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weet home

밴쿠버에서 아내에게..

묵향의 이야기 2007. 3. 17. 15:00
 

  여기는 칠월의 마지막 밤이라오.  얼마 남지 않은 쏘주 한 팩을 마시고 밤하늘을 바라 보았다오.  정말 아름다운 세상이구려.  아마도 고교시절 대천 캠프에서 보았던 그런 하늘이었던 것 같소.   하지만 그 시절과 지금이 다른 것은, 마음 속에서 볼 수 있었다는 것과 그저 눈망울로만 볼 수 밖에 없다는 차이일게요.  세월이 흘러 갔기 때문이겠지요.

  아직도 현수의 몸 상태는 좋지 않구려.  가급적 당신의 걱정을 더해 주지 않으려 현수의 몸살 이야기를 하지 않으려 했지만, “엄마하고 있었으면 벌써 나았을거야!”라고 불평을 드러내는 현수의 항변에 어쩔 수 없이 전하고 말았구려.  또한 약도 부족하고...  

  정말 아름답고 살기 좋은 곳이요.   아직 제도적인 매혹은 실감하지 못했지만, 이 정도로라도 충분히 살기 좋은 곳이라는 것을 느낄 수 있소.  아무리 국수주의적 사고를 갖는다 해도 자연이 부여해 준 환경은 어쩔 수 없는 것일테니까요.   그러나 당신과 나 그리고 현수는 한국 땅에 발을 붙이고 살 수 밖에 없는 운명인 것 알고 있겠지요?  때문에 현수의 유학도 깊은 생각 끝에 포기하고 말았고...

  내년 여름엔 모두 함께 오고 싶구려.  자연이 부여해준 환경 때문이 아니라, 마음 속의 테두리 때문에 삶의 여유를 즐긴다는 것은 그 곳에서는 정말 힘들구려.  그러나 노력할 것이라오.  물론 당신도 그러하겠지만...   그건...  당신과 나의 행복이 아니라 우리의 행복을 위한 것일거요.  이제는 아이들에게 예쁜 사진을 남겨 주는 것이 우리에게 남겨진 큰 일이기 때문일게요.

  아직도 4주 가까운 날들이 남았소.  하지만 일주일의 시간이 흐르면서, 어색한 환경에 익숙해지게 되었고, 다행히도 반가운 선배를 만나서 한참 연마해야할 골프도 배우게 되었고, 다가서 보고 싶었던 승마도 경험해 보았다는 것이라오.  지난 시간 보다 훨씬 많이 남은 앞으로의 일정을 계획하고 알아 보려 하지만, 현수의 수준과 내가 하고픈 일의 수준이 다르기에 무척 힘들다오.  아무튼 내일은 현수와 함께 카약을 탈거고, 돌아 오는 일요일에는 경비행기를 타고 근처를 내려다 보게 될거며, 또한 현수와 래프팅도 함께 하려 한다요.  물론 서울에 돌아가서 계속하고 싶은 승마에 익숙하도록 현수와도 몇 번쯤 더 승마장에를 가려 한다요. 

  전화로 여러 이야기 나누었지만, 새삼스럽게 편지를 보내는 것은 그대에 대한 마음이 아직도 곱기 때문이라오.  아니 영원토록...  그랬었지요?  나는 그대에게 말했지요.  “다시 태어 난다면 함께 살고 싶은 여인이라고!”  하지만...  후후...  “다시는 만나고 싶지 않다!”고 그대는 내게 말했지요.  그래요.  알고 있어요.  내 마음 속의 알 수 없는 먹구름이 우리가 지켜야 할 별 빛을 가리고 있기 때문이라는 것 알고 있다오.  하지만 노력하고 있다는 것을 당신도 알고 있겠지요?

  이번 여행은 오래 전부터 품고 있던 여행이었소.  현수의 앞 길에 도움을 주고 싶었던 여행이었지요.  미국이건 캐나다이건 뉴질랜드이건...  떠나기 전에 생각했을 때는 내게 5주의 여정은 무척 무료한 나날들이 될거란 생각에 여행의 설레임은 하나도 없었소.  그러나 칠일의 시간 동안 이곳 생활에 익숙하게 되니 홀로 드라이브와 여기 저기 배회하는 즐거움도 만끽하게 되었고, 특히 반가이 맞이해 주고 함께 놀아 주는 김영일씨를 만나 골프도 치고 밥도 얻어 먹고 함께 시간을 보낼 수 있게 된 것은 정말 내게는 행운이었다고 생각하오.  물론 현수에게는 부족함으로 비춰지겠지만.

  아쉽다는 생각이 든다오.  함께 왔다면 내게도 현수에게도 당신에게도 아름다운 추억의 한 조각으로 남았을 것이란 생각을 하게 된다오.  현수의 어학연수가 아닌 우리들의 삶의 소중한 자리로서 간직되었을 것이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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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마무리짓지 못해 보내지 않은 편지를 이어 쓰고 있소.  이제 절반의 날이 지나고 있소.  다행히도 아팠던 현수는 언제 그랬냐는 듯이 평상시의 그 수다를 떨고 있고, 먹성도 전 처럼 아주 좋아졌다오.  오늘은 월요일...  저녁를 먹은 지 얼마 되지도 않아서 맥도날드에 가자고 하길래 함께 갔었다오.  나는 차 안에 있었고, 현수 혼자 주문하고 계산하고 아빠 몫을 챙겨 주고...  혼자 보내지 않길 잘했다는 생각이오.  아마도 홀로 보냈다면 부산에서 온 아이들 틈에서 주눅이 들어 힘들었을텐데, 아빠에게서 받은 용돈으로 아이들을 포섭해서 몇 명의 대장행세를 하고 있다오.  비록 집에 돌아 와서는 한국인 친구가 없고, 한참 형인 일본인 2명과 멕시코 학생 1명 만이 있고 자기 또래가 없기에 심심한가 보구려.  아마도 지난 중국 여행 처럼 현수와 내가 좀더 친해지는 계기가 될 것 같소.

  이제 3주 뒤에 당신에게 돌아 가면, 무척 혼날 것이 두렵기만 하구려.  자신있게 가져왔던 수학 복사물은 한 장도 뒤적거리지 않았고, 일기도 어제 간신히 2개를 한꺼번에 쓰게 했지만 그래도 삼일치가 밀렸구려.  오늘도 심심하다기에 일기를 쓰게 했지만, 내일로 미루는 아들놈 애교에 그냥 넘기고 말았다오.  가능한 이번 여행에서는 압박감을 주지 않으려 한다오. 

  여기저기를 둘러 보고 살아가는 사람들의 모습을 지켜 볼 때 마다 정말 살기 좋은 곳이고, 아이들의 터전으로 만들어 주고 싶은 마음도 많이 들지만, 그럴 수 없는 것이 현수 현지와 우리들의 삶의 길일 것 같소.  그러나 이제는 많이 자유로워졌으니 한껏 여행을 즐기고 싶구려.  당신이 함께 있었다면, 눈에 비추는 아름다운 정경만이 아니라 가슴 속에서도 큰 기쁨을 느낄 수 있었을텐데 아쉽기만 하구려.  필히 내년 여름에는 이곳에 다시 오게 되길 바라오.  이번 여행에서 지리도 운전도 익숙해졌기에, 다시 오게 된다면 그리고 당신과 현지 모두 함께 오게 된다면, 스위트홈의 행복을 깊이 간직할 수 있을 것 같구려.  물론 우리의 보금자리 거기서도 가득히 만들수도 있고 만들도록 노력해야 하겠지만.

  아마도 이 편지가 도착할 다음주에는 현수 학교 일정이 끝난 뒤의 여행 일정이 정해져 있겠지요.  아직은 여행사도 일정도 확정하지 못했다오.  전화 걸기가 무척 불편해서요.  여기 스쿼미시에서는 시외전화이기에 주인에게 청하기도 어렵고, 밴쿠버 시내에서 공중전화로 많은 전화를 하기에도 너무 불편하다오.  하지만 이번 주에는 확정지어야만 할 것 같소.  빅토리아 섬으로 1박 2일로 가서 유명하다는 정원도 보고 꽃게잡이와 낚시도 현수와 함께 하려 하오.  그리고 당연히 록키산맥의 일정도 잡아야 할테고... 

  사정이 허락된다면 내년 여름에는 함께 옵시다.  두 달 일정으로...  나 홀로 드라이브를 하면서 아름답게 가슴에 담았던 그곳들을 당신 가슴에도 남겨 주고 싶구료.  함께 느끼게 된다면, 더욱 맑고 밝은 빛이 우리를 감싸게 될 것이오.  당신의 모습이 눈에 선하구려.   맑디 맑은 영혼의 모습도...

  지금 막 당신의 목소리를 들었소.  밤 12시 넘은 시간...  “술 먹지 말라!  약 잘 챙겨 먹어라!”  맨날 듣던 잔소리를 오랜만에 들으니 그것도 반갑구려.  당신의 모습을 볼 날도 얼마 남지 않았소.  이제 절반이 넘어 섰으니...  당신에게 편지를 보내기 위해 가져왔던 노트북과 프린터는 이 편지로 그 역할을 다할 것 같소.  잠시 머물다 가는 밴쿠버 여행이기에 우체국 찾아 가는 것도 너무 힘드니까.  그래요...  아름다운 가을이 우리를 기다리고 있소.  행복과 웃음이 가득한 가정을 만들 것을 약속하오.  아주 아주 오랜 윤회 속에서 만난 소중한 당신과의 만남도 헛되이 하지 않으면서...  사랑하오!

                                                 2000년  8월  8일.

                                            당신을 영원토록 사랑하는 상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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