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weet home

한가위 날의 일상 2014년 9월 8일

묵향의 이야기 2017. 8. 14. 07:51

홀로 하루 종일 음식 장만하던 아내는

완전히 방전되었다면 안방으로 들어가 버린다.

 

“제기 모두 꺼내 놨으니 잘 닦아 놓으세요!”

 

종이행주로 접시 위 먼지만 닦아내고 있으려니,

불쑥 부엌으로 나온 아내의 핀잔에 수도꼭지를 열었다.

 

나의 가장 절친한 벗을 마주하고자

냉장고 문을 여니 헷갈린다.

 

제사상에 올릴 반찬통을 꺼냈다가는 내일 죽음이다.

 

소주 병 뚜껑을 열다보니

고소한 갈비찜 냄새가 솔솔 풍긴다.

 

렌지 위의 찜통 뚜껑을 열고 싶지만,

먼저 제수를 덜어 놓지 않았기에 그저 견물생심이다.

 

설날과 한가위 아침은 여유롭다.

손님은 없고 내 식구만 14년 동안 자리를 지키고 있다.

 

막내였던 아버지이기에 단 잔만 올리면 된다지만,

술 못 드시던 엄마 몫까지 여섯 잔을 올린다.

 

퇴주는 모두 내 차지!

그리고 부지런히 목기들의 설거지에 돌입한다.

 

아내는 음식정리

나는 설거지 담당

아이들은 제수용품들 뒷정리

 

오후에는 동생 가족과 함께

팔당에서 영면하고 계신 두 분을 찾아뵙는다.

그리고 저녁에는 누나 동생 가족들과 회식 모임을 갖는다.

 

올해는 몇 년 동안 성묘 못한 포천 장인께 찾아뵙자고 하니,

장모님은 사위가 힘들 것이고 당신도 기력이 없다며

이내 고개를 가로 저으시니, 그저 나는 말로만 생색내고

맏사위 역할을 다 했다는 것.

 

저 아래의 풀벌레 소리만 이 밤의 적막을 흔들고 있다.

그렇게 14년 동안의 명절은 내게 고독만을 안겨주고 있다.

 

2014년 9월 8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