방황

어지럽혀진 책상

묵향의 이야기 2007. 3. 22. 20:24
 

   지난 날은 아주 오랜만에 홀로 집에서 휴식의 시간을 보낸 하루였다.  항상 쫓기기만 하던

일상생활에서 벗어나 마음의 여유를 갖을 수 있었지만,  해질녁 저녁 쯤엔 갑자기 밀려오는 공

허함에 집을 뛰쳐 나가야했다.  다람쥐 쳇바퀴 돌 듯 살아가는 삶이지만, 그래도 종종 가슴을

채울 수 없음은 인간의 원초적 고독 때문인가, 아니면 그 흔히 말하는 방황기 때문인가?


  세월의 흐름으로 생활에서 변화오면 한 줌 부족없이 마음의 충만을 느낄 수 있을 것이라는

생각은 또 그 흐름 속에서 사라지고, 어릴적부터 때때로 밀려오는 공허 속에 나는 허공만 바라

보게 된다.  영원히 시인으로 살아가는 이들의 가슴에도, 구도의 길을 걸어가는 수도승의 마음

에도, 삶의 마무리를 지어 가는 늙은이의  생활에서도  텅 비어있는 곳 바라볼 수 밖에 없음은

나의 눈망울이 허공에 맴 돌기 때문인가?


  '초혼'의 애절한 절규!   '사슴'의 처절한 고독!   '사랑'의 불타는 정열!  그 흔한 싯구절의 마디마디가 폐 속 깊숙히 찔러대는 담배연기와 함께 이제 삶의 여유를 갖게 된 나에게 두려움으로 다가선다.  눈물을 머금고 살아야 하는 생의 모습이었기에 밀려오는 고독을 떨구고자 정신없이 뛰어야 했던 직장의 굴레에서 이제 벗어나 자유인이 되고자 뛰쳐나온 지금 - 또다시 그 사춘기 시절의 애절한 허무를 가슴에 새겨야 함은 두려움이다.


  언젠가는 어느 산사에서 내 머물고 있는 그 한점의 세계에 대한 경외감을 갖고서 삶의 의미

를 찾고 싶다는 저 가슴 깊은 곳에서의 외침을 과연 이룰 수 있는 것인가?   눈을 감고 저 깊

은 곳 바라 봄에 하나의 존재의 의미는 그냥 이 세계에 존재한다는 것 뿐일진데, 이 육신은 그

저 물과 흙과 그리고 바람 뿐일진데, 이 네의 마음은 고독과 환희와 용틀임에 대한 끝없는 욕구 속에서 그저 허공을 맴돌 뿐이다. 

  

  애절히 인생의 의미를 찾고자 외쳐대는 시인의 마음도, 끊임없이 그 존재의 의미를 찾고자

갈구하는 수도승의 마음도 결국 - 인생이 단지 이 세상에 존재하는 것이라는 그 사실을 외면한

채 삶의 허욕을 부림은 아닐까?  아니...  아니....   세상이라는 것!  그들의 마음에는 세상이라는 것이 단지 나의 몸과 부딪기고 나의 눈에 보이는 것이 아닌 알 수 없는 그 무엇이란 말인가?  그러하기에 그들의 고독은 삶의 진실이던가?


  하지만 삶 속의 고독은 생의 굴레에 있어야 하기에, 그리고 분노하고 기뻐하고 고독해하고

함께 있음을 느끼며 살아가야 함이 우리네 현실이기에,  나는 허공 속에 흩어지는 담배연기 마냥 오늘 이 허무를 그냥 잊어 버린채 거리로 뛰어 나가야 한다.


  진실은 무엇인가!  그 많은 이들의 발걸음에서 그리고 그 시뿌연 담배 연기에 희노애락 토해

내는 선술집에서 보여주는 그들의 가슴의 진실은 무엇인가?  눈을 감고 저 깊은 마음의 세계

바라보지만, 보이는 것은 삶의 욕망 뿐!   차라리 그 유치한 고독 허무 진실 그리고 삶의 의미

는 인간이 만들어 낸 가식일 뿐?  그냥 묻히어 세월의 흐름에 자신을 던져 버림이 평범한 삶의

이야기일 뿐!  하지만.....


  하지만 바쁘게 쪼개어 살아가는 생의 시간 속에서 때때로 허공을 바라 봄도 정녕 삶의 이야

기일게다.


                                     어지럽혀진 책상을 바라보면서...     9402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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