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리즘

비둘기 이야기 세번째

묵향의 이야기 2007. 3. 20. 18:55
 

   지난 여름 한 쌍의 비둘기가 나의 사무실 창가에 앉아 구구거리더니 어느 사이엔가 에어컨 송풍기 뒤에 둥지를 틀었었다. 


   저녁 무렵이면 어디선가 돌아와 그곳에 앉아 둘만의 사랑을 속삭이더니 그들은 알을 품게 되었고, 여름 어느 날인가 두 마리의 새끼 가족을 거느리게 되었다.  모진 장마 속에 아기 비둘기들이 비라도 맞을까봐 조바심 하던 때를 지나 그들 가족은 가을과 그리고 겨울의 시간을 보내며 어디론가 사라져 버렸고 나는 그들을 잊게 되었다.


   하지만 모르는 사이에 봄이 왔듯   낯익은 비둘기 두 마리가 나의 창가에 머물고 있음 알게 되었고, 아마도 그때의 아기 비둘기는 사랑하는 사이되어 그 둥지를 물려받았던 모양이다. 


   송풍기 뒤에 둥지가 있기에 냉방에 대한 걱정으로 지난 한해만 자리를 빌려 주기로 했었는데, 그 놈들 염치도 없이 대를 이어서 나를 귀찮게 한다.


   며칠을 지켜보니 암놈이 또 알을 품은 것 같다.  어찌할까?  내쫓자니 갓 숨 쉬게 될 그 알 속의 생명이 안스럽고...   알 잃어버릴 어미는 어찌 슬플 것인가....   내 달 말이면 새끼 비둘기들은 날아 갈 수 있을까?

 결국 미국서 돌아올 내달 말까지만 동거하기로 했지만....  걱정이다.  그때 아기 비둘기들이 날지 못하면 어쩌나....


   오늘 아침 햇살 속에서 활짝 열어 제친 창밖의 그곳에는 그 비둘기 부부가 외출한 모양이었다.  살짝 넘겨 본 그 둥지에는 하얀 작은 비둘기 알이 보이질 않았다.  야~호~   오늘 드디어 결단을 내릴 시간이다. 비둘기와의 동거 끝!

 애써 빗물 피하라 신문으로 가꾸어 주었던 그 둥지를 과감히 철저히 철거하고 다시 못 오도록 스트로폴로 막았던 유리창을 열어 제치고 장애물까지 만들어 버렸다. 


   아~  얼마나 슬플까?  외출하고 돌아 온 그 비둘기들은 얼마나 황망할까? 학원서 돌아오니 역시 비둘기들은 울고 있었다.  미안한 마음 애써 누르며 둥지를 다시 틀려는 그들을 막대기로 애써 쫓아 보내고...   또다시 돌아온 그들을 또다시 쫓아 보내고....


   하지만 이제는 더 이상 동거할 수 없다.  올 여름 무더위 속에서 지내지 않으려면...  


   하지만 지금도 창가에서 그들의 집을 되찾으려는 비둘기들의 투쟁은 계속되고....  난 지금 그들을 또다시 쫓으려 일어나려 하고....


   아마 며칠은 계속 되어야겠지!


950412                                          95.  4.  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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