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른 아침이라서 그런지 달려 온 길에는
새벽 안개 처럼 평화가 내리 깔린 듯 하네요.
농장 뒷산 숲 속에서는 알 수 없는 새들의
지저귐이 또한 내 마음에 평화를 안겨 주고,
지난 달에 꽃길을 만들기 위해 뿌렸던 씨앗들이
어느새 파릇한 잎들을 하늘 향해 돋아 났어요.
흰색의 공작은 날개를 활짝 핀채 수줍어하는
짝쿵에게 사랑의 고백을 하고 있고, 아직 새벽
잠이 덜 깬 열마리의 병아리를 품고 있는 어미
닭은 나의 발걸음에 놀라 두리번 거리고 있어요.
토끼장 속의 아기 토끼들은 이른 아침에 나들이
한 들쥐와 어우려져 노니는 것 같아요.
오랜 세월 아버지의 마음이 담겨져 가꿔진
이곳도 이제 일년이면 두 동강이 세 동강이 나서
그 모습을 영원히 잃어 버리게 될 것이란 아쉬움에
하루에도 몇 번 산책의 발걸음을 내딛게 됩니다.
하지만 당장에 내게 밀어 닥친 일들은 아쉬움의
한탄도 아니고 개발에 대한 설레임도 아닌,
숫자의 크기를 늘리기 위해 어느덧 녹슬어 버린
나의 머리에 온갖 책략을 쥐어 짜내야 하고
많은 사람과 세상의 눈빛에 어찌 처세를 해야 할
지를 생각해야만 하는 일들이지요.
내 몸 속에서 열꽃이 피어 오르는 것 같아요.
어둠이 채 가시기도 전에 꿈 속에서 현실로 돌아와
두 눈을 부릅뜨게 되네요. 당장 이 아침에라도
밀려 올 듯한 강한 바람에 맞서 싸워야 하는 전사
처럼 집의 현관문을 박차고 여기 농장을 향해
달려 오게 됩니다.
서둘지 말아야지요. 태만히 머물러 있어서도
아니 되겠지요. 하지만 분명한 것은 이제 나는
변화의 소용돌이 속에 빠져 버렸다는 것입니다.
세상에서 비켜나 세월만 죽이던 나의 방 문을
활짝 열어 제끼고 발길을 내딛어야 할 때가
되었어요. 그냥 그 자리에 머물다가 더 이상
사고를 할 수 없는 날을 맞이 할 것 같았는데...
2002년 5월 13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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