방황

봄날의 혼돈

묵향의 이야기 2007. 3. 22. 20:32
 

  봄은 왔습니다.  아직 찬 바람이 한 몸을 감싸고 있지만, 일요일 아침 유난히 밝게 비추는 햇살은 대지에서 움틀 싹의 모습을 그리게 합니다.   지난 금요일 새벽까지 들이켰던 과음 때문인지 몸과 마음이 지친 한가한 아침의 시간입니다.  일요일 아침에는 모두들 잠들어 있어 조용히 나만의 공간과 시간을 갖을 수 있기에 일주일 중 가장 좋아하는 시간입니다.


  지난 두달 동안 추진하였던 그 일이 아직 정리가 되지 않았고, 또다시 주식에서 깨져 버린 금액이 날로 늘어만 가니 마음은 무언가에 쫓기는 것만 같습니다.  여유있는 마음을 느꼈던 것이 지난 대학 때의 방랑자 같은 여정에서가 마지막이었지요.  아마도 죽을 때까지 또다시 가질 수 없었던 평화일 것입니다.  이 아침에도 흘러 나오는 선율은 나의 가슴을 에이기만 합니다.   곡명도 작곡가도 악기의 이름도 알 수 없지만 그저 나의 귓가로 흘러 들어와 마음을 헤집고는 가슴을 도려 내는 선율은 그 자체로 나의 곁에 있을 뿐입니다.   폐 속 깊숙히 찔러대는 담배 연기를 좋아하듯 걱정과 근심으로 나의 가슴을 멍들게 하는 것을 즐기고 있음일겝니다.  사랑이란 감정은 언제나 좋은 것이지만 사랑이 다가서면 나 자신이 되어 버린 그 사랑을 나 자신을 무시해 버리듯 또다시 외면하려고 합니다.  그리고는 나뭇가지에 걸린 달님을 애처럽게 바라보듯 잡을 수 없는 사랑을 그리워합니다.  그리움 속에는 가득한 진실이 담져 있기 때문일겝니다.  하지만 이제는 그러한 향수를 누릴 수 있는 자격 조차 상실되어 가는 세월의 흐름에 무엇을 바라만 보아야 하는지 알 수 없습니다.  때문에 간혹 즐기게 되는 술자리에서 나는 나 자신을 그 술 속에 매장해 버리는지도 모르겠습니다. 


  아침 신문에서 어느 소설가의 스쳐가는 이야기를 읽었습니다.  삶에서의 진실은 무엇이고 무엇이 올바른 삶의 모습인가요?  그 모든 추상적인 단어들 - 사랑 진실 성공 ...  모두 허상일 뿐입니다.  그냥 살아 있기 때문에 살고 있는 것일 뿐입니다.  가슴에 욕망이 가득한 인간들이기에 삶의 무료 느끼기도 하고 삶의 고통을 애달퍼 하고 기쁨을 쫓을 뿐입니다.


  재수하던 어느 날 이른 새벽에 정동에 있는 정독 도서관을 찾었던 그날 아침이 스쳐 지나갑니다.  그림을 그리고 노래를 부르고 아름다운 글을 이어갈 수 있는 자신을 드러내 놓을 수 있는 그들이 부럽습니다.   언젠가는 글을 써 보고 싶다는 마음 가득하지만, 언제나 맴돌고 있는 욕망일 뿐!   쓸 수 있다면 깊은 심연의 세계에서 애을 끊는 고통의 글을 쓰렵니다.


  어젯밤 자그마한 파티에 초대하여 주었던 미국인 그 중년 독신녀의 움집 같은 공간이 우리 인간사의 마음인 것 같습니다.  초라하고 비좁은 공간이지만 그래도 나의 자그마한 자리이기에 갇혀버린 그 외로움을 달래 볼 수 있는 자리인 것 같습니다.  삶은 외로운 것인가 봅니다.  소설가도 시인도 음악인도 소위 예술이란 것에 결국 고독을 담고 맙니다.


  오늘 봄날 같지 않게 유난히 눈이 부시도록 아침 햇살이 화창합니다.   탱크란 별명 마냥 새롭게 다가오는 시간도 과감히 안아 들여야겠지요.  바삐 뛰어야겠지요.  내가 무엇을 하고 있는지는 알 수 없지만 그래도 움직여야 하겠지요.  가을의 풍요함을 느끼려면....


     

9503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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