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리즘

어제 즐거웠고 고마웠다.

묵향의 이야기 2009. 10. 25. 13:33

연극이 끝난 뒤 텅빈 무대를 바라보는 마음이다.

감동과 즐거움이 컸기에 빈자리는 더욱 허전한 모양이다.

 

막상 초대를 했지만 먼곳에서 오는 친구들이

기쁜 추억을 안고 돌아가지 않게 되면 어쩌나 걱정이 앞섰다.

 

이것저것 준비했을지라도 많이 부족한 상황에서

친구들이 알아서 숯불 붙이고 채소 씻고 고기 구며 도와주었기에

다소나마 입맛을 돋구며 비운 배를 채울 수 있었다.

 

맛난 오리구리와 바싹 마른 참나무 한아름 안고 온 웅이와

멋과 맛이 어루러진 와인을 들고온 친구들의 배려로

잔디밭 식탁위는 좀더 풍성해질 수 있었다.

 

특히 부인을 천안에서부터 모시고 온 김은주의 낭군은

오히려 후배가 아닌가 싶을 정도로 젊디 젊은 모습으로

우리들의 자리를 빛내주었고,

 

막이 내릴 무렵 어두운 곳으로 홀로 걸어가는 엄마가

걱정이 되어 일행에 합류하는 모습을 보고서야

송파 집으로 되돌아가는 이미숙의 아들은 대견했다.

 

어둠이 내리면서 거나해진 취기 때문인지 즐거운 대화에

빠져들어서인지, 친구들은 어느덧 40년 전으로 돌아가버렸다.

 

손가락 하나 간신히 잡고 포크댄스하던 우리들은

이제는 손을 와락 잡고 모닥불 주위를 돌았다.

 

둥글게 둥굴게 돌아다 '셋'하고 누군가 외쳐대니

개구쟁이들은 그 시절처럼 여친에게 달려가 와락 안았다.

 

무궁화 꽃이 피었습니다를 하며 제멋대로 지어내는

50대 친구들의 표정은 9살 난 막내 현주의 표정과 똑같았다.

 

용가리 노래방에서 마지막 뒷풀이를 하고 떠난 친구들의

빈자리는 채 꺼지지 않은 모닥불의 연기가 대신했고,

함께 큰 소리를 내며 웃던 모습은 가로등 불빛을 바라보며

되풀이하여 떠올릴 수 있었다.

 

먼곳에서 찾아주고 즐거운 시간 함께 했던 친구들 고마웠다.

이제 11월 27일 더 많은 친구들의 모습을 마주하게 되길 바랄 뿐이다.

 

2009. 10. 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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