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무 그늘 아래서 이름 모르는 새소리와 풀벌레 소리를 벗삼아 이야기 나눔은 오늘이 처음이다. 자연의 한 그늘 아래서 나의 영혼에게 숱한 말들 전했지만, 그건 잠시 스쳐 지나가는 감정이었을 뿐! 저 하늘에 흩어져 버리는 일순간의 상념이었을 뿐이다.
한적한 시골 마을의 뒷동산에 자리했던 야산에 불과했던 여기 우리 가족의 보금자리는 시나브로 세월의 흐름 속에서 동네 아이들의 천진한 목소리가 바로 곁에서 들리는 듯 많은 집들이 부근에 자리했지만, 아직도 이곳은 인위적인 조형물 속에서도 중간 중간에 자연 속의 자그마한 쉼터가 남아 있다. 철창 속에 갇혀 있는 공작새 그리고 저기 저 숲 속에서 외롭게 울어대는 알 수 없는 새는 떨어져 있지만 하나일 뿐이다. 살아 있다는 것! 그리고 원초적인 생의 고독을 가슴에 안고 있다는 것! 모퉁이 길로 돌아 오르면 금잔화와 코스모스가 한껏 길을 덮은 채 모습 감추고 있다. 보도블럭 속에 익숙해져 있는 나의 발걸음은 칼을 허리에 찬 채 여기저기 뛰어 노니는 통이의 모습과 함께 어릴 적 나의 그 집으로 되돌린다.
아주 자그마한 꼬마에게는 넓고 넓은 숲 속이었다. 향나무 꽃나무 이름 모를 나무로 덮어져 있던 자그마하지만 거대한 숲 속 정원에서 동네 꼬마들과 총싸움 숨박꼭질 그리고 다방구하며 노닐던 그곳은 나의 고향이었다. 열한살 어느 여름날 나뭇가지에 걸려 나아가지 못하는 달님의 숨결이 나의 얼굴을 스쳐 지남에 모두 잠든 한 밤에 스르르 눈을 뜨곤 그저 누워서 달님의 슬픈 눈물 나의 눈으로 흘려 내리는 것을 느껴야 했던 곳이다.
한 손에는 꼬마 인형을 들고 한 손에는 총을 들고 노닐던 통이가 달려와 묻는다. 아빠 왜 그래? 가르쳐 줘! 그건 왜 그래? 한없이 이어져 '제발 가르쳐 줘'라며 졸라대는 통이의 얼굴은 나의 모습이다. 어느 날 아버지가 마구 마구 휘둘러 대며 나에게 들이댔던 그 혁대, 그리고 자고 있던 나에게 아무런 영문없이 엎드려 뻗쳐 시켰던 그 기억이 통이의 두 종아리에 휘둘렀던 나의 회초리와 툭하면 고함 내 지르는 나의 질책으로 통이의 기억 속에 이어졌으리라. 조금도 틈새를 주지 않고 물어대는 통이의 성난 얼굴은 나의 가슴에 찐한 질문을 던진다. 여유있는 삶과 부족함 없는 삶 속에서 왜 언제나 한쪽 가슴이 비워 있음을 슬퍼해야 하나? 여기 여기 넓은 땅 위 에 있으면서도 난 왜 가난을 느껴야 하나? 나 자신만의 힘으로 이루어 냄이 없기 때문인가? 어린 시절 달님의 눈물이 나의 눈으로 흘러 내렸던 그 흔적이 아직도 남아 있기 때문인가? 통이의 물음은 나의 물음이 되어 나의 가슴에 던져진다.
95100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