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리즘

깊은 새벽의 자유

묵향의 이야기 2007. 3. 20. 20:36
 

 새벽 3시가 가까워 오지만 시간의 쫓김 없이 자유를 느끼고 있습니다.  아이들의 방학과 더불어 안아야 하는 휴가의 숙제도 마쳤고, 거의 한 달만에 아내에 대한 숙제도 매번 그러했듯이 저 꿈 속 나라로 보내고서 밀렸던 숙제도 마쳤습니다.  그리고 나는 감춰 놓았던 쏘주와 벗이 되어 자유를 만끽하고 있습니다.

  작고도 작은 도시의 한 봉사단체의 단체장을 비록 일년이란 짧은 시간 맡아야 했지만, 아무런 연고 없이 단지 아버지의 뒷그림자로 맡게 되었던 자리이었기에 이 지역 사회에 나의 숨겨진 능력을 펼치고 알려야 했던 기회였습니다.  때문에 지난 365일의 시간이 아니라 회장이란 자리로 정해졌던 지난 4 년간의 세월의 압박이었습니다.  적어도 남들에게 손가락질은 받지 말아야 한다는 압박감이었죠.  이제 ‘잘했다’는 평가와 더불어 일주일 전 총회를 끝으로 떨굴 수 있었습니다.

  때때로 인생을 돌이켜 봅니다.  그래도 남들을 바라 볼 줄 알고 자신을 비판할 줄 아는 능력은 갖고 있다며, 세상에 그 무엇인가도 남기고 있지 못하는 삶을 살고 있는 나 자신을 위로하고 있지만, 결국 냉철히 바라본다면 나의 가족 이외에 나의 존재가 필요치 않는 그런 삶을 살아 왔고 살고 있습니다.  일종의 자기 학대이겠죠!  “약한 자는 사라져야 하고 강한 자가 남아야 한다.  결코 돈이 행복은 아니지만 살기에 편함을 준다.  권력과 명예가 세상의 진리를 결정짓는 것은 아니지만, 살아 있다는 보람은 안겨 주는 것이다.” 그런 생각이 가득한 나의 발걸음은 언제나 제자리만을 맴돌고 있습니다. 때문에 나는 술과 담배와 헛된 욕망들로 온전했던 나의 영혼 지워가고 있는 것입니다.

  얼마 전 나의 19개월 공주와 함께 작은 숲 속 길을 걸었습니다.  흔들거리는 세상에 맞추어 살기 위해 나 또한 흔들거리려, 술기운에 빠져 나의 검지 손가락과 아기의 손을 맞잡은 채 그 곳을 걸었습니다.  그러다 쪼그리고 앉아 아기의 눈 높이에 맞춰 세상을 바라 보았습니다.  도저히 맞출 수 없었습니다.  나의 능력도 나의 마음도 부족함이 있었기 때문이 아니었습니다.  이미 나는 멀고도 먼 길을 걸어 왔기 때문이었습니다. 아련한 기억이지만 아기 나이였을 적 바라 보았던 세상은 넓고도 넓었지만, 이제는 몇 걸음이면 다다를 그런 세상이었습니다.  더 이상 눈 높이를 맞출 수 없었습니다.  그러나 마음만은 맞추려 해야겠지요.  그래도 세상은 아름답다고 아이들에게 이야기 해 주어야 하기에 무언가 새롭게 일구며 나의 마음을 씻어야 하겠지요.

  살아오면서 일 년에 한 가지 큰 일을 이루었다면, 이제 겨우 45 개의 나열할 것들밖에 없습니다.  앞으로 남길 수 있는 것들은 그것의 절반도 되지 않을 수 있겠지요.  그럼 앞으로 이 한 해 5개월밖에 남지 않은 남은 날들을 무엇으로 채워야 할 것인가?  나로 인해 행복과 고통을 안게 되었던 나의 아이들을 위한 생활을 우선 꾸려 주어야 하겠지요.  숱한 결심을 해 봅니다.  이번 방학만은 기필코 함께 마음을 맞추는 날들을 만들어 가겠다고!  사랑스런 아들이 되길 바라며, 나의 부족한 자리를 채워주는 자랑스런 존재가 되어 주길 바라며, 스스로의 그리고 만인의 행복한 삶을 이끌어 가는 그런 가치 있는 삶을 살아가 주길 바라며, 그 아들을 위한 시간을 함께 하겠다고......   그리고 첫째와 늦둥이 가운데 끼어 자칫 슬픔을 안고 있을 현지를 위해......  아빠 엄마의 40대의 빈자리를 채워주고 있는 어여쁜 늦둥이 현주를 위해, 나 스스로 만들어 놓은 늪 속에서 빠져 나와야 하겠지요.

  그리고 할 일이 너무도 많이 남아 있습니다.  살기 위해 몸부림치는 사람들과 비교하기 민망하지만, 그래도 내게는 넘어야 할 산들이 많습니다.  작은 건물을 짓는 당장의 일들도 두 곳에 기다리고 있고, 내팽개쳐 놓았던 장부상의 숫자 놀음도 다시 해야 하고, 먼지 쌓이고 거미줄 가득한 농장의 구석구석도 털어 내야만 합니다.  무엇보다도 술과 담배 그리고 나태함으로 썩어 들어간 나의 육신을 추스리는 일부터 해야겠죠.  그러기 위해서는 무기력함과 환락에 빠져 있는 나의 영혼이 가을 바람을 맞게 해야겠지요.  기다림이 아니라 달려가 내 것으로 만들려는 실천이 따라야 하겠지요.  허망한 욕망을 떨구는 수도자의 길도, 힘겨운 생활 속에서도 행복으로 채워 가는 아름다운 사람들의 삶도 그리 멀리 있는 것이 아닐 진 데....  바로 한 발 앞에 있는 것일 진 데, 그 한 걸음 내딛는 것이 이리도 어려운 것인지......

  아무튼 회장이란 직함을 떨구어 내고 아이들과 아내에 대한 숙제도 마치고서, 몇 달만에 만끽하는 이 자유의 시간이 깊은 밤의 치졸한 낙서되어 내게 작은 기쁨으로 남게 되었습니다.  몇 달만에 한 장의 낙서장을 채우는......!

  2003년 7월 28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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