함에 견디지 못할 것같아 8시경에
차를 몰고 고성을 거쳐 통영의 해안을 돌고 돌아 거제를 향하기로 했습니다.
고성을 지나 통영에 가까와오니 '해안도로'라는 표지가 보여 핸들을
꺾었습니다. 작은 어촌마을들이 지나치니 어느 곳에 잠시 차를 세우고
담배를 꺼내 물었습니다. 시간의 흐름을 묶어두고 큰 나무 아래 벤취에
앉아 아침햇살 새소리 뱃고동소리 그리고 햇살에 빛나는 남해바다에
세상사 시름을 묻어 버렸습니다.
통영의 충렬사의 이순신 장군 영정 앞에서 분향 재배를 하였습니다.
아무도 보는 이가 없었기에... 통영 앞 미륵도의 해안도로를 드라이브하고
거제대교를 건넜습니다. 해금강으로 차를 몰았습니다. 20대 초반 친구와
근처 해수욕장에 왔다가 거센 바람에 둘러 보지 못했던 해금강에 다다르니
유람선이 있었지만, 2시간 이상의 승선시간 때문에 배에 오르지 못하고
쓴 맛만 다져야 했습니다.
거제섬의 절반 이상의 해안을 드라이브하고 다시 사천으로 향했습니다.
고성을 지나치니 '상족암'과 고성군립공원 표지가 보여습니다. 공룡발자국
관광지라 표기된 상족암에서 해안의 관람로 위로 전날 5시부터 물도 못마신
발걸음 내딛으니 힘겹기만 했습니다. 변산반도의 그 해변처럼 퇴적암의
멋진 절경과 또렷이 볼 수 있는 상족암은 남해 여행지에서 한번쯤
가 볼만한 곳이었습니다. 아쉬운 것이 있었다면, 한편 파도치는 해안가 바위
위에 펼쳐진 해삼과 멍게 그리고 쏘주에 입맛을 다져야 했던 것이죠.
이어진 길을 따라 삼천포항에 들어섰습니다. 20대 초반 친구 때문에 들렸던
그곳은 옛날 그대로였습니다. 발전이 없이 오히려 퇴보되고 있는 항구도시!
5시에 맨밥과 나물로 첫 식사를 해야 한다는 돌파리 단식원장에게 늦을 것이라
전화하니 근처에서 밥을 사먹으랍니다. 결국 먹음직한 큰 사발에 담긴
동태찌게는 다시 주방으로 내보내고 맨반 한 공기와 한 접시의 나물로
6일간의 단식을 끝내게 되었습니다.
토요일 시내에 나가서 아침식사를 같이 하자는 단식원장의 제의를 뒤로하고
서둘러 서울로 향했습니다. 내려 갈 때는 중앙고속도로를 이용했지만,
올라 갈 때는 대구와 원주를 잇는 내륙고속도로로 돌아가기로 했습니다.
한 곳에 진득하게 머물지 못하고 여기 저기 방황해야 하는, 왔던 길을
되돌아 가기 보다는 새 길을 찾아 다니는 내 성격에 시간과 기름을
길 바닥에 흘려 버린 채 서울로 돌아 왔습니다.
마치 한 달의 시간을 흐른 뒤 다시 맞이하는 서울의 모습은 흐린 날씨
때문이었을까 을씨년스럽기조차 했습니다. 노랗게 물들었으리라 생각했던
은행나뭇길은 바람결에 휩쓸려 다니는 낙엽들이 더운 내 마음을 슬프게 했고
이제 곧 다가올 11월의 허전함이 앞서 내 가슴에 몰려 오는 것 같았습니다.
일요일 아침 하지만 지금은... 언니책상에 여기저기를 뒤지다가 기름제거
종이를 하나 꺼내어 아빠 옆에 바짝 붙여 아빠의 얼굴을 닦아 주는 현주의
따스한 손길이 내 마음을 따스하게 만들어 주고 있습니다.
* 단식결과 보고 금요일 아침 속을 다 비우고 재 본 결과 5키로 감량
어제 하루 세끼의 식사를 다하고 잠자리에 들기 전에 재 본 결과 2키로 감량
그러나 일주일간 술을 마시지 않아서 주독이 빠진 듯한 얼굴을 본 아내의 이야기
- 계절마다 한번씩 내려 가라는 말에 나는 마음속으로 환호성을 질렀습니다.
자유를 얻기 위한 단식투쟁!
결국 성공~~~~
0610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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