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르웨이 여행 후기를 올리다가 밴드에 올라와 있는 해외여행 공지를 우연히 보게 되었죠. 돌로미테가 어떤 곳인지 크로체 님이 어떤 분이지 전혀 알지 못한 채, 베로나 원형극장에서 오페라 아이다를 관람하는 일정이 눈에 띄어 앞뒤 가리지 않고 예약금을 보냈죠.
7개월 남은 기간 동안에 준비사항 등을 상세하고 친절하게 밴드에 크로체님이 올려 주셨지만, 이번에는 어디를 방문하고 어떤 곳을 트레킹할 것인지 구글 지도조차 한 번도 찾아보지 않고 그냥 비행기에 올랐습니다.
산마르코 광장과 불과 5분 거리의 호텔 숙소, 자유 시간에 예정에 없던 곤돌라 단체 승선 그리고 백년 전통의 레스토랑에서의 식사! 타 여행사에 비하여 무척 저렴한 여행 경비로 출발한 일정이 경비 부족 문제로 도중에 중단이 되지 않을까 염려가 될 정도였습니다.
‘Sea to the Sky’라고 했던가요? 무덥고 습한 베네치아에서 몇 시간 만에 이동해서 하얀 눈을 밟게 되니 반전의 묘미가 느껴졌습니다. 다음날 라가주오 야외박물관에서 내려 바라본 산세는 나를 하늘에 떠 있게 했지요. 그리하고는 배낭을 짊어지고 큰 트렁크와 함께 스키용 리프트에 몸을 내던지며 올라타는 짜릿함도 느꼈습니다. 으레 친퀘토리 산장으로 가려면 그리하나 봅니다. 매일 식탁에 오른 하우스 와인으로 의미가 없어진, 가방을 가득 메운 소주 때문에 나는 쩔쩔맸지요.
산장에서의 일몰과 일출은 또다시 자연에 대한 경외감에 나를 젖게 했습니다. 2,950m까지 곤돌라를 타고 올라가 눈길도 걸어봤습니다. 나름 여행을 많이 해 봤던 내게는 큰 기대 없이 떠나온 돌로미테였지만, 케이블카로 순간 이동하여 높은 곳에서 바라본 장엄한 풍광은 베로나 오페라 공연에 대한 설렘을 미리 점점 채워갔습니다.
불과 몇 십 분의 시간을 내면 하늘과 맞닿은 초원을 걸을 수 있을 오르티세이 사람들이 무척 부러웠죠. 유럽의 고지대 초원을 걷는 모습이 나오는 방송을 보며 언제인가 걷고 싶다던 그 길을 걷게 되었습니다. 방랑자 다큐멘터리의 주인공이 된 것 같았습니다. 물길 내리 밀려오듯 야생화가 경사면을 가득 덮고 있는 그 산장에서의 맥주는 산 매니아로 구성된 일행들의 발목을 잡고 말았습니다.
그냥 야생화 밭에 누워 세상을 잊고 싶었습니다. 하지만 그래도 걸어야만 하는 것이 삶의 진리! 교묘하게 이어진 루트를 따라 Seceda에 다다르니 또다시 감탄! 하산하는 케이블카 시간에 맞추려면 서둘러야 한다는 크로체 대장님의 말씀에 하늘과 땅을 잇는 그곳에서 멍 때리는 시간을 줄여야만 했습니다. 하지만 내리막의 야생화 길은 오르막길보다 우리들의 발걸음을 더 잡았지요.
마냥 머물고 싶어 하던 우리들의 등을 떠밀던 대장님은 하산 길 산장에서 가득채운 맥주잔을 들고 나왔습니다. 비치의자에 누워 하늘과 초원을 번갈아 봅니다. 긴 시간은 아닐지라도 달콤한 휴식의 시간입니다.
오늘 걸었던 길을 되돌아봅니다. 하늘과 입맞춤하고 있는 초원의 숨소리는 내 심장 고동 소리에 스며들었습니다. 초원의 바람소리는 레지던스에서의 식사시간마다 맛깔난 반찬 역할을 했던 클래식 선율과 함께 우리들의 귀를 채웠습니다. 크로체 님의 감성 트레킹 코스는 우리들에게 코러스를 하게 하였습니다.
“이제 다른 곳의 여행은 못 가겠어요! 내년 일정을 알려 주세요!”
‘오는 정 가는 정’입니다. 여덟 번의 아침 저녁 식사를 직접 준비하겠다며 여성 남성 가리지 않고 저렴하게 마트에서 장을 보아 만찬을 펼쳤습니다. 그곳 집 주인이 제공하는 조식을 운반하는 트레이는 우리들을 드라마의 주인공으로 만들어 주었습니다. 멋진 여로뿐만 아니라 멋진 동행자들과의 행복을 안겨 주었던 4박의 안식처였습니다.
매일 아침마다 오늘은 무엇이 기다리고 있을까 하는 설렘의 나날이었습니다. 크로체 대장님이 매일의 일정을 명확하게 먼저 알려주지 않았던 이유가 있었습니다. 이미 돌로미테 지역의 많은 곳을 섭렵하고 있었기에 그 날 그 날의 날씨에 따라 가장 감동적인 가장 추억에 남길 장소로 우리들을 안내해 주길 바라는 마음 때문이었습니다. 단순한 안내자가 아닌 처음 발을 내딛은 나의 입장으로, 절친한 벗의 정으로 자유여행의 맛을 느끼게 해 주고 싶었던 것입니다.
Alpe di Siusi 시우시 고지대 방목장이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몇 날 며칠을 걸어도 다 걷지 못할 길들이 펼쳐져 있는 곳입니다. 이탈리아 남쪽 시칠리아 섬을 여행 오게 된다면 어제 오늘 걸은 곳은 먼 길을 마다하지 않고 다시 발길을 내딛고 싶은 곳입니다. 단지 아름다운 풍경 때문만은 아닙니다. 끝없이 펼쳐져 있던 야생화들의 유혹 때문만도 아닙니다. 많은 조합의 코스 중에서 그날그날 가장 아름답게 남을 곳을 나의 바람처럼 고심하며 선택했던 크로체 대장님의 배려 때문입니다. 또한 한 마음이 되어 마음의 손을 맞잡고 동행했던 분들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베로나로 가는 길에 카레르시(카레짜) 호수에 들렸습니다. 그 물빛은 우리들의 돌로미테 추억처럼 짙게 드리워져 있었습니다. 베로나 역사지구 안에 위치한 숙소는 베로나 중심부와 몇 분 거리에 있고 몇 백 년 전통의 건물 내 침실들은 드라마 세트장처럼 꾸며져 있습니다. 또다시 놀라지 않을 수 없었죠. 삼 백 프로 고품격의 여행! 베네치아와는 다른 그러나 로마보다 훨씬 더 정감어린 유적도시의 맛과 멋을 느끼게 해 주는 베로나 유적 지구였습니다.
베로나 로마원형경기장 바로 옆 레스토랑에서 고급 스테이크로 마지막 디너를 끝내고 들어선 원형경기장! 콜로세움과는 달리 완벽하게 보존 아니면 복원된 경기장에 마련된 무대는 역시 장엄했죠. 두 번 감상했던 오페라 아이다! 그 웅대함에 걸맞은 아이다의 서막은 어둠이 내린 9시가 되어서 시작되었습니다.
아이다의 승리의 합창이 나올 때는 이만 여 명을 수용하는 그 경기장이 마음 속 환호성으로 가득 채워지는 것이 느껴졌습니다. 막을 대신하여 어둠이 Arena of Verona를 덮고 이번의 소중한 여행의 마지막 밤에도 장막이 내렸어요.
쥴리엣의 집을 비롯한 몇 곳의 역사지구 내 관광지를 둘러보고 베네치아의 마르코폴로 공항으로 향했습니다. 어찌 아쉬움이 없을까? 어찌 부족함이 없을까? 그러나 우리들은 비행기에 탑승하며 다시 한 번 합창했습니다.
“이제 다른 곳의 여행은 못 가겠어요! 내년 일정을 알려 주세요!”
2019년 7월 11일 묵향의 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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