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리즘

봄날의 허무

묵향의 이야기 2009. 4. 11. 15:48

늦가을이면 어김없이 목련은 꽃을 피운다.
두꺼운 표피에 둘려 싸인 꽃망울이
앙상한 가지 끝마다 숱하게 매달려 봄을 기다린다.

봄까지 미처 기다리지 못해
하얀 눈이 내릴 때면
목련의 가지마다 흰꽃이 만발한다.

겨우내내 잿빛이었던 길마다
화사한 벚꽃이 만개해 있다.

언제나 서울보다 한발 늦게 꽃망울을 터뜨리는
여기 농원의 벚나무를 야속하다 생각하노라면
어느덧 차고 앞 큰나무는 하얀 눈으로 덮어져있다.

산수유에 이어 개나리 진달래의 미소를 접하고 나면
하루 하루 정신을 차릴 수가 없다.

경주라도 하듯 여기저기 터져버리는 꽃봉우리들은
짧은 산보길에 내 마음을 온통 휘젓는다.

봄의 향연에 빠져 잔인한 사월을 음미하고 있다보니
계단 옆 두 그루의 라일락도 여린 나뭇잎 사이로 꽃을 피운다.

라일락향 피어오르니
한 줄기 바람결에
겨우내 꽃을 피웠던 순백의 목련꽃은
허망하게 땅바닥에 내동댕이쳐진다.

갸냘픈 봄날의 숨결이 지나치면
하얀빛으로 덮여있던 가지마다 
벚꽃들은 꽃비되어
무수한 이별의 공연을 펼친다.

라일락 향기가 피어 오르니
봄비가 내리기 시작한 것이다.

목련의 소낙비
그리고
벚나무의 이슬비는
일장춘몽에서 나를 깨우고
또다시 허무속으로 나를 밀쳐낸다.

허망하다. 이 봄날의 주말이....

2009. 4. 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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