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름 따라 길 따라

케냐 탄자니아

묵향의 이야기 2007. 3. 23. 08:28
 

 적도의 이글거리는 태양을 그리워했던가? 밀림속의 감춰진 비밀을 들추고 싶었던 것인가? 무엇 때문에 나는 아프리카를 향하려 했던가? 그 답은 찾지 못한 채 물길 따라 흘러가는 쪽배에 나를 띄우듯, 몇 년 동안 가슴속에서 용트림 쳤던 검은 대륙을 향한 그리움을 안고 나이로비 공항에 다다르게 되었다.



 새벽 어둠속에서 맞이한 열사의 땅 아프리카는 공항을 북적대게 만드는 검은 얼굴들만이 그 느낌을 전할 뿐 머나먼 곳의 정취를 느끼게 하지 못했다. 차라리 서편 하늘에 수평으로 떠있는 가냘픈 그믐달만이 우리네 땅에서 바라보던 옆으로 기운 그 모습과는 달라 머나먼 이국땅에 와 있음을 실감케 했다. 같은 달일 터인데 바라보는 눈과 마음에 따라 결국 달리 보이는 것인가 보다.



 공항을 나서며 줄지어 눈에 띄는 삼성전자 광고! 아내와 단둘의 베네치아 여행 중 피렌체 공항에서 마주했던 그 회사 직원들 모습이 떠오른다. IMF가 막 터졌음에도 예정된 여행길에 올랐던 나의 얼굴을 스스로 붉게 달아오르게 했던 그 숨 막혔던 순간! 자신을 위해, 가족을 위해, 그리고 나라를 위해 저 사람들은 뛰고 있건만, 나는 무엇을 하고 있는 것인가? 또다시 부끄러움이 휘몰아쳐 온다.



 많지 않은 여행 경험이지만, 늘 현대식 건물에 여장을 풀었던 것과는 달리 우리를 맞이한 호텔은 ‘사파리 호텔’이란 이름에 걸맞게 숲속의 쉼터로 품을 열어 주었다. 긴 비행의 여독을 잠시 풀고 버스에 올랐다. 아프리카의 중심도시 중에 하나인 나이로비의 길은 좁고 굽은 길이었다. 거의 일렬의 행렬로 줄을 지어가는 낡은 자동차들 꽁무니에서는 매연만이 뿜어 나왔고, 무계획적이고 다듬어지지 못한 도로 사정은 어두운 도시의 모습만을 드러내 놓은 듯 하였다. ‘도대체 케냐의 지도층들은 나라를 다스릴 생각이 있는 것인가?“라는 의구심만 피어오른다.



 얼마가지 않아 도착한 곳은 영화화된 자전소설인 ‘OUT OF AFRICA'의 주인공이 거주했던 농장 겸 카렌박물관이었다. 너른 마당 한쪽 구석에 놓여 있는 수레와 농기구들만이 세월의 흔적을 느끼게 할 뿐 그 숨결은 들려오지 않았다. 다음 행선지는 기린 농장! 몇 마리의 기린들에게 먹이를 주고 사진을 남기는 장소일 뿐. 동물의 낙원이라 생각하며 멀고먼 비행기에 몸을 실었던 내게는 실망감으로 비춰질 뿐이었다. 코끼리 고아원이란 곳에서는 사진 몇 장 찍고 돌아서는 우리네 사람들과는 달리 오랜 시간 무엇을 생각하는지 알 수 없지만 길고 긴 안내인의 설명을 듣는 서양인들의 모습이 아기 코끼리보다도 눈길을 끌었다. 분명 이것이 아프리카 관광의 전부는 아닐 것이란 생각을 해 보지만, 사파리 호텔을 나설 때의 설렘은 실망감으로 변해 버렸고, 호텔로 돌아오는 길에 잠시 들린 케냐의 국립박물관 또한 색안경에 가리워진 나의 눈에는 그저 스쳐지나가는 영상에 불과했다.



 검은 대륙에서의 첫날은 그렇게 흘러가고 둘째 날을 맞이했다. 나이로비에서 서북 방향 2시간 거리에 있는 나쿠루 호수 국립공원을 향하는 일정이었다. 케냐의 수도의 큰 대로변을 덮고 있는 빈민가와 길가의 쓰레기 더미들! 멀리 끝없이 펼쳐 보이는 난민촌! 그저 앞만 바라보며 걷고 또 걸어가는 검은 얼굴의 사람들! 무엇을 향해 걷고 있는 것인가? 무엇을 기다리며 살아가고 있는 것인가? 그들에게 행복은 있는 것인가? 그들에게 꿈은 있는 것인가? 세렝게티까지 이어진다는 대평원을 바라보기 위해 정차했다가 또다시 달리던 사라피 차량이 잠시 멈춰 섰다. 왕복 이차선 도로를 가로 막고 있는 대형 차량과 박살나 버린 작은 차의 처참한 모습! 그 길을 오가며 두 건의 사고 현장을 목격했다. 과연 그 죽음들은 보상이라도 받을 수 있는 것인가? 아니면 자동차 바퀴에 짓눌려 버린 동물들처럼 그렇게 묻혀 버리고 마는 것인가? 그 길을 달리는 차량들은 마치 죽음을 향한 질주였다. 그러나 그 길을 따라 원시부족처럼 걷고 또 걷고 있는 사람들은 평온한 삶의 모습이었다. 섣불리 밀려 오는 문명의 배에 올라탄 사람들은 풍파에 사라지고 있고, 있던 그 자리에 머물러 있는 사람들은 그나마 그 존재를 지키고 있는 것 같았다.



 큰 호수를 덮고 있는 플라밍고들! 그 빛깔에 핑크빛으로 물들어 버린 드넓은 나쿠루 호수와 그 가장자리의 초원! 처음으로 사파리 차량의 지붕 뚜껑을 열고 초원을 가로지르며 달린다. 갇혀진 곳에서 길러지는 동물들이 아니라, 약육강식 속에서 생명을 이어가고 있는 야생동물을 바로 눈 앞에 두고 있다. 단지 초식동물들만을 볼 수밖에 없는 것이 아쉬움으로 남았지만, 첫 번째였다는 그 설렘이 아직도 가슴에 남아 있다.



 사파리 호텔의 저녁은 커다란 나뭇가지 사이로 땅을 물들이는 황혼 빛으로 인해 절로 감상에 젖게 했다. 담으로 둘러싸인 넓은 호텔 산책로에는 조깅하는 서양인들의 모습도 보였고, 환타를 사달라며 남자를 유혹하는 소말리아 출신의 이슬람 소녀들도 있었다. 어둠이 깔리면서 시작된 야마초마 식사와 사파리 켓츠 공연 - 많은 사람들로 인해 혼란 그 자체였다. 구운 고기란 뜻의 ‘야마초마’가 다양한 야생동물들의 고기 맛을 즐기게 해 주리라 생각했지만, 근사한 복장 그리고 긴 포크와 나이프로 무장한 써빙 아저씨들의 혼란스런 발걸음으로 인해 나는 악어의 담백함만을 맛볼 수밖에 없었다. 공연이 시작되자 여기저기서 터지는 카메라 플레쉬! 그러나 왠지 내게는 슬픔으로 다가왔다. 아프리카 원주민의 전통 춤을 기대했던 내게 사파리켓츠 공연은 단지 흑인들에게 아프리카 복장만을 입힌 채 그들의 전통은 하나도 담지 못하고 서구화된 각본에 따라 묘기를 부리는 것으로 밖에 보이질 않았다. 무지의 소산 때문인가?



 날이 또다시 밝았다. 남으로 향하는 긴 여정을 위해 일찍 출발하려 했지만 지체되어 6시 45분 정각에 버스는 이동하기 시작했다. 호텔 담장을 벗어나자 창밖으로 바삐 등굣길에 오른 학생들의 모습이 보인다. 가난한 나라! 열대 우림 속의 게으른 자들의 땅! 그런 나만의 왜곡된 인상을 지우게 하는 바쁜 발걸음들이었다. 또한 이틀의 나이로비 체류 중 처음으로 바라보게 되는 나이로비 중심부의 넓고 잘 단정된 거리들은 케냐에 대한 어두운 생각들을 다시 한 번 되돌아보게 하였다. 어찌 그 짧은 시간으로 한 나라를 판단할 수 있겠는가?



 케냐와 탄자니아의 국경도시 나망가로 향하는 길은 우간다로 이어지던 그 길과는 달리 멀리 지평선까지 곧게 뻗어 있었고, 사람들의 흔적조차 찾아보기 힘들 정도의 초원지대를 가로지르는 도로였다. 마사이 부족 잡상인들로 들끓던 나망가에서 출입국 수속을 마친 뒤 탄자니아 버스로 갈아타고 또다시 남으로 향하던 50여명의 일행은 점심 도시락을 펼치기 위해 나무 그늘로 찾아 들어갔다. 털썩 주저앉다가 큰 가시에 엉덩이가 찔린 조카 녀석은 길길이 날뛰고, 동쪽으로는 남자들이 서쪽으로는 여자들이 볼 일을 보기 위해 무리를 지어서 사라진다. 그 와중에 어디선가 유유히 나타난 마사이 아저씨! 그의 손에는 어김없이 긴 막대기가 하나 들려 있었고, 원색 옷과 검은 피부는 뜨거운 태양 아래의 흑인 그 모습 그대로이다. 우리들의 사진 모델이 되어준 그 아저씨는 순박한 미소만 남긴 채 또다시 어디론가 앞만 보며 걸어간다. 그저 앞으로만 나가야 하는 인생처럼 앞만 보며 걸어간다.



 한나절동안 몸을 싣고 달려온 버스의 여정은 아프리카의 중심지에 있는 아루사에 도착한 뒤 마치고, 11대의 사라피 차량에 새롭게 세렝게티 사파리의 꿈을 실었다. 북쪽으로는 카이로로, 남쪽으로는 케이프타운까지 연결된다는 아루사 중심부의 아프리카 중앙 포인트를 지나친 사파리 차량 행렬은 잠비아로 이어지는 길을 따라 가다가 마냐라 호수가 보일 때 서쪽으로 난 길로 방향을 틀었다. 그 길은 몇 년 전까지만 해도 비포장 도로였지만, 일본의 무상원조로 새롭게 길이 뚫렸단다. 경제침탈을 위한 투자인가? 환경파괴를 위한 교두보인가? 은근슬쩍 일본인들에게 고마워하는 사파리 차량의 마사이 운전기사 말에 내심 속이 불편해진다.



 웅고룽고 분화구 산악지대 오르막으로 가기 전의 마지막 마을에 있는 Twiga 캠프 싸이트는 담장으로 둘러 싸여 있었다. 풀장과 작은 공연건물 그리고 잔디밭이 펼쳐져 있지만, 영화 속에서 보았던 그런 아프리카 초원에서의 캠핑 장소가 아니라는 서운함(?)이 밀려왔다. 그래도 아들과 텐트 안에서 잠을 청하고 싶었던 오랜 나의 소망이 드디어 이루어지는 날이었다. 몇 개의 램프로 불 밝힌 저녁식사 자리! 안 PD가 한 턱 쏜 탄자니아 술이 오가며 아프리카의 정취는 깊어간다. 비로써 그렇게 맞이해 보고 싶었던 검은 대륙에서의 밤을 맞이하고 있다. 첫날밤을 맞는 그런 설렘으로!



 고요한 밤의 정적을 깨뜨리며 어디선가 들려오는 북 소리에 발길을 내딛으니, 간단한 스낵과 맥주를 팔기 위해 꾸며 놓은 작은 건물로 들어선다. 세 명의 남자들이 두둘기는 타악기 소리는 절로 어깨를 들썩이게 하고, 곧이어 아프리카 특유의 괴성과 함께 작은 공간으로 밀려온 몇 명의 여인들의 현란한 춤은 인종의 벽을 넘고 관념의 틀을 깨도록 마음과 마음을 이어주며 우리를 무대로 이끌어 간다.



 소박하지만 현란했던 불빛은 꺼지고, 하나 둘 작은 보금자리로 찾아간다. 남아 있는 것은 풀벌레 소리뿐! 이제 적막이 찾아오고 있다. 생과 사의 경계를 넘듯 육신의 활동은 멈추고 마음속 세계가 펼쳐진다. 함께 공유했던 현실은 더 이상 존재하지 않는다. 오직 한 사람 한 사람의 무한한 자유가 펼쳐질 뿐이다. 그렇게 우리는 꿈의 나라로 향하고 있었다.



 들리는가? 느껴지는가? 알 수 없는 부름에 나는 잔디밭에 서서 밤하늘만을 바라보고 있다. 홀로 있음에도 혼자가 아니었다. 이미 별빛에 내 영혼은 녹아 버려 촘촘히 박혀 있는 수많은 별 중에 하나가 되어 있다. 밤하늘은 땅거미 내려앉듯 나를 덮고 땅을 덮어 하늘과 땅이 하나가 되었다. 별빛은 쏟아지고 내 영혼은 선율이 되어 하늘로 향한다. 하늘이 어디이며 땅이 어디인가? 하늘을 향한 나의 행복의 통곡은 별빛 되어 메아리쳐 온다. 내 마음은 터져 버려 아프리카 밤하늘의 숱한 별들로 흩어져 버렸다. 나는 더 이상 존재하지 않는다. 나는 그날 밤 그렇게 별빛에 사라져 버린 것이다.





 웅고룽고 분화구 국립공원 초입에 있는 마지막 마을을 지나친 차량은 관리사무소를 지나면서 울창한 원시림 숲 속 비포장도로를 힘겹게 올랐다. 멀리 내려다보이는 분화구 안의 호수와 그곳 평원을 배경으로 사진을 찍기 위해 잠시 멈춰 섰다. 우리를 맞이한 쌀쌀한 바람결에 옷깃을 여민 뒤 또다시 달리니, 매일 소 떼에게 물을 주기 위해 산을 오르내리며 호수로 몰고 가는 마사이 사람들이 보였고, 사파리 차량의 지붕 뚜껑을 연 채 급경사의 외길을 따라 내려가니 끝없는 초원이 펼쳐져 있다. 긴 다리 때문에 경사진 길을 내려올 수 없어 기린만은 볼 수 없다는 그곳에 다다르니 먼지를 일으키며 달리는 우리 사파리 차량에 라이온 하이에나 버펄로 가젤 제브라 코끼리 등이 그 모습을 드러낸다. 태고의 신비가 느껴진다. 높은 산봉우리로 둘러싸인 그 비밀의 초원에 처음으로 발을 내딛었을 어느 동물은 그 얼마나 외로웠을까? 무리를 지어 왔을까? 홀로 길 잃어 찾았을까?



 입 속에 넣기 위해 손에 들고 있는 닭 조각을 쏜살같이 하늘에서 내려온 커다란 새가 날카로운 발톱을 드리운 채 낚아 채 간다. 아기 원숭이를 가슴에 품은 어미 원숭이도 어느새 바나나 하나를 도둑질하여 나무 위로 달아난다. 또 다른 급경사의 외길을 따라 분화구를 빠져 나온 차량은 꼬리에 꼬리를 물고 세렝게티를 향해 달린다. 길가에는 몇몇의 마사이 아이들이 나와 그들 얼굴에 전통 분장을 한 채 긴 막대를 왼손에 들고 괴성을 지르며 특유의 몸짓으로 이방인들을 위협한다. 사냥감을 향해 내지르던 그들의 창은 ‘달러’를 구걸하기 위한 도구로 변해 버렸다. 지나치는 이방인들을 향해 몇 날 며칠을 뛰고 또 뛰어도 한 장의 지폐도 얻지 못할 것 같지만, 마사이의 어린 아이들은 뛰고 또 뛴다. 그들은 구걸하고 있는 것이 아니라, 더 이상 그들의 자리를 뺏기지 않기 위한 몸부림은 아닐까? 사냥꾼에서 유목민으로, 그리고 주인에서 객으로 밀려나는 그들의 울부짖음은 아닐까?



 더 이상 핸들을 잡고 있을 필요가 없다. 웅고룽고 평원에 맛대어 이어진 세렝게티 대평원을 향한 길은 서쪽으로 그어진 오르막도 내리막도 없는 직선과 같았다. 두 개의 대 평원은 하나일 뿐이지만 인간은 굳이 경계를 그어 놓는다. 여기는 웅고룽고, 저기는 세렝게티! 끊임없이 들려오는 무전기 소리에 세렝게티 관문에서 멈춰 섰던 차량들이 길에서 벗어나 초원을 달리니 바로 앞에 사자 몇 마리가 그 모습을 드러낸다. 가까이서 바라볼 수 있게 되었다는 반가움은 잠시뿐 - 결코 자연으로 돌아갈 수 없는 인간사의 한계가 느껴진다. 사자들과 한판 씨름이라도 해야 그 땅 위에 있음을 실감할 수 있을까? 이미 나는 시멘트 건물을 치장하는 하나의 악세서리가 되어 있다. 결코 땅 위에도 설 수 없고 하늘 아래에도 누을 수도 없는 자연과 격리된 존재가 되어 버렸다.



 가젤 얼룩말 누우 기린 그리고 타조 떼는 더 이상 카메라 렌즈에 담을 필요가 없었다. 빅 5 중 코뿔소 버펄로 코끼리 그리고 사자도 이미 또렷이 기억에 새기어졌다. 세렝게티 국립공원 관리사무소를 거쳐 캠프 싸이트로 가던 길에 또다시 차량들이 멈춰 섰다. ‘럭키~ 럭키!“를 연발하며 운전사는 저 멀리 나무를 가리킨다. 나뭇가지에 걸쳐 엎드리고 휴식을 취하고 있는 레오파드는 저무는 석양을 등지고 실루엣이 되어 미동조차 없다. 간신히 200미리 망원렌즈로 당겨 보니, 비로써 빅 5의 하나인 표범의 그 무늬가 담겨진다.



 문짝이 달린 뒷간은 그나마 현대식 시설이었다. 지붕과 철망으로 둘러쳐진 조리 시설을 제외하고는 수풀과 캠프장의 경계가 없다. 일정표에 샤워실로 표기되었던 세면장은 땅 속에서 삐져 나온 호수 하나가 전부였고, 물막이 꼭지조차 없기에 흘러나오는 물은 호수를 크게 꺾고서야 멈춘다. 많은 사람들로 인해, 물 티슈 한 장과 가그린 한 모금으로 세면을 대신하고 어둠을 맞이한다. 희미한 호롱불에 어렵사리 늦은 저녁 식사를 마친 선생님들이 옹기종기 모여 오래된 추억의 노래를 부른다. 별빛 아래서......



 지난밤에 대한 미련 때문인가? 새벽 3시가 갓 넘었을 쯤에 별빛이 나의 보금자리를 두드리는 소리에 눈을 떴다. 밤하늘의 별들과 달님만이 깨어 있을 뿐 인기척 하나 없다. 급하지는 않았지만 편한 하루를 위해 작은 랜턴을 비치며 멀리 떨어져 있는 뒷간을 찾으려니 가까운 수풀 속에서 둔한 움직임과 함께 바스락 소리가 들리고, 뒷간 문을 열어 제치니 박쥐가 아래서 튀어 날아오른다. 혹이라도 다른 분들의 잠을 깰라 조심스런 발걸음으로 맨 가장자리 구석에 있는 텐트로 돌아오는데, 두 분의 선생님이 작은 불빛에 의지한 채 세면장을 찾고 있다. 셋이 모이니 오싹하던 등골은 제자리를 찾고, 달빛 아래 예쁜 단장이 시작되었다. 한 사람은 랜턴을 비춰 주고 한 사람은 호수를 들어 올려 주고 한 사람은 샴푸와 린스로 머리를 감는다. 아웃 옾 아프리카의 한 장면이라던가? 그런데 그날 아침에 안 사실이지만, 세면장에 선명한 발자국을 남겼던 사자의 출현 때문에 아침까지 텐트 밖 외출이 금지되었었고, 깊은 밤에 하이에나가 텐트 앞에 놓여 있는 음식물 상자를 도둑질해 갔단다. 어쩌면 그 수풀 속에 있었을 사자는 달밤에 예쁜 단장을 하던 세 사람의 무모한 용기가 가상타고 혀를 내둘렀을까 아니면 입맛을 다지고 있었을까?



 동물들의 활동이 가장 활발한 아침에 게임 드라이브를 하기 위해 어둠이 가시기도 전에 캠프장을 출발했다. 줄줄이 이어 가는 중에 8호차 기사가 차를 멈춘다. 당신이 찍고 싶어 하던 멋진 장면을 렌즈에 담을 수 있으니 잠시 동 트는 것을 보고 가자고 한다. 하늘 그리고 땅! 그 사이에 오직 하나의 나무를 담고 싶어했던 내 마음을 읽었던 모양이다. 지체되는 시간에 아무런 불평 없이 기다려 주는 일행의 배려에 감사의 마음을 느끼며 낡고 낡은 카메라 셧터를 눌러 댄다.



 부디 한 장의 사진이라도 건지게 되길 바라면서 또다시 달리는 차량에 마음을 실으니 동쪽을 응시하며 조용히 엎드려 있는 사자 무리를 보게 되었다. 또 다른 한편에서는 외박하고 돌아오는 것인지 멋진 갈퀴로 목을 두른 숫사자가 우리 사파리 차량 사이를 헤집고 일행에 합류한다. 알 수 없는 정적! 그 반대편에서는 버펄로 떼들이 서쪽 방향의 사자들을 향해 잔뜩 경계의 눈빛을 보내고 있다. 한나절을 기다려도 아깝지 않을 적자생존의 현장을 볼 수도 있으련만, 많은 이들의 생각을 모을 수 없기에 이동할 수밖에 없었다.



 한낮의 캠프촌에서의 빈둥거림도 사라피 여행의 별미였다. 뜨거운 태양 아래 그늘에서 휴식을 취하는 동물들처럼 얽매인 시간의 틀에서 벗어나 자연의 숨결에 동화되는 것도 한 마리의 맹수를 더 보는 것 보다 진정한 사파리의 맛을 더하는 것이 아니었을까?



 오후 사파리 일정으로 찾은 곳은 하마들이 득실거리는 작은 연못이었다. 운 좋게도 크게 입을 벌리며 하품을 하는 하마의 얼굴을 바로 옆면에서 망원렌즈로 담을 수 있었다. 돌아오는 길에, 물속 깊이 숨어 버린 커다란 악어에 대한 아쉬움을 뒤로하고 길가의 코끼리 떼를 바라보고 있으니, 뒤따라 달려온 차량에서 안 PD가 외친다! 다리 5개 달린 코끼리를 보라고..... 열심히 카메라 셧터를 눌러 대다 보니 땅에까지 닿아 있던 다리 하나가 사라지며 다리 4개 달린 코끼리로 돌아오는 것이 아닌가?



 어둠과 함께 먹구름이 몰려오고 있었다. 전날에 하이에나의 습격이 있었기에 그 무리를 몰고 올 수 있으니 오늘밤은 동틀 무렵까지 통행금지란다. 그래도 남자가 옆 텐트에 있으니 걱정 말라고 큰 소리 치던 나는 술에 골아 떨어져 사자의 포효보다도 더 큰 코고는 소리로 텐트를 뒤흔들었다. 기분 나쁜 울음소리를 내며 텐트촌을 헤집고 다닌 하이에나의 출현도 모른 채 잠 속에 빠져 있던 나를, 텐트 안에 홍수가 났다며 아들이 흔들어 깨운다. 우비를 꺼내어 입히고는 그나마 덜 젖은 내 자리를 아들에게 내어 주고 밖을 둘러보니 몇몇 분들이 우산을 받쳐 든 채 사파리 차량으로 몸을 피한다. 다른 텐트에서 자고 있던 조카에게 가보니 반바지와 런닝 차림의 꼬마 녀석이 젖은 몸을 움크린 채 떨고 있기에 겨울 외투를 꺼내 입혔다. 나의 코고는 소리에 민폐를 끼칠 수 없어 사파리 차량에도 가지 못한 나는 낙동강 오리알이 되어 추위와 비를 피해 홍수가 나 비어 있던 옆의 텐트로 들어섰다. 또다시 하이에나의 울음소리가 들린다. 점점 가까이 다가오는 공포! 맨 가장자리에 있던 내 텐트 안의 아들 녀석이 혹이라도 깨어 홀로 있음을 알고 아빠를 찾고 있지 않을까 걱정이 된다. 텐트 입구의 자크를 열기도 겁난다. 바로 옆에 있건만 몇 발자국도 내딛기 전에 하이에나가 뒷다리를 물 것만 같다. 그래도 아비 노릇은 해야 하니 용기 내어 건너갔고, 결국 쪼그리고 앉아 추위에 떨며 새벽을 맞이해야 했다.



 아름다운 모습이다. 아들과 조카 녀석에게 주변의 휴지를 주어 오라 시키고 뒷짐 지고 서 있으려니 쓰레기 더미에 맨 손을 넣고 분리수거를 하는 분, 구석진 곳까지 애써 다가가 남겨진 것 없이 담아 오는 분들의 모습에 낯 부끄러워진다. 또한 지난밤의 불편과 고통에 대해 이해와 배려의 마음으로 한마디 불평 없이 새 아침을 밝은 표정으로 맞이하는 분들의 따스함도 느껴졌다.



 우리의 먹거리와 잠자리를 실은 트럭의 고장으로 긴 시간을 길 위에 서 있다. 수풀을 헤집고 볼 일을 보러 가자니 맹수의 먹이감이 될까 봐 발길을 내딛을 수도 없어, 몇 몇 사람들이 모여서 길게 늘어선 차량의 꽁무니로 간다. 웃옷으로 간이 칸막이를 둘러치니, 서울에서 최작가에게 듣던 멋진 화장실이 만들어진다. 아침 사파리 드라이브의 일정을 생략하게 되었음에도 궂은 표정 없이 이야기꽃을 피운다. 자연의 숨결이 사람들의 마음을 넓게 만들어 준 모양이다.



 아루사에서 웅고룽고 분화구를 거쳐 세렝게티로 향했던 길을 되돌아오다가, 그 분화구가 폭발했을 때 화산재가 날라와 그 지상에 존재하던 생명체를 묻어 버린 뒤 세월을 잃어 버렸던 울두바이 계곡을 들렀다. 인류의 기원으로 알려진 화석을 발견한 곳! 한 평생 한 줌 한 줌 흙을 걷어 올렸을 때 위대한 발견을 할 것이라 기대했을까? 야심에 찬 도전과 허망한 꿈 사이의 경계는 무엇일까?



 분화구 고지대에서 내려오면서 커다란 바오팝 나무들을 지나치고 24명의 아내를 둔 마사이 부족장의 집을 부러운 눈으로 바라보면서 달리니, 나이로비를 떠나 처음으로 자연의 품에 안겨 잠을 청했던 그 캠프촌을 지나치자마자 ‘마사이 관광마을’이란 표지를 보게 된다. 정글을 헤치고 열대 우림 속에 모습을 감춘 마사이 부족 마을을 그리던 내게는 성급한 아쉬움이 생긴다. 넓은 초원 위에 몇 채의 가옥들이 한 집이 되어 듬성듬성 모여져 마을을 이룬 곳에 텐트가 쳐져 있고, 이제는 낯익은 마사이 사람들이 환영행사를 펼치기 위해 손님맞이 준비를 하고 있었다. 사냥과 전투에 앞서 전의를 북돋기 위해 오직 발돋움의 힘만으로 점프를 하며 성공을 기원하는 전통 행사를 보여주었고, 자신의 죽음을 예견했음인지 필사적으로 도망치는 하얀 소를 잡기 위해 마을의 청년들이 또한 필사적으로 달린다. 배고픔을 채우기 위해서가 아니라 흥미와 미각을 더하기 위한 살생이 시작된다. 차마 바라보기 미안해서 자리를 피하니, 작은 막대를 들고 있는 남자 아이, 예쁜 전통 옷을 입고 있는 어린 여자 아이와 잠들어 있는 아기를 살포시 안고 있는 젊은 부인 그리고 어김없이 긴 막대를 들고 있는 그의 남편 - 한 가족의 나들이와 마주쳤다. 머리털 하나 없이 밀어버린 다섯 식구 머리에 저녁 햇살이 빛난다. 환한 미소를 머금은 그들 표정에는 행복과 평화 그리고 생의 여유가 담겨있다. 빈곤을 안고 살아가는 것이 아니라, 세월의 쫓김 없이 영원토록 떠있는 해와 달을 바라보며 자연의 풍요와 어우러져 살아가고 있는 것이다.



 어둠은 짙게 내리고 장작불이 피워졌다. 손에 손을 잡고 모닥불 가에서 낭만의 추억을 만들고 싶었지만 많은 사람들로 인해 아쉬움으로 남기고, 주술 같은 외침과 함께 땅이 꺼져라 하늘이 무너져라 위 아래로 뜀박질하는 마사이 전통 춤에 불길처럼 휩싸인다. 장작불은 꺼져 가고, 하나 둘 피곤한 몸을 이끌고 텐트로 흩어질 때 가장자리 한쪽에서 또다시 술자리가 펼쳐졌다. 텐트 주위에서 보초를 서던 마사이 아저씨가 합류하려 했지만, 별과 풀과 우리들의 이야기를 방해받고 싶지 않았다. 그날 난생 처음이자 아마 마지막으로 하늘을 이불삼아 땅을 침대 삼아 별빛 아래 누웠다. 새벽 동이 터 올 때까지! 간절한 마음으로 별님 향해 손을 뻗으며......



 예정되어 있던 몇 가지 행사가 취소되었다. 아쉬움에 무리해서라도 진행하기를 요청해 보고 싶었지만, 말씀 한마디 없이 주최 측의 진행에 쫓아 주는 많은 분들의 고운 마음에 사흘 밤의 캠프 생활을 마무리하고 아루사로 향했다. 전화위복이라 했던가? 여유 있는 시간으로 인해 세 남자(아들 조카 그리고 나)의 가득한 빨랫감을 일부는 세탁소에 맡기고 일부는 빠는 것이 아니라 물에 행구기만 한 채 내일을 준비할 수 있었다. 또한 보름간 길러 보리라 마음을 먹었던 내 턱 수염을 더 이상 못생긴 얼굴에 흉칙함을 더하는 폐를 끼칠 수 없어 몇 번의 면도질 끝에 말끔히 정리할 수 있었다. 그리고 어슬렁거리며 거닐게 된 아루사 시내에서의 발걸음도 의미 있는 관광이었다. 유치장처럼 쇠창살로 둘러쳐진 가게의 진열장! 현대와 전통, 부와 빈 그리고 많은 종교 색채로 뒤섞여 있는 사람들! 여행은 많은 것을 보는 것이 아니라 많은 것을 느끼는 것이리라!



 여유 있는 정리와 휴식의 시간을 가졌음인지 저녁 식사를 위해 호텔 식당에 모인 분들 모두의 모습이 밝았다. 한 배를 타고 떠났던 사파리 여행에서 서로에 대한 깊은 배려가 있었고 각자 자신의 역할에 충실했기에 아무런 사고 없이 추억에 깊이 남길 수 있는 아름다운 여행이 되었던 것에 작은 감사의 마음을 보내고 싶었다.



 밤의 문화도 관광이다. 20대 30대 일행이 아프리카의 밤 문화를 체험하기 위해 나선다는 정보를 입수하고 동참했다. 10시가 되어서야 문을 연 탄자니아의 나이트는 썰렁했다. 비어 있는 스테이지를 우리 일행이 채우고 있으니, 몇 사람의 흑인과 함께 여행객인 듯한 백인들이 몰려왔다. 그러나 물과 기름과 같이 각자의 원을 만든 채 동떨어져 놀고 있다. 다양한 문화를 체험하기 위한 것이 여행의 목적이기에 흑색 백색 황색이 어우러져 놀아 봄 직한데, 무엇이 벽을 만들고 있는지 한동안 서로의 눈치만 살핀다. 용기 내어 술 취한 척 백인 여인 앞으로 다가가 허우적거리고 있으니 그제야 두 개의 원은 하나로 합쳐진다. 귓전을 때리는 댄스곡이 울릴수록 고요하기만 했던 별빛에 대한 그리움이 깊어진다. 가까이 다가서고 싶다. 아련한 그리움에 먼저 그곳을 나와 밤하늘을 찾아 나선다. 별빛은 아무 말 없이 맞이해 준다. 그 미소를 모든 세상 사람들에게 공평하게 나누어주고 있다 할지라도, 나는 그날 밤 아무도 모르게 별님을 향해 나만의 이야기를 속삭였다. 영원히 간직하고 싶은 아프리카의 밤하늘이라고.....



 백두산 천지를 바라보게 되었을 때도 그랬다. 일년에 몇 번밖에 볼 수 없는 행운이라고! 열대의 땅 아프리카 중심부에 자리하면서도 만년설의 백색 순결을 우리에게 또렷이 내보이는 킬리만자로! 곧 구름에 가리게 될 것이라던 그 정상은 그 다음날 다레살람으로 향할 때도 모습을 드러 내고 있었다. 그러나 우리 일행이 축복 받았다는 것은 산행을 하면서 느낄 수 있었다. 등산길이 진흙탕일 수 있다던 이야기는 커다란 나무에 주렁주렁 매달린 이끼들을 보고 비구름에 자주 그 모습을 감추었을 킬리만자로를 떠올리면서 사실이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



 아름다운 사람들과 아름다운 숲 속 길을 거닐며 아름다운 이야기를 나눈 산행이었다. 앞에서 이끌어 주고 뒤에서 밀어 주며 보살펴야만 하는 아이들 이야기 그리고 산을 오르고 내려와야 하듯 살아온 지난날들과 살아갈 날들에 대한 이야기는 긴 산행의 시간을 짧게 느끼게 했다. 뒤쳐져 올라갔다가 여기저기 두리번거리며 하산하는 아들을 바라본다. “그래! 빠른 걸음만이 인생을 성공으로 이끄는 것은 아니겠지. 엄마 아빠도 네가 남들보다 앞서 가길 바라지만, 오히려 천천히 많은 것을 느끼고 바라보며 내딛는 발걸음도 너의 삶을 풍요롭게 할 것 같구나. 아빠가 생각하는 너의 행복이 아니라, 네가 가슴에 스스로 담을 수 있는 삶의 경험이 네게는 더 큰 행복이 되겠구나.” 킬리만자로의 산행은 나에게 다시 한번 깨달음을 안겨주었다. 또한 초입에서 돌부리에 걸려 얼굴을 크게 다쳤는데도 끝까지 포기하지 않고 만다라 산장까지 발길을 내딛으셨던 연세 드신 그 분의 열의와 재빨리 성심성의를 다해 응급조치를 취해 준 선생님의 따스한 손길은 이번 여행을 축복 받은 여행으로 마무리할 수 있게 한 커다란 힘이 무엇이었던가를 생각하게 했다.



 아루사로 다시 돌아와 동부아프리카 내륙에서의 마지막 밤을 보냈다. 4박 5일의 캠핑과 킬리만자로의 산행의 마무리는 여행의 큰 부담을 덜어 놓게 했다. 다음날부터의 여정은 단지 휴식의 시간일 뿐 더 이상 어떤 의미도 내게 안겨 주지 못하리라 생각하며, 20개의 소주팩과 2개의 댓병 소주의 마지막 방울을 입에 털고 잠결에 빠진다. 잔지바르에서 아프리카 여행의 또 다른 의미를 깨닫게 되리라는 것을 알지 못한 채.....



 다루살렘으로 가는 길은 아프리카로 향해왔던 여정만큼 먼 길이었다. 이른 아침에 아루사를 출발했지만, 저녁때쯤에서야 다루살렘의 크지 않은 호텔에 여장을 풀 수 있었다. 차량에 갇혀 이동하는 길에 지난날들을 되돌아보고 앞으로 나갈 바를 계획해 보리라 마음먹었던 것은 끊임없이 쏟아지는 잠결에 묻어 버리고 말았다. 호텔 주변의 뒷골목을 돌아보고 오신 분이 안전의 문제 있다는 말씀에 그 날은 호텔 안에 머무를 수밖에 없었다. 잠 못 이루는 고통에 새벽 1시가 넘어 로비에 나가 보니, 젊음을 만끽하기 위해 외출을 나갔던 두 명의 일행이 늦은 시간에도 돌아오지 않음에 안 피디와 최 작가가 찾아 나섰단다. 2시 가까이 되서야 연이어 들어오는 일행들! 가족처럼 생각하고 관심을 기우리며 늦은 밤 외출을 마다하지 않은 두 사람의 모습이 고마우면서도 안쓰러웠다.



 탄자니아의 경제 수도답게 아침을 맞은 다루살렘의 거리는 활기찼다. 잔지바르 섬을 향하는 배에 오르기 위해 도착한 항구는 남루한 옷차림의 사람들이었지만 많은 이들로 북적였고, 선상에서 바라본 다루살렘의 건물들은 이른 아침 햇살에 깊이 눈망울에 맺혀 왔다.



 두 시간 여의 항해 끝에 도착한 잔지바르섬의 항구는 자그마했지만 스톤타운을 뒤로 한 채 잘 정돈되고 깔끔한 모습으로 우리를 맞이했다. 향신료 농장으로 향하는 버스 안에서 부산 아주머니가 마지막으로 남겨 둔 매실주 한 병을 여행 동반자의 정을 듬뿍 더하여 한 잔 두 잔 모두 내게 따라 주신다. 얼큰한 취기에 빠져 도착한 향신료 농장은 이국적 정취와 향기로 우리를 감싸 안는다. 높은 야자수 나무에 맨 손으로 올라 열매를 떨어 뜨려 주고, 풀잎으로 근사한 모자와 손바구니를 만들어 건네주던 젊은 그 남자의 다정한 미소가 그립다. 농장 안 숲 속에 달랑 한 채로 감춰있던 흙벽돌 집 앞에 젊다 못해 어린 부인과 천진스럽게 장난치며 이방인을 향해 웃음을 내비추던 아이들 그리고 부인인지 아이인지 알 수 없지만 성숙된 묘한 미소를 지으며 흙벽돌에 기대어 나의 카메라 렌즈의 모델이 되어 준 여인이 인화된 사진으로 아직도 내 곁에 남아 있다.



 부족한 점심 준비로 몇 명의 일행의 배를 굶게 만들었던 향신료 농장을 뒤로 하고, 비포장도로를 달려 도착한 리조트는 핸드캐리어 짐조차 끌고 가기 힘들 만큼 세련되지 못한 시설이었다. 그러나 짐을 적당히 숙소에 내던지고 발길을 내딛어 모래사장에 다다르니 탄성이 절로 난다. 잔잔한 파도 물결은 차라리 정지되어 있는 바다와 같았고, 길게 뻗어 있는 해변과 하늘 그리고 바다가 맞닿은 그곳은 명사십리를 바라보는 착각에 빠지게 만들었다. 모든 것이 멈춰 있는 것 같다. 시간도 파도도 바람도 멈춰 있다. 길고 험한 여행과 사파리 일정의 여독은 어제와 내일의 일상과 함께 그 정지되어 있는 시간에 사라져 버렸다. 그저 현재만 있을 뿐이다.



 동부 아프리카 잔지바르 섬을 감싸 안고 있는 인도양 하늘을 황금빛으로 물들인 석양은 사라짐이 아쉬워 수평선에서 모래사장까지 마지막 긴 햇살을 드리운 채, 자신에게 달려오라며 바다 위에 은빛 길을 만들어 준다. 시나브로 어둠은 내리고 밤하늘의 별들은 몹시도 밝은 달빛에 숨을 죽이고 있다. 해변의 커다란 원두막 아래 마련된 바베큐 식사와 몇 잔의 맥주는 시간의 흐름을 잊게 했다. 석양이 만들었던 바닷길이 또다시 열렸다. 어느덧 서편 수평선 위에 머물러 있던 달이 나 서 있는 모래사장까지 손길을 뻗는다. 밤하늘을 바라보기 위해 찜해 놓았던 비치 파라솔 자리를 앗겨 갈 곳 없는 이방인이 되어 버린 나는 달님의 유혹에 그 길을 따라 바다 속으로 들어간다. 아카시아 향기에 취해 나를 잃었던 그 어느 날처럼 정신이 아득해진다. 몸을 휘감는 바닷물은 그 존재조차 느껴지지 않는다. 알 수 없는 힘에 이끌려 그 빛이 처음 시작된 곳으로 그저 발을 내딛는다. 어느덧 턱밑까지 물이 차올랐을 때 아직은 아이들의 아빠로 머물러 있어야 함을 깨닫고 서둘러 몸을 돌린다. 그러나 또다시 나를 유혹하는 달빛에 이끌려 저 먼 세상을 향해 다가선다. 그러하길 몇 번......



 어김없이 떠오르는 태양을 등지고 발을 내딛은 해변은 지난밤의 모든 흔적을 지우고 있었다. 무인도에서의 휴식과 현지식 별미 그리고 인도양의 스노쿨링을 맛보게 하기 위해 우리 일행을 나누어 태운 두 대의 작은 배가 장비를 보충하기 위해 잠시 또 다른 해변에 들렸을 때, 배멀미가 심한 조카와 안 피디가 하선하여 1시간여 모래사장을 걸어 리조트로 돌아갔다. 앞서거니 뒷서거니 인도양을 헤치고 달려간 통통배는 일행의 일부를 무인도에 내려주고 바다 한가운데에 닻을 내렸다. 바다 속 깊이 내려가지 못함을 아쉬워하며 파도에 몸을 맡기고 있으려니, 출렁거리는 배 위의 소주 한 잔 그리고 초고추장에 즉석에서 마련된 생선회가 그리워진다. 다시 돌아온 무인도의 바다 속은 산호초로 덮여 있어서 배에서 내려 모래사장까지 맨 발로 걷기가 무척 고통스러웠다. 그 고통을 호소하는 다 큰 꼬마 녀석을 등에 업고 최 작가가 힘겹게 걸어간다.



 작렬하는 태양 그리고 뜨겁게 달아오른 모래사장의 무인도는 게 눈 감추듯 햇살을 피해 작은 그늘이라도 찾아 들어가 서둘러 몸을 감추게 만든다. 단절된 세상이었다. 시간도 멈춰 버렸다. 아무도 없는 그 섬의 작은 바위들처럼 그저 그 자리에 멈추어 있음을 즐기고 느낄 뿐이다. 장작불에 구은 생선과 잔지바르 부침개가 곁들여진 점심은 여행의 새로운 별미였다.



 리조트로 돌아와 잠시 휴식을 취했던 일행은 다우선에 다시 몸을 싣는다. 어느덧 돛이 펼쳐지자 정지되어 있다고 생각되었던 배는 이미 해안을 따라 한참 멀리와 있다. 靜 과 動이 하나로 엮여져 있다. 앞으로 나가되 멈추어 있고, 그 자리에 있되 이미 다른 곳에 와 있다. 그 옛날 바람결에 인도와 잔지바르를 이어주던 다우선은 한동안 그렇게 우리를 품에 품고 있었다. 그 다우선이 달빛의 속삭임을 들으며 휴식을 취할 때쯤에, 우리는 큰 원두막 아래에 모여 최 작가가 들고 온 두개의 커다란 맥주통을 남김없이 비우며 세랭게티 야영의 미련과 마무리되어 가는 여행에 대한 아쉬움을 떨쳐야 했다.



 비포장도로의 먼지와 세련되지 못했던 리조트의 기억이 채 사라지지 않아서인지 스톤타운의 거리는 생각보다도 깔끔하고 발전된 모습으로 보였다. 시내 초입에 있는 잔지바르 관광청이 자리하고 있는 작은 건물은 아프리카의 개척자로 불리는 리빙스턴의 기념관을 겸하고 있었다. 아프리카를 유럽인들에게 소개하고 아프리카 땅과 강물에 영국의 이름을 붙여주고 훗날 백인들이 검은 대륙을 찾았을 때 길 안내가 되도록 지도를 만들어 주었던 리빙스턴! 그는 개척자인가 침략자였던가? 그러나 그가 죽게 되자 두 명의 하인이 아프리카 어느 나무 아래 심장을 묻어주고, 그의 시신을 갈 수 없는 나라처럼 여겨졌던 영국으로 모시고 가 안장시켜 주고 다시 돌아 왔다는 이야기를 들으니, 리빙스턴이 아프리카에 쏟았던 사랑과 온갖 역경 속에서도 함께 했던 그들의 우정이 느껴진다.



 멀지 않은 곳에 노예시장이 있었던 곳을 찾았다. 흑인들을 잡아다가 바닷물이 들어오는 지하 창고(!)에 차곡차곡 쌓아 놓았다가, 그 사지에서 벗어날 수 있었던 튼튼한 물건(!)만을 경매에 붙이고는, 그 노예들이 머리도 들지도 못한 채 옆으로 누워 있도록 짐칸(!)이 만들어진 화물선에 선적(!)을 하여 유럽으로 그리고 아메리카 대륙으로 실어 날랐던 곳이란다. 그러나 그렇게 노예로 팔려 나갔던 흑인들이 혹사당했던 그 대륙에서 이제는 백인들의 삶의 터전을 잠식해 가고 있다는 사실은 역사의 아이러니라 할 수 있지 않을까?



 그 자리에 후세의 백인들이 아프리카에 대한 착취와 노예들에 대한 죄의식을 덜고자 세웠던 성당이 문을 열어 놓고 있었다. 그곳에는 이방인들의 분주한 발걸음과 카메라 후레쉬에도 아랑곳없이 엄숙하고 진지한 분위기속에서 무슬렘 학생들이 선생님의 이야기에 귀를 기우리고 있다. 성당 안에 이슬람교 학생들! 그들은 아프리카 대륙에서 사람과 유적 그리고 자원을 약탈해간 기독교 문명의 서구인들이 인구의 90%이상이 무슬렘인 잔지바르의 자존심은 앗아가지 못했음을 바로 그 성당에서 조롱하고 있는 것은 아닐까?



 잔지바르 항구와 인접한 해변에 자리하고 있는 ‘텐버’ 호텔에 여장을 풀었다. 그리도 험한 텐트 생활로 우리 일행을 고생(?) 시키더니(사파리 여행을 위해 우리 스스로 택했던 것이지만), 고풍스러우면서도 아름다운 호텔에서 마지막 아프리카 밤의 추억을 꿈꾸란다. 첫날 사파리 여행을 그려 보라고 ‘사파리’ 호텔의 멋진 밤을 마련해 주고, 이제는 혹이라도 어둡고 거친 아프리카의 기억이 있다면 모두 떨치고 달콤한 추억만 간직하라며 멋진 ‘텐보호텔’로 이끈다. 주최 측의 세심한 기획에 깊은 감사를 느끼면서도 오히려 얄궂다는 생각이 든다.



 박물관과 경이의 집을 함께 둘러 본 뒤 쇼핑과 거리 구경을 위한 자유시간이 주어졌다. 베네치아의 골목길만큼 좁고 얼키설킨 길들을 따라 아이들과 함께 세상 구경을 나선다. 피카소의 작품세계를 지배했다는 아프리카 전통 문양의 접시를 하나 사들고 또 다른 골목길을 헤매니, 아주 작은 광장에서 동네 할아버지들이 모여 내기 도박을 하고 있다. 근처 허스름한 가게에 들리니 아이들이 사고 싶어 하던 체스판이 있었고, 먼저 들린 가게에서 더 이상 깎아 줄 수 없다던 그 가격을 제시한다. 선뜻 돈을 지불하려 하다가, 아이들에게 더 싸게 흥정해 보라 시키고서 가게 밖에 나가 있으니, 1달러를 깎아 사기로 합의했단다. 좀 더 세상과 흥정하는 법을 보여 주고자 가게 주인에게 서툰 영어로 말을 건네니 단호하기만 하다. 그래도 아빠 체면에 “아이들에게 세상사는 현실을 가르쳐 주고 싶으니 조금 더 깎아 달라”고 청하니, 60살 넘은 초로의 주인아저씨는 단호했던 얼굴의 표정을 바꾸며, 오히려 나의 아이들에게 덤으로 따스한 말씀을 건네주신다. “10개월 동안 뱃속에서 너희를 키워준 어머니와 세상을 헤쳐 나가도록 키워주는 아버지에게 항상 감사하게 생각하고, 부모가 늙어 힘없어질 때도 그 은혜 잊지 않고 효도해야 한다.”고! 또다시 아프리카의 깊은 감동으로 나의 가슴에 새기어졌다.



 호텔 근처 해안가 야시장에서의 자유식사의 기획은 참으로 좋은 착상이었다. 일반적인 관광회사 여행에서는 느낄 수 없는 그런 자유여행의 묘미를 첨가한 기획이었다. 아이들에게 먹거리 장만을 시키고 기다리니, 맛있는 것 맛없는 것 뒤섞겨 탁자위에 놓여진다. “이처럼 세상은 성공과 실패가 뒤범벅이 되어 있는 것이란다. 맛없는 음식을 사는 것이 두렵다고 나서지 못한다면 배를 곯아야 하듯이, 실패가 두려워 망설이기만 한다면 성공 또한 결코 얻을 수 없을 것이야.” 아이들과 이야기를 나눴다.



 아프리카의 마지막 밤을 지낸 잔지바르 섬을 뒤로하고, 귀국길 비행을 위해 다루살렘으로 향한다. 버스에 실었던 짐을 몽창 내리는 한바탕 소동으로 인해 항구에서 출발시간이 지체되었지만, 다행히도 공항으로 향하는 중에 마콘데 전통공예 마을을 들릴 수 있었다. 바로 조각이 만들어지는 공방 그리고 많은 가게를 기웃거리며 깎고 또 깍는 흥정 속에서 파는 자와 사는 자의 축제의 한마당이 벌어지는 것 같았다. 더 이상은 1달러도 못깎아 주겠다는 주인 말에 항복하고 4달러 조각품을 하나 챙기니, 흥정하면서 정들어 버린 종업원 아줌마가 50센트짜리 촛대 하나를 주인 몰래 살며시 덤으로 건네 준다.



 그토록 긴 여정을 통해 동부아프리카를 가로질러 달려왔던 다루살렘은 나이로비 공항까지의 2시간 여의 비행으로 지난 추억의 도시로 남기게 되었다. 5시간의 환승 대기 시간 중에 나이로비 공항 환승 대합실 구석에 있던 휴게실에서 샤워를 하고, 1박이 예정된 홍콩까지의 13시간 비행의 무료함을 잠으로 잊기 위해 위스키 한 잔 한 잔을 나의 몸속에 쏟아 붓는다. 생생했던 감동과 새로운 깨달음은 지나간 과거가 되었다. 세월이 흘러가면서 더욱 희미해질 동부아프리카 여행의 단상을 붙잡아 두기 위해 사진첩에 담아놓듯 낙서로 남기게 된다.



 세렝케티의 그 드넓은 평원에서 자연의 한 점일 수 밖에 없는 인간의 존재를 알게 되었고, 울란바트로 유적지에서 한 개개인의 생사가 이어져 인류의 역사가 만들어지는 시간의 흐름을 느끼게 되었고, 동부 아프리카 많은 사람들의 생활을 지배하고 있는 이슬람 사원을 접하면서 기독교와 서구 문명에 지배받고 있던 나의 세계관에서 벗어날 수 있었다. 또한 인도양을 통해서 아랍 문명이 받아들여진 잔지바르 섬의 유적들을 통하여 문화의 흐름을 보았고, 유럽 그리고 아메리카 대륙으로 노예로 팔려간 스톤타운의 흑인 조각상을 보면서, 노예에서 이제는 서구 세계의 주인이 되어가는 역사의 아이러니를 생각하게 되었다.


 보름간의 여행의 잔영이 또다른 보름간 꿈속에서 되새겨질 만큼 깊게 나의 가슴에 담겨졌던 동부아프리카의 여행은 세심하게 기획된 상우미디어의 경험과 열정이 마련해 준 자리였고, 50여 명의 여행 매니아들이 각자의 자리를 충실히 지키면서 함께 만들어 낸 아름다운 추억의 시간들이었다. 동행했던 모든 분들에게 감사의 마음을 보내게 되고, 한 분 한 분의 모습이 그리워진다. 어느날인가 다시 뵙게 되길......


050205

'구름 따라 길 따라' 카테고리의 다른 글

남도 여행길  (0) 2007.03.23
티벳을 향해  (0) 2007.03.23
베네치아 프로렌스  (0) 2007.03.18
아들과의 중국 여행  (0) 2007.03.18
백두산에서  (0) 2007.03.1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