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해는 뒷간에 가지 못해 묵직해져 버린 아랫배를 안고 지내야 하던 것을
속 시원히 풀어내는 시기인 것 같다.
2009년도에 준공했던 빌라 24대 중 7년 동안 분양 못했던 (안했던) 한 세대의
잔금을 오늘 받는 날이다. 아버지에게서 물려받았던 여기 광주 땅에 첫 작품으로
내밀었던 것들을 정리하고, 인접한 땅에 9동의 다세대 주택을 건축하고 분양해야만
하는 상황에 시동을 걸 수 있게 되었다.
20년 전부터 추진해 왔던 세대물림을 이제야 인정받게 되었다. 십 여 년 전부터
언제 들이닥칠 지 알 수 없어서 항상 준비하고 있던 아들에 대한 세무조사가 내일
종결된다. 3월부터 두 달간 나를 몹시 귀찮게 했지만, 예견했던 일로 국세청에
적발된 것이 아니라 착오로 발생했던 추징당할 것들을 나 스스로 밝히고 세금을
계산해서 납부하고 끝을 낸다. 그 사람들도 참 편하게 실적을 올렸으리라!
법전 두께의 자료를 내가 만들고 적용할 법적 근거까지 첨부해서 제출했으니,
이런 피조사가가 있을까?
2000년 1월 아버님이 타계하시고 누나와 여동생에게 배분하였던 통장을 여동생은
인감도장과 함께 내게 즉시 돌려주었었다. 그 통장에서 돈을 빼 공동으로 외국인
임대주택을 건축해서 할당받은 한 세대도 임대 관리해 왔고, 그 통장의 돈도 내
마음대로 빼내 여기저기 옮겨 다녔고, 주식 투자해서 손실을 입힌 것을 내 돈으로
메워 되돌려 주기도 했지만, 15년 동안 동생은 지금까지 한 번도 자신의 통장에
대해서 묻지도 손을 내밀지도 않았던 것이다. 한 두 글자로 기록은 해 놨어도
누적 입출장부를 만들지 않아서 항상 찝찝했는데, 15년 만에 수익 손실과 입출
내역을 지난 1월에 만들었던 것이다. 오 백 여원만의 소명 못한 금액이 있지만,
내가 떼어 먹은 것은 아니니 그 정도면 15년간의 신빙성 있는 자료로 충분하리라!
거의 삼 십 년 동안 렌즈 교환형 큰 카메라를 매만져 오다가 별 관심 없던 겉치레
의 사진작가 명함을 작년에 비로써 새겼지만, 인사동 갤러리에서의 6월 공동
전시는 이번이 처음이다. 1996년부터 인터넷 게시판에 올렸던 삶의 낙서 중
한 개의 기행문이 누군가의 손에 등 떼밀려 20년 만에 허울뿐인 등단 수필
작가가 된 것은 이번 3월이다. 십 여 년 동안 비록 마음속에서나 기웃거렸던
글쓰기 공부도 청포도 익는다는 칠월에 아줌마들 틈에 끼어 시작할 것이니
이 또한 묵었던 마을을 떨쳐 내는 것이 아닐까?
그러면 올해 또 무엇이 정리될까? 이천 년 초부터 “묵의 향기처럼 살고 싶은데,
현실은 그러하지 않구나.”라며 인터넷 명으로 만들었던 묵향의 의미가, 이제는
“묵의 향기를 찾아 나섰다!”라는 것으로 바뀔 수 있는 것일까?
그리되길 소망할 뿐이다. 노력은 하지 않고……. 아니면 내 삶의 정리?
그런데 오늘은 뭘 해야 할까? 호미 들고 잔디밭에 올라 가 잡초나 뽑아야겠다.
2016. 4. 29. 이른 아침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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