눈이 내리는 날에는 하얀 순백색에 묻혀 버리곤 했습니다. 진달래와 개나리가 꽃망울을 펼칠 때는 노랑 분홍빛으로 물들어 버렸습니다. 청빈한 외할아버지의 보살핌이 있었음에도 칠남매의 셋째로 아래 동생들을 보담기에 너무나도 벅찼지만, 그래도 바람 불 때는 바람이 되고 꽃향기 피어날 때는 꽃향기가 되고 싶었던 어린 소녀는 그 시절 모두가 그러했듯이 북녘의 고향을 등지고 냉혹한 현실에 내동댕이쳐져야 했습니다.
풀포기 하나하나 꽃잎 하나하나에 꿈을 그렸던 그 고향의 산하는 저 멀리 꿈속 나라가 되어 버렸고, 살림에 보탬이 되고자 어둠이 채 가시기도 전에 집을 나서 어둠이 깊어져서야 집으로 돌아와야 했고, 그나마 잠시 누워 지난 시절을 생각하며 미소를 지어보고 싶을 때도 네 명의 동생들의 뒷바라지가 그 마음마저 앗아가곤 했습니다.
당시로는 늦은 나이였던 스물여섯 해가 되었을 때 작달만하고 볼 품 없지만 성실해 보이는 신랑을 만나 백년해로를 기약하였습니다. 비로써 집안의 한 기둥으로 짊어져야 했던 부담을 털어내게 되리라 설레었던 것도 잠시뿐! 시부모 그리고 다섯 명의 시동생의 더 큰 기둥이 되어야만 했습니다.
시지프스의 신화처럼 나의 엄마는 어린 소녀시절부터 앳띤 새색시의 날들을 지나 칠순이란 세월의 점들이 찍힐 때까지도, 뒷바라지라는 숙명을 굴리고 또다시 굴려야만 했습니다. 우리 세 남매의 엄마는 그렇게 당신의 꿈은 져버린 채 평생을 자신을 위한 삶을 버려야만 했습니다. 엄마~! 엄마 당신은 지금 얼마만큼 당신의 삶을 향유하고 계신가요?
어찌 생각하면 너무나도 가혹한 삶이었습니다. 이제 비로써 남편의 사랑을 독차지하고 ‘유지득동’ 늦은 나이에 아들까지 품에 안게 된 결실의 세월에, 십칠 년간의 시어머니 병 수발을 대신하여 십 여 년 간 한 남자의 지팡이가 되어 당신의 삶을 뒷전에 놓고 살아야 했고 늦둥이 아들이 어린 아이의 티를 벗지도 못했을 때 높은 하늘 커다란 기둥을 잃어야만 하는 통곡의 순간을 맞이해야 했습니다.
아무리 장성한 딸들이 있다 한들 무슨 소용이 있었겠어요? 아무리 사랑과 이해의 마음으로 보담아 주는 이모 고모들이 있다 한들 어찌 작은 위로라도 되었을까요? 짓누르는 하늘을 오직 당신! 당신 한분의 팔과 다리로 버텨야만 했습니다. 너무나도 애처롭던 삶이었습니다.
엄마! 아빠가 성모병원에서 지금 집으로 모셔졌을 때 아빠는 기뻐하셨답니다. 당신의 육신에서 벗어난 그 영혼은 덩실덩실 춤을 추셨답니다. 그리고는 홀로 남겨진 엄마를 생각하며, 그리도 어린 대영이를 생각하며 한 숨 크게 쉬시고는 고운 곳으로 힘든 육신의 탈을 벗어 던지고 발걸음을 내딛으셨답니다. 심 서방이 아버지 당신을 앞에 모시고 두 눈으로 보았답니다.
엄마! 이제는 우리들이 엄마 곁을 지키겠습니다. 어린 시절 외할머니 외할아버지의 보살핌 속에서 꿈 많은 소녀 시절을 키우듯 이제는 우리 세 남매의 마음을 하나로 모아 엄마의 작은 기둥이 되어 보렵니다. 보셨죠? 군에서 제대한 대영이는 이제 어엿한 어른이 되어 엄마 앞에 큰 힘이 되어 있어요. 황서방 심서방도 엄마의 한 쪽 손을 잡아 드리고 있잖아요. 그리고 지금까지 그러했듯이 이모 고모 그리고 삼촌들도 엄마 곁에서 우리들을 위한 사랑을 끊임없이 나눠주고 있잖아요.
오늘 우리 세 남매가 작은 힘들을 보태어 엄마의 일흔 번 째 생신을 축하드리는 자리를 마련하였어요. 어찌 엄마의 은혜와 엄마에 대한 보은의 마음을 오늘 하루로 마감할 수 있으려나요? 하지만 엄마 앞에 있는 대영이가 이렇듯 큰 아이가 된 것을 보시면서 이제는 잃어버렸던 그 소녀의 시절로 돌아가세요. 진분홍이 물들을 때는 진분홍이 되었듯이 하늬바람이 불 때는 가을의 풍요를 흠뻑 가슴에 담았듯이 하루하루 행복으로 넘쳤던 그 시절 그 때의 마음으로 이제는 어깨의 무거운 짐을 벗어 던지고 엄마의 삶을 한껏 누려 보세요.
엄마~ 아빠가 멀리 떠나 가 버리신 지 오래지만, 이제는 어느덧 큰 어른이 된 대영이가 곁에 있고 이것저것 챙겨주고 살펴주는 황서방도 곁에 있고 우리들도 엄마 옆에 바로 있으니, 이제는 걱정 근심 떨구시고 행복한 추억과 미소만을 간직하며 오래도록 우리 곁에 머물러 주세요.
그리고 정말 고맙다는 말씀 드리고 싶어요. 우리 엄마가 이렇게 행복한 자리가 마련될 수 있었던 것은 여기에 와 주신 이모 고모 그리고 삼촌들 덕분일 거예요. 지나간 엄마의 긴 가시밭 길 삶에서 내일의 희망을 간직했던 것은 이해하고 감싸주고 감사히 여기고 나눔을 함께 해 주셨던 이모 고모 삼촌들이 우리 곁에 있었기 때문일 거예요. 오늘 이 자리가 엄마의 고희연을 위한 자리이기 보다는 바로 한 울타리에 있는 우리들의 사랑을 되살피고 되새기기 위한 자리가 되길 바라요.
엄마! 이렇듯 우리를 키워주고 한없이 베풀어 주신 것에 감사드리고 깊이 사랑합니다. 여기 오신 모든 분들게 또한 깊이 감사드립니다. 고맙습니다.
2007년 12월 12일 장모 님 고희연에서. (내가 쓰고, 아내가 읽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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