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리즘

소풍 떠나는 날을 기다리며

묵향의 이야기 2021. 7. 30. 09:09

너무도 매정하게 퍼 부었던 장마가 잠시 멈췄다가

지금은 굵은 장대비로 그 뒤끝을 보여주고 있어요.

오늘 빗님은 마음을 씻어주고 흙 내음 안겨줘 좋네요.

 

거실에서는 새로 다운 받은 선율이 흐르고 있고,

책상 위에는 비어가는 두 번 째 소주병이 놓여있고,

꽁초로 가득 찬 재떨이에서는 여전히 연기 피어나고!

 

오늘도 감옥으로 출근했어요. 화생방실이기도 하죠.

봄날의 꽃빛깔은 사라지고 시원한 바람은 멈추고

존재하지 않는 철창이 나를 가두고 있어요.

 

즐거움이 없네요. 마치 구름이 해님을 가리듯이,

오랫동안 그늘에 머물러 더 이상 햇살을 못 보네요.

나이 탓인가? 우울증인가? 그저 사라지고픈 마음!

 

그래도 내가 뿌린 씨앗들의 쫓기지 않는 삶을 마련하려고

이제 몇 년 동안 나를 무척 괴롭힐 일을 시작해야 하기에

지금 나의 마음은 철창 속에 갇혀 있는 것 같네요.

 

철창 밖에서 철창을 잡고 철창 밖 세상을 바라보던

부탄의 스님 모습이 떠오릅니다. 힘들어요!

그동안 낙이었던 것들도 이제는 낙이 아니군요.

 

천상병 님은 소풍을 끝내고 떠나겠다고 했지만,

나는 이제 소풍을 떠나고 싶습니다. 다시 돌아오지 않을!

바람이 되어 한없이 떠돌겠습니다. 존재 없는 세상에서!

 

2020년 8월 14일 묵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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