번뇌를 씻어 내라 큰 비가 내리고 있습니다.
나의 농장을 가득 메웠던 철쭉의 화사한
꽃잎들을 매정히 땅 바닥에 내팽기쳐 버리는
오늘 비가 밉기만 합니다.
하지만 아이들 등교 길가에 뿌렸던 코스모스
그리고 과꽃의 씨앗들이 땅을 비집고 새 싹이
되어 꿈을 키워갈 수 있도록 대지를 촉촉히
적셔 주기에 또한 예쁘기도 합니다.
삶이란 것이 그런 것이겠죠.
때론 밉기도 하고 때론 예쁘기도 한 것이겠죠.
지난 4월말에 일년 간 사업 중 가장 큰 행사를
별 탈없이 치렀고, 어제 그제 이틀간은 장모님과
처제 식구들과 함께 안면도에 다녀 왔습니다.
언제나 시집 식구들과 여행으로 인해 비켜 서
있던, 육십 중반을 넘어선 장모님이 달빛
비추는 갯벌을 걸으시며 소녀 마냥 즐거워하는
모습과 이제 16개월 된 아기의 손을 잡고 동심에
빠져 있는 아내의 모습 속에서 자그마한 행복을
느낄 수 있었습니다.
그러나 돌아 온 사무실에는 언제나 그러하듯
담배꽁초가 가득 쌓여만 갑니다. 번뇌를 씻으라
밖에는 봄비가 내리고 있지만, 나의 마음 속에는
뿌리지 못하고 있는 모양입니다.
2003년 5월 7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