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리즘

비행사고

묵향의 이야기 2009. 2. 20. 17:53

골똘히 생각에 잠겨 있는데, 갑자기 유리창에 무언가 강하게 부딪기는 소리가 들렸다.

가끔 그러하듯 새들이 사랑의 숨박꼭질을 하던 중 한쪽 벽면 전체를 가로 막고 있는

투명한 벽을 뚫고 날아드려다 유리창에 부딪기는 비행사고이거니 하고 무심히 지나쳤다.

 

혼탁해져 버린 내 머리속을 환기시켜 보려고 오랜동안 굳게 닫혔던 창을 열어제끼고

밖을 내다보니, 촘촘히 나뭇잎으로 덮여있는 향나무 위에 새 한마리가 머리를 감추고

누워있다.  아마도 며칠 전에 유리창을 들이 받았던 직박구리 그 새이었으리라~

 

결국 몇 년동안 커튼 내리기를 머뭇거리다가 나는 가엾은 새 한마리를 잃고 말았다.

                                                                                     2009.  1. 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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커튼을 내려야겠습니다. 

 

동쪽 한면을 가로막고 있는 통유리을 뚫고

나를 향해 날아드는 새들의 좌절을

더 이상 바라볼 수 없어 커튼을 내려야겠습니다.

 

아래로 내려다보이는 창가 감나무와 향나무의

나뭇가지 사이로 사랑의 숨박꼭질을 하기 위하여

지그재그 쫓고 쫓기던 새들이 몸을 감추려 날아들다가,

그 나무와 나를 한곳에 머물게 하는 유리창을 미처 보지 못하고

그만 상처의 흔적만 남긴 채 저 멀리 가 버리는 것이 안쓰러워

이제는 커튼을 내려 창문을 가리고 벽을 만들어야 할 것 같습니다.

 

갇혀있는 나의 영혼이 하늘과 숲과 새들을 바라보지 못하여

더 깊은 수렁 속에 스스로를 가두게 된다 할지라도,

세상과 자신을 향한 기만을 커튼을 내려 감춰야 할 때가 왔습니다.

 

존재하지만 존재하지 않아 보이는 허상을 거두어야 할 때가 왔습니다.

 

2007. 12. 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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