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년 만에 서초동 예술의 전당 오페라하우스를 찾았다.
화재 이후 2년 만의 재개관 기념 작품으로 올려진 ‘피가로의
결혼‘ 첫날 공연에 오래 기다리던 이를 만나는 설렘을 안고 나섰다.
이윽고 막은 오르고, 낯익은 ‘피가로의 결혼’ 서곡이 울러 퍼졌다.
“피~~가로 피~가로 피가로 피가로....”
다소 지루하게 시작된 공연은 어느덧 1막의 끝을 향해 달렸고,
살며시 눈이 감겨오는 순간에 귀에 익숙한 선율이 뜻 모르는
대사와 함께 흘러 나왔다.
바람둥이 케루비노가 백작의 눈 밖에 나 전쟁터로 떠나게 된 장면이었다.
피가로가 케루비노에게 건네는 말~
“작은 나비
다시는 밤낮으로 팔랑거리지 못해,
아기씨들을 못살게 했었지.
작은 나르시스, 작은 아도니스
그 얄따란 날개를 이젠 더 못 움직여
그 가벼운 모자도,
그 곱슬머리도, 그 아리따운 자태도,
여자처럼 발그레한 뺨도 이젠 다시는.
........ “
지루함에 뒤범벅이 되었던 내 얼굴에 잠시 미소가 흘렀다.
“아하~ 이런 뜻이었구나!”
전쟁터로 떠나지 않고 백작부인의 방을 찾게 된 케루비노!
부인을 위해 연주를 하라고 재촉하는 수잔나 말에 이어 나온
케루비노의 가냘픈 선율
“사랑이 뭔지 알고 있는 그대 여인들이여.
내 가슴에 그것이 들어 있는 걸 보세요.
내가 느끼는 걸 말해 주겠어요.
내겐 처음이라 그게 뭔지 잘 모르겠지만요.
즐거움 같기도 하고 괴로움 같기도 한
열망으로 꽉 찬 걸 느껴요.
굳어버렸다가, 영혼이 불타오르고
다음 순간 다시 굳어버려요.
내 자신 밖에 있는 행복을 난 찾아요.
누가 그걸 갖고 있는지, 그게 뭔지 난 몰라요.
그럴 생각 없는데도 난 한숨 쉬고, 슬픔에 빠져요.
그러지 않으려 해도 난 몸이 떨려요.
밤이나 낮이나 평안을 찾을 수 없어요.
그러면서도 그렇게 괴로운 것이 난 좋아요.
사랑이 뭔지 알고 있는 그대 여인들이여..
내 가슴에 그것이 들어있는 걸 보세요.“
난 마음속으로 박장대소해 버렸다.
3시간 30분 동안 진행된 공연에서 서곡 이외 친숙한 구절은
딱 2개였건만, 어쩌면 그 가사의 내용들도 내 마음에 와 닿는지....
살며시 피가로의 연인인 수잔나는 퇴장하고
결국 케루비노의 달콤한 가사에 넘어간 백작부인은
케루비노의 품속으로 들어가려 한다.
...............
막은 내렸다.
거금 20만원짜리 VIP 티켓과 함께 (1층 대부분이 VIP석임)
재개관한 오페라하우스에 대한 기대를 갖고 찾았건만,
내 마음은 몹시 불쾌하기만 했다.
이전보다도 좁아진 좌석의 폭
그리고
앞 사람 머리에 가려 무대의 중앙이 보이지 않는 VIP석.
게다가
좌석 하나에 2백만원의 후원금을 받고 후원자 이름표를
달아 준다는 얄팍한 경영개선 전략!
최고의 무대와 최적의 관람 환경이 있어야 할 예술의 전당이
아마도 경영개선이라는 단시안적 시각에 오히려 열악하고 퇴보한
전당으로 바뀌었으니 정말 울화통 터질 일이었다.
십년 넘게 연회비를 냈던 것도 이젠 그만두어야만 하는가?
설렘으로 막은 올랐건만,
결국 실망으로 막은 내리고 말았다.
2009년 3월 6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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