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weet home

미안해~

묵향의 이야기 2011. 9. 19. 19:22

늦더위가 기승을 부리더니 뚜욱~ 가을을 되찾게 해줬다.

피부로 느껴오는 계절은 가을이건만, 눈망울에 비추는

먹구름 하늘은 얄미운 장마철이다.

 

문득 창밖을 바라보니 벌써 한 잎 두 잎 떨어진 감나무가

눈망울에 맺혀진다. 가냘픈 빗방울이 빛바랜 잎에 떨어지는

속삭임은 계절의 그리고 삶의 허무를 들려준다.

 

그나마 헛헛한 가지 한 줄기에 새 한 마리 날라 온다.

세월을 재촉하는 바람결은 유리창을 향해 날아오던

직박구리 새들에게 오지 말라고 내려놓았던 커튼을 흔들고 있다.

 

문득 생각난다. 며칠 전 아내가 살짝 들려주었던 현주의

하소연! 그리고 현주 나이 때쯤이었던 첫째 딸이 말했던

그 이야기가!

 

막내 현주가 엄마에게 하는 말~

“나는 아빠 딸이니까 이해하지만, 아빠는 얼굴이 검고

술에 빨갛고, 게다가 머리카락도 없이 못생겼으니까,

내 친구들은 아빠를 싫어할 거야!“

 

십 년 전쯤인가 첫 딸이 엄마에게 따졌다.

“13층 아저씨는 장미 아빠(당시 드라마의 아빠?)처럼 멋진데,

왜 아빠는 잘 생기지 못한 거야?“

 

가슴속까지 시리게 하는 바람을 막고자 창가로 다가선다.

못생긴 아빠를 둔 딸들의 투정을 입막음 하려고,

잘 생긴 감을 찾기 위해 창밖의 감나무를 둘러본다,

 

한여름의 햇빛이 엊그제까지만 해도 내리비췄는데

감나무의 행색은 초라하기만 하다. 해마다 높은 가지 끝의

감들은 까치밥이 되곤 했는데, 어찌된 영문인가?

아무리 살펴봐도 감 하나 찾을 수 없다.

 

벌서 십년 째 바라보고 있는 창 안의 주인의 일상을

헤아렸던 것일까? 유난히도 힘들었던 올해 상반기의

내 마음처럼 감나무의 나뭇가지들은 텅 비어있었다.

 

잘 생긴 감을 따다가 못생긴 아빠를 원망하는 딸들에게

작은 선물로 갖다 주려던 것은 물거품이 되어 버렸다.

그저 내가 할 수 있는 것은 하나 뿐!

 

“얘들아! 미안해~ 아빠 못생겨서!”

 

2011. 9. 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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