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리즘

방백

묵향의 이야기 2007. 3. 20. 20:26
 

  오후 8시 30분 - 늦은 시간은 아니지만 오늘 따라 어둠이 더욱 깊이

지는군요.  아마도 하루종일 비가 내렸기에 이 밤이 더욱 깊게

느껴지는 모양입니다.

  금요일에 지친 몸을 이끌고 일본여행에서 집에 왔으나, 미처 마치지

못했던 일들로 인해 마음이 편치 않았지요.  그리고 어제...  참으로

힘든 하루였습니다.  오후 내내 나의 가슴속에서는 격한 분노로

가득 차 있었습니다.  물론 오늘도 머릿 속 소용돌이는 끊임없이

휘몰아 치고 있습니다.  원만히 풀려 갈 것이라던 일들이 그 반대로

전과자의 낙인이 찍힐 수도 있는 그런 방법도 불사해야 하는 상황

으로 치달았습니다.  객관적인 입장에서 생각한다 할지라도 너무나도

터무니 없는 일이 새로이 생겨 버렸고, 아직도 해결하려면 멀고 먼

토지수용 문제 그리고 빌라 건축 문제 등 거친 세상사를 헤쳐야 할

일들이 산재해 있습니다.  비록 백수라 자칭하지만, 내가 이룩한

재산이 아닌 물려 받은 재산이기에 아마도 살이 깍여 나가는 고통인

것 같습니다.  형편없는 가격으로 평가를 받게 된다는 것이 모두

나의 무능으로 자신을 탓하게 되고 있습니다.

  일본 여행은 정말 재미없었습니다.  클럽 회장이라는 직함 때문에

나서야 했던 여행이기에 애초 여행에 대한 설레임은 없었지만, 마음이

쫓기는 상황에서 떠났던 것이라 더욱 그 시간들이 지루했었습니다.

그리고 일요일을 맞이했지만, 여느 때 처럼 늦잠 자는 아내 대신에

아이들을 위해 라면을 끓여 주던 아침 시간을 뒤로 하고, 새벽에

집을 나서 나의 사무실로 향해 하루종일 컴 앞에 앉아 이런 저런

서류를 만드느라 씨름해야 했습니다.  다른 날 같았다면 할 일없는

백수에게 모처럼 찾아 든 바쁜 시간을 향유했겠건만, 오늘 만큼은

무거운 마음을 어찌 덜어낼 방법이 없습니다.

  아마도 어제 불현듯 밀어 닥친 일 때문이겠지요. 지난 밤은

내일 나의 생일을 위해 앞서 자리 함께 했던 누나 동생 가족들과

함께 외식하는 자리에서 술 속에 나를 망각 시킬 수 있었기에

그나마 세상을 외면했지만, 깊어가는 오늘 밤은 세상사에 또다시

오염되어야 하는 내 모습이 불쌍하기 조차 합니다.

  하지만...  이런 것이 삶이겠지요. 어찌 보면 나는 행복한 번뇌에

쌓여 있다는 것이 사실일 수 있습니다.  그러나 어여쁜 시인의 마음이

그립습니다.  불혹의 나이가 지나서도 가끔은 느꼈던 행복한 미소가

이제는 더 이상 내 것이 아니라 생각 됩니다. 

  일주일 사이에 훌쩍 커 버린듯한 나의 아기의 사랑스런 모습도

지금은 저 멀리 자리하고 있습니다.  오늘 이 밤의 나의 방백은

가슴 속 응어리를 조금도 덜어 내지 못합니다.  그저 이렇게 나의

일기장을 덮어야만 할 것 같습니다.

  

 2002년 7월 9일

'프리즘' 카테고리의 다른 글

봄비 내리던 날  (0) 2007.03.20
가을을 기다리며...  (0) 2007.03.20
아침의 상념  (0) 2007.03.20
오월의 향기  (0) 2007.03.20
사랑의 마음  (0) 2007.03.2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