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가 맛있는 반찬 먹으라고 권할 때, 막내 현주가 한마디로 “싫어요!”라고 말하면
더 이상 소용없단다. 아빠 성격을 닮아서 그렇다며 볼 멘 소리를 늘어놓는다.
종종 보험 인터넷 등 홍보의 전화가 올 때면, 나는 “관심 없으니 끊어요.”라며
곧바로 종료 버튼을 눌러 버린다. 또다시 그 번호로부터 벨이 울리면,
“이제 욕이 나올 수도 있으니 더 이상 전화하지 말아요!”라며 거의 ‘갑’질
수준의 신경질을 부린다.
오래 전 증권사 다닐 때 회장의 아들인 부사장 방침에 한 달 가량을 버티며
그의 지시와 다른 ‘안’을 계속 결제 올렸다. 하지만 결국 “자네 생각이 맞지만,
나도 어쩔 수 없으니 그냥 방침대로 올려 달라!”는 말에 내 뜻을 접고 말았다.
언짢은 일로 하루 종일 심기가 불편했던 어제 저녁 어둠이 내릴 때, 낯 설은
핸드폰 번호로부터 전화가 왔다. “강남에 있는 역사편찬연구소인데……”라는
이야기를 듣는 순간 똑같이 그냥 끊으라는 말이 목구멍까지 나왔다가 내
입에서는 “그런데요?”라고 바뀌었다.
“광주시의 역사인물 선정에 아버님이 명단에 올랐고 제가 그 일을 맡게 되었는데,
선생님께서 출판하신 책을 참고하려고 합니다.”
“아이고! 너무 고마운 일이지요. 제 책을 모두 베끼셔도 됩니다. 찾아오시는 수고
마시고 필요한 자료 있으면 제가 모두 갖다 드리죠.”
선친 삶의 이야기를 10년 이상 벼르다가 타계하신 후 거의 일 년 가까운 시간
동안 내 머리와 마음을 짜내며, 선친 추모록을 13년 전에 세상에 내 놓았던
것이다. 왜? 음모술수로 가득한 더러운 세상에 항변하기 위해서!
어느 날인가부터 내 얼굴은 잔뜩 찌푸려진 채 세상을 바라보고 있다. 나도
묵의 향기처럼 은은한 멋을 풍기며 살고, 산사의 해맑은 스님의 미소를
가득 안고 살고 싶었지만, 어느덧 나한의 얼굴이 아닌 악마의 표정으로
바뀌어 버린 것이다.
이제는 이렇게 말해야겠다.
“좋은 정보 고맙지만, 관심도 시간도 없으니
전화 삼가 해 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2015. 1. 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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