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릴 적 미아리 집 내 방 창가에는
큰 라일락 나무가 있었죠.
사월이면 내 가슴에 짙게 스며드는 그 향기에,
사춘기 소년의 마음은 무척 설레었죠.
하지만 그토록 좋아했던 라일락 나무 가지를
오늘은 큰 톱으로 기다란 가지 하나를 잘랐어요.
그 옆에 심었던 살구나무로 뻗어 나온
그 가지 때문에 그쪽으로는 살구꽃을 피우지 못했죠.
아파하는 그 가지를 구석진 곳으로 내몰다가
채 펼치지 못한 꽃망울을 보고서는 너무 미안했어요.
짧게 꺾어다가 이렇게 모아놨어요.
하지만 어린 내 마음을 흔들어 놓았던 그 향기를
미운 나에게 더 이상은 건네주지 않을 것 같네요.
2020년 4월 1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