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쁜 세상 바라보기

작지만 아름다운 것들

묵향의 이야기 2007. 3. 23. 08:55
 

작지만 아름다운 것들


명동 코스모스 빌딩 앞, 행상을 하고 있는 뇌성마비 앉은뱅이 총각의 손을 잡고서, 허리 굽혀 목장갑 끼워 주는 청원 경찰 아저씨. 아름다움을 느끼게 해 주는 모습이다.


                                                     1997년  12월 18일


화장실 문을 열고 들어서니 정장한 남자가 벽을 향해 서서 볼일을 본다. 나 또한 그 옆  자리에서 벽을 향해 서 있자니 그 남자가 일을 마치고 손을 씻는다. 나는 지퍼를 올리고 별 생각 없이 문을 향해 발을 내딛었다. 그 때, 손 씻던 남자가 먼저 문을 열려다 비켜선다. 문손잡이에 나의 손이 먼저 가고 뒤따라 그 남자가 나온다.

물에 젖은 손잡이를 잡는 불쾌함을 주지 않으려 잠시 비켜서는 작은 배려가 아름답다.


                                                       1998년  3월  23일


조금은 비집고 들어 올 수 있는 공간이 있었지만 한쪽 손을 쑥 내밀고 양보해 달라는 어느 운전사. 밟고 있던 페달에서 잠시 발을 떼고 있으니 또 다시 손을 내밀며 고마움을 표시한다. 작은 배려에 고마움을 표시하는 마음이 아름답다.


                                                        1998년  5월  7일


올림픽 공원 큰 사거리 건널목. 신호등에 걸려 서 있는데, 곱게 차린 백발의 할머니 세 분이 가벼운 손 짐을 들고 파란 불을 기다리고 있고, 반대편에 선머슴 같은 고등학생 몇이 어울려 있다. 건널목 한 가운데에서 한 학생이 반가이 할머니들에게 인사 건네더니, 한 할머니의 가벼워 보이는 짐을 들어 드리겠단다. 활짝 웃으시며 사양하시는 할머니. 하는 수없이 꾸벅 인사 드리고, 이미 빨간 불이 켜진 횡단보도를 달려 멀리 가고 있는 친구들을 쫓아간다. 달려가는 그 학생을 바라보며 나는 미소를 짓게된다.


                                                          1998년  9월 18일


버스에 몸을 실었다. 사람들이 내리고 또 다른 사람들은 올라타고...... 칠십 가까이 되어 보이는 노인이 지팡이를 짚고 절뚝거리며 버스 문을 향해 뛰어오고 있다.

버스 기사는 급히 문을 닫고 출발하려 한다. 앞쪽에 앉아 계시던 나이든 아줌마의 ‘태워주시죠!'라는 말에 기사 아저씨는 마지못해 문을 열어 준다. 힘겹게 차에 오른 노인이 자리에 앉을 동안 버스는 잠시 멈춰 서 있다.

몇 정거장을 지나서 앞쪽에 앉아 있던 그 노인이 몸을 움찔거린다. 몇 자리 뒤에 앉아 있던 젊은 부인이 일어선다. 그 노인에게 다가서서 팔을 부축하고는 하차하는 문으로 다가간다. 버스는 덜컹거리고......

함께 내려 주지 못함을 미안하게 생각하는 듯 그 젊은 부인은 노인이 땅에 발을 내딛을 때까지 그 자리에 서 있다. 그리고는 제 자리로 돌아가기 위해 덜컹거리는 버스 손잡이를 잡고 발길을 내딛는다.

버스 기사 아저씨가 그 젊은 부인에게 말을 건넨다,

“고맙습니다."

부인은 그저 가볍게 미소만 지을 뿐이다. 함께 어우러져 사는 모습, 작은 일이지만 아름답다.


                                                    1998년   11월 9일

                                          아름다운 눈빛으로 세상을 보았을 때..


  며칠간의 언짢은 일들로 인상을 찌푸리며 달려가던 출근길에서 교차로 신호등이 빨간불로 바뀌기에 나는 차를 멈추었다.  옆 차선에서 뒤쫓아 오던 덤프 트럭이 나의 차선 앞으로 급히 핸들을 꺾어 밀고 나오며 신호를 무시하고 달려간다.  순간 우지직- 소리가 나며 내 차 뒷부분이 크게 흔들거렸다.  이미 신호등은 빨간불이었음에도 나는 앞질러가 그 트럭을 세웠다.

  얼핏 겉보기에는 뒷범퍼의 일부에만 흠집이 났고 페인트가 벗겨져 있었다.  하지만 난폭 운전을 했던 그에게 나의 화풀이도 덧붙여 한바탕 큰 소리를 치리라 마음먹고, 옷소매를 걷고 트럭 운전사와 한바탕 붙으려는 순간, 어떤 젊은 친구가 다가서 오며 말을 건넨다. 

  “아저씨, 내가 받는 거예요. 트럭을 피하려다 아저씨 차를 받았는데, 정말 죄송합니다.”

  그냥 모른 척하고 지나쳐도 되었을 젊은 친구는 머리를 조아리며 내게 사과를 한다. 

  “제대로 수리를 하려면 십 여 만 원은 들 테고, 적당히 겉의 흠집만 지우려 해도 몇 만 원은 들 텐데…….

  그냥 가라는 나의 말에 그는 미안한 표정과 함께 환히 웃으며 자기 차로 돌아간다.

  그의 티코 중고차 뒷 유리창에는 몇 개의 글자가 쓰여 있었다. 

  “아기가 타고 있어요.” 

  그의 차에는 아기뿐만 아니라, 작지만 아름다운 ‘양심’도 타고 있었다. 

  

                                                               2002년 5월 31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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