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제는 명섭이와 함께 강화도 마니산엘 다녀왔다. 라이온스 모임이라
흥겨운 만남의 시간은 될 수 없었지만, 훗날의 일들을 생각하여 친분상
빠지기는 아쉬운 자리이기에 부부 동반 산행이었지만 애써 명섭이를 대신
데리고 갔다. 늘 마음이 약하게 느껴지는 통이의 힘찬 삶을 위해 어릴 적
부터 등산을 함께 하려고 마음먹었으나 기회를 좀처럼 만들 수 없었던 차
체 좋은 기회였던 것 같다. 저녁 때 친구 집에서의 모임이 있었기에 나
혼자 일행과 떨어져 차를 몰고 갔다. 토요일 늦은 아침 시간 역시 강변
도로는 꽉 찬 승용차로 몸살을 앓고 있었지만, 여의도를 지나치면서는
가을 토요일 아침의 시원함을 느낄 수 있을 만큼 속도를 낼 수 있었다.
헹주대교 부근을 지나치며 김포로 가는 새로운 길 이졍표를 보게 되었고
쫓기지 않는 발걸음이었기에 한번도 가보지 않은 그 길로 방향을 틀었다.
잠시 달리다가 눈 앞에 나타난 것은 아주 넓은 강변에 설치된 철조망과
감시탑속의 군인들... 아마 바다처럼 넓디넓은 저 강 건너는 북한
땅인 가보다. 새로운 연인을 만나면 기쁘듯 언제나 새로운 길을 다닐 때
가벼운 흥분을 느끼게 된다. 활짝 열어 젖힌 창가로 넓은 강변의 물내
음은 이내 몰려와 가슴을 씻어 내고, 강과 평야를 따라 난 뚝방길의 넓은
정경은 이내 몰려와 나의 눈가의 티를 씻어 낸다. 삶의 고독과 고통 속에서
통곡하고 있는 어느 여인에게 이 길을 달려 보라 권하고 싶은 충동 느낀다.
피 멍들 정도로 무섭게 대했기에 아빠에 대한 거부감을 갖고 있던 그 녀석
그래도 가슴 만들어 주고 싶어 비록 자그마한 산이지만 데리고 왔으나, 얼
마나 올라 갈 수 있을까 염려했지만, 이리저리 구슬리며 한발 한발 내닫는
그 녀석의 발걸음과 오가는 이들의 아들 녀석 칭찬 소리에 괜시리 저 멀리 보
이는 무르익은 들녘 마냥 나의 가슴은 뿌듯했다. 나 또한 가보지 않은 길이
있기에 힘든 오르막의 고통은 과연 해낼 수 있을까 하는 걱정을 머리에 심는다.
살아보지 않은 생이기에 지금의 고통이 그 언제까지나 계속되리라는 고민 속
에서 삶의 의미를 회의하듯이...
저 높이 오름의 고통 큼을 알려 주고파, 어느덧 오름을 느끼게 되었을 때의
큰 기쁨 느끼게 하여 주고 파 함께 발걸음 옮기는 아들 녀석은 정상의 기쁨
느끼질 못한다. 하기에 이제 여섯 살인걸...
하지만 어느 아저씨를 따라온 강아지와 즐겁게 놀고, 뒤늦게 올라온 아저씨
할아버지들의 귀여움 속에서 그제서야 아빠와의 간행의 즐거움을 느낀 모양이다.
폭행의 기억밖에 남아 있지 않은 어느 여인에게는 지나온 발자욱이 멀고도 먼
삶의 자욱으로 생각되겠지만, 그래도 지금의 지나온 발자욱에 대한 기억은
한 발 그 어둠을 벗어나야 할 때의 멈춰버린 세월의 고통보다는 나으리라.
삶의 변화가 없는 것이라 우리 여긴다면 아무런 삶의 의미는 없으리라. 풍요
롭건 찌들리게 가난하건 알 수 없는 삶의 변화 두렵기도 기다려지기도 하기에
오늘의 기쁨 더욱 소중하고 오늘의 고통 덜 수 있음이리라.
오늘은 힘든 발걸음 이겨내고 이 아빠를 기쁘게 했던 그 녀석에게 오랜만에
통이의 얼굴 그리고 피곤함 속에 부엌 바닥에 누워 잠들어 있는 술희와 술희의
엄마의 모습은 뛰쳐나가고 싶어하는 나의 마음을 잡아 두고 있음일게다.
94100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