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쁜 세상 바라보기

방배동에서...

묵향의 이야기 2007. 3. 16. 19:24
 

  지난 여름 방배동 어느 교차로 지나치려다 빨간불에 멈추어 버렸다.   건널목 건너는 이들의 눈길은 쏟아 붓는 빗줄기가 나의 작은 차의 앞유리를 가리워 주었기에 피할 수 있었고, 잠시만의 삶의 휴식을 위해 한 숨을 내몰 수 있었다. 


  정지된 시간 속에 저 건너 건널목 가운데를 지나는, 아마도 80은 되보이는 백발의 할머니 등에 업고 빗줄기 감싸 안으며 삶에 찌든 발걸음 내딛는 50 되는 아저씨 모습 보였고...  그 흔해 빠진 차 하나 없는 아들 등에 업혀가는- 그래도 자신의 몸이 되어 병원으로 모시는건지 집으로 향하는건지 온몸 적시는 빗물 속에서도 그 언젠가 당신이 업고, 걸음 내딛었을 아들 등에 한껏 안기어 빗줄기에 젖어 버린 그 자식 안스러워 하는 할머니...  생의 고통 속의 아름다움이었다.


  자신의 양복 쏟아붓는 빗줄기에 내맡기고 한 손 뻗어, 아들과 하나되어 버린 그 할머니 머리 위로 자신의 우산 내밀며 바쁜 걸음 애써 머뭇거리며 곁에서 그 길 건너는 어떤 아저씨의 모습  나의 눈망울에 맺혔다면...   함께 살아가는 가장 아름다운 모습이었겠지.



  종로 탑골공원 앞 건널목을 건너려 서 있다가, 급히 앞에 서 버린 택시 문 여는 소리에 눈길 향하곤, 한 발 땅 위에 내딛으며 두 손 무릎 위에 얹고 무언가로 만들어졌을 허벅지 아래 의족 노련하게 조정하고서는 또다른 발걸음 얼른 내딛고 애써 고개 돌려 먼곳 바라보는 20대 초반의 아가씨를 흘끔 바라게된 어떤 아저씨...  이내 고개 돌렸건만 창살에 갖힌 신기한 동물 바라보듯 그 택시 브레이크 소리와 함께 내내 눈길 돌리지 않은 어떤 아줌마의 그 아가씨를 향한 눈길 가려 주고파, 굳이 두 발걸음 내 딛으며 그 아가씨 옆에 다가서 망연한듯 서 있는 아저씨... 


  지나온 삶의 자욱 나눠 드리지요..  나무되어 삶의 바람 막아 준다는 그 말들 스쳐 지나가는 바람결의 가식일 뿐인가?



  방배동 카페촌을 가기 위해 전철역 앞에서 합승을 외치다가, 간신히 잡아 탄 택시 안 - 휴대폰으로 친구와 재잘 거리는 멋진 모자 깊이 눌러 쓴 운전석 옆에 탄 어린 아가씨 그리고...  급히 끼어드는 검은색 자가용 아무 말 없이 양보해 주며 앞으로 향하는 20대 후반의 젊은 택시기사...


  방배동 카페촌으로 잠시 차 마시러 향하다 합승시켜 준 연인이었다.   아마도 부유한 집안의 아가씨...  아마도 복학 앞두고 등록금 마련 위해 택시 모는 젊은 친구...  진정 하나가 되어 버린 젊음의 아름다움이었다.


비록 둘의 몸이었지만.

   

  9702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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