방황

파란 하늘

묵향의 이야기 2007. 3. 22. 20:45
 

푸르른 하늘과 나의 자그마한 사무실에 넘실거리는 선율은

이 가을의 미소를 한껏 가슴에 담게 합니다.

하지만 가을이 왔음에도 메마른 눈물이

나의 눈망울을 가로 막는 것은 무엇 때문인가요?


풀 수 없는 여러 일들이 뇌리 속에서 그저 헝클어져

정리되지 않고 있기에 그리할 것입니다. 그리고

브람스의 사랑에 대한 번뇌는 예술가의 꿈으로 미화되지만,

나의 끊임없는 갈망은 헛된 꿈으로 여겨질 수밖에 없다 해도,

난 그 갈증이 채워지길 언제까지나 바라고 있기 때문일 것입니다.


이 아름다운 계절에, 세상의 혼탁한 소리와 단절된 곳에서

가을하늘빛이 드리워져 푸름을 더하는 강물을 바라보고 싶습니다.

그리고 꿈속에서라도 되새겨 보고 싶습니다.

애틋했던 그리움을 떠올리며 미소를 머금고,

따스했던 그 손길을 느끼며 가슴 설레던 시절을 되돌아봅니다.


말 한마디 건네고는 얼굴 붉히던 어린 시절,

하얀 드레스를 입은 신부를 안고 빙글빙글 돌던 그 때,

만남의 기쁨과 술이 어우러져 춤추는 아파트를 바라보았을 적,

이제는 희미한 기억으로만 머릿속에 남겨져 있기에

나의 가슴은 텅 비어 버렸습니다.


하지만 어차피 삶이란 것이 허공에 흩어지는 담배연기 마냥

그저 지나가 버리는 것이기에, 퇴색되어 버릴 그리움일지라도

한 모금 한 모금 나의 가슴에 채울 수 있다면

또다시 한껏 깊이 머물다 가게하고 싶습니다.

먼 훗날 지난 생을 되돌아 볼 때 미소를 머금을 수 있는

그런 추억을 더하고 싶습니다.


빈 가슴을 채우려다가 설령 한쪽 가슴을 도려내야 한다 할지라도,

뻥 뚫린 나의 영혼을 가을햇살이 저물기 전에 메워 보렵니다.

현실이 더 이상의 추억을 허용치 않는다면,

쓰디쓴 담배연기로라도, 독한 알코올로라도

나의 갈증을 잠시라도 적시게 가득 채우렵니다.


그러나 알고 있습니다.

시지프의 신화처럼 되풀이될 삶의 고독이기에

오늘 하루만이라도 그저 가을하늘빛에 취해

지난 추억을 떠올리며 미소 짓고

이루지 못할 꿈속의 그 모습을 그리는데

만족해야 한다는 것을 알고 있습니다.


한 점 구름 없는 가을하늘은 파랗습니다.

그늘진 곳도 푸른빛으로 물들여주기에

이 계절만큼은 그 빛깔로 빈 가슴을 채우렵니다.

내게 미소를 안겨주던 그 얼굴은 파란 가을하늘이었으니까요.


       1995년  10월 10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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