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년 전 첫날밤엔,
하루만이라도 제주도 구경하고서 병원에 실려 가겠다며
봐 달라는 신부를 원망하면서, 나는 냉장고 속 값비싼
양주를 꺼내 마시고 그냥 잤다.
12년 지난 뒤 제주 여행 첫날밤도, 달랑 들고 왔던 짐 대신에
딸려 온 통이와 술희 녀석들 성화에 그냥 잤다.
지난 기억 되살리며 그 장소에서 사진 남기려 했다.
"잠깐만 비켜 주세요. 아가씨!" 하며 들려 오던 것은
"아줌마 비켜요!" 라는 험상궂은 목소리로 바뀌었다.
모래 백사장에서 영화의 한 장면 처럼 신부를 안고
한껏 돌려 주던 파릇한 신랑은, 아내를 힘겹게 안고서
쩔쩔대며 간신히 버티고 있는 맥빠진 아저씨로 바뀌었다.
서귀포 허니문하우스에 있는 작은 돌 하나 -
"살살 어루 만지면 커지는 돌이니 살짝 안고 미소 지으라"던
기사 아저씨 말에 12년 전 신부는 덥썩 그 돌을 껴 안았었다.
12년 지난 그 돌 앞에서 아내는 알 수 없는 미소를 지으며
고개를 돌려 버린다.
000304
'sweet home' 카테고리의 다른 글
스쿼미시에서 딸에게 (0) | 2007.03.17 |
---|---|
밴쿠버에서 아내에게.. (0) | 2007.03.17 |
팔일 후에.... (0) | 2007.03.17 |
비석 앞에서 (0) | 2007.03.17 |
사십구제 (0) | 2007.03.17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