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리즘

Format 하고픈 날 2015년 1월 31일

묵향의 이야기 2017. 8. 14. 06:52

인생에도 Format이나 Reset이 있을까? 초심으로 돌아가자는 이야기는 있지만,

처음부터 삶의 이야기는 다시 쓸 수 없겠지.

 

하지만 일상에서는 새롭게 시작하는 것들이 무수히 많이 있다. 아끼며 즐겨

입던 옷을 어느 날 수거함에 던져 버리고 새 옷으로 갈아입기도 하고, 반복해서

듣던 MP3의 곡들을 모두 바꿔버리기도 하고, 낯 설은 친구들과의 모임으로

우정을 갈아타기도 한다.

 

어제 아내와 이러쿵저러쿵 이야기를 나누다가 막내 현주의 잠옷 이야기가 나왔다.

한 쪽은 긴 바지 다른 한 쪽은 반바지 그리고 막내가 서투른 솜씨로 찢어진 곳을

엉성하게 직접 꿰맨 소매 끝!

 

애착이 가는 것은 차마 버리지 못하고 껴안고 있어야 하는 아빠의 심성을

닮아서인가 보다. 새 잠옷으로 갈아입게 된다 할지라도, 정들었던 잠옷을

버리지 못하고 서랍 속에 곱게 간직해야만 하는 삶의 얽매임! 쉽사리 미련 없이

리셋을 하지 못하는 성품인가 보다.

 

하지만 일상에서는 어쩔 수 없이 리셋을 해야 하는 경우가 많다. 25년 동안

승용차를 고집하다가 26만 킬로미터를 달려준 애마를 버리고 SUV로 바꿨던 일,

10년 가까이 반복해서 듣던 애청곡 모음을 서랍에 넣고 지인이 건네 준 몇 백

여곡이 담긴 USB를 벗으로 삼게 된 일. 그리고 다음 주에는 Format을 해야만

하는 어떤 일이 남아 있다.

 

2월 말의 먼 곳 여행에서는 휴대 전화를 두 개씩 갖고 다닐 수 없기 때문에,

종종 뒤엉켜 버리기도 하고 메시지 기능이 멈춰 버린 스마트 폰을 포맷해야만

한다. 전화번호의 백업 기능도 작동시킬 수 없다. 전화와 관련해서는 다시 백지 상태에서 새롭게 다시 시작해야 하는 것이다.

 

가요는 스케치된 도화지 위에 색을 덧입히는 것이라면, 30 여 년 간 고정된

FM 채널에서 들려오는 클래식은 아무 것도 그려져 있지 않은 하얀 바탕 위에

물감을 떨어뜨리는 것과 같다. 그동안 정들었던 카카오톡과 카카오스토리와의

인연 그리고 밴드와의 연줄은 과연 가요가 될까 클래식이 될까? 22년 째 같은

번호를 고수하고 있는 통화 전용 011 272 0025 그리고 3년 째 인터넷 전용으로

쓰고 있는 010 5445 0025!

 

때때로 나의 인생도 Format 아니면 Reset하고 싶을 때가 있다. 매일 눈살을

찌푸리며 살고 있는 그러나 버리기는 아까운 삶을 되밟을 수 있을까? 아니면

눈가에 주름살을 스스로 만들어가는 삶의 후회를 마주하지 않고 살아가게 될까?

 

하지만 분명한 것은 하나! 내가 Format 아니면 Reset 버튼을 누르는 순간,

나는 더 이상 이승에서 나의 발자취를 남길 수 없다는 것! 내가 내 손을

그 버튼 위로 갖다 놓을 수 없는 단 하나의 이유는 내 팔에 너무나도 무거운

인연들이 매달려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나는 매일 술로 내 삶의 후회를

망각시키고 있는 것이다. 오늘도! 지금도!

 

2015년 1월의 마지막 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