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쁜 세상 바라보기

어느 가을날

묵향의 이야기 2007. 3. 16. 19:15
 

  귀뚜라미 울음 소리가 달빛 타고 창가로 흘러드는 깊은 밤이다.  어린 시절 정원에 둘러 싸였던 나의 방에서 느끼던 그 가을의 느낌을 되살리고파, 여기 농장에서의 깊은 밤의 시간을 갖고 싶어 했기 때문인지 비로서 오늘 몇시간의 잠결 속에서 깨어나 이 자리를 맞이한다.  늙으신 아버지도 깊어가는

밤이 아쉬운듯 늘상 한밤에 일어나서는 홀로 있는 적막감에 찬장에 놓여 있는 소주를 마시시는 일을

이 한 밤에도 또 하신다.  넓은 뒷동산 구릉지에 소와 돼지들이 꿈 속에서 이야기 축제를 벌이던 이 곳은 여기저기 들어선 동네 집들 때문에 오리 닭 그리고 꿩과 공작새 등의 자그마한 보금자리로 바뀌어 그저 한가로운언덕 위의 스쿠루지 할아버지 집이 되었다.   내년 쯤이면 아래 그 공터에는 거대한 몇채의 아파트가 들어서기 위해 몇천년 잠들어 있던 땅이 파해쳐질 것이다. 깊디 깊은 그 흙더미 속의 세상은 어떠할까?   숱하게 파해쳐졌던 그 땅들 마냥 그저 흙과 돌 뿐이겠지만 그래도 이 땅 속에는 그 알 수 없는 어떤 세계의 모습이 들어 있을 것 같은 상념에 젖어 본다.


  오랜만에 귀솔들의 소리 들으며 글 이어내려 가는 가을밤이다.  추석 한가위란 시간의 의미를 지닌 날이라 그런지 마음은 그 가을 들녁 마냥 여유롭다.   창 밖은 청명한 가을밤 아래 커다란 둥그런 달님이 내리 비추는 달빛에 한껏 풍요로움을 간직한듯한 넓은 잎들의 너울거림도 잠재우며 아주 자그마한 소리로 속삭이는 크고 작은 나무들의 모습으로 꽉 차있다.  열한살 시절 어느날 밤 꿈 속에 잠들어 있던 나의 얼굴을 살포시 두드려대는 달빛에 눈을 뜨고선 문득 창 밖 달빛에 모습 드러낸채 고요히 가을의 상념에 깃들여 있는 크고 작은 나무들의 모습과 커다란 나뭇가지에 걸려 나아가질 못하고 있는 그 달님의 모습 바라보고선 괜시리 눈물짓던 그 가을 밤이다.  어이 그리도 이야기할 사연이 많은지 풀벌레들은 이 한밤에 요란하다.


  넓은 강 가운데로 난 버드나뭇 길과 넓은 강을 파아란 색으로 물들이던 가을하늘, 잔잔한 바람결에 너울 춤추던 저 멀리 가을 들녁의 곡식들, 바람결 타고 흘러내리던 신선한 가을 햇살은 한가로운 시골길의 달림을 이 혼돈의 세계에 묻혀 있는 나의 탈출로 이끌어 주었다. 



     투명한 가을 하늘 마냥 청명한 마음이 되게 하소서!


     여유로운 가을 들녁 마냥 풍요로운 마음이 되게 하소서!


     바람결 타고 흘러 내리는 가을 햇살 마냥 신선한 숨결이 되게 하소서!

  

     세월은 깊어 갑니다.


     깊어진 주름살 보다는 고개 숙인 저 이삭들의 모습에 의미를 두렵니다.


     겨울은 오겠지요.


     황량해진 대지 보다는 눈 속에서 숨결 이어가는 씨앗을 생각하렵니다.


     봄의 화사한 축제도


     지난 여름의 강렬했던 햇살도


     오늘 이 한 점 가을의 이야기 속에 모두 묻어 두렵니다.



     까르르 웃어대는 어린 소녀의 티없는 눈동자는 바람결 타고 한껏 날개짓


     하는 참새들과 어우러져 이 가을 창공 속에 깃들여져 있음입니다.


     터질듯 벌어져 있는 언덕 위 밤나무 열매는 뜨겁던 태양 그리고 매섭던


     바람의 기억을 이 가을 추억 속에 담으려 하고 있음입니다.


     가을의 시간은 멈춰 버렸습니다.


     이 푸르른 날


     해맑은 아이의 미소가 언제까지나


     나의 곁에 머물게 하소서!



 창문을 활짝 열어 제낀채 달려가는 가을 속 한 점 나의 마음은 마음 속

노래를 읖조리게 한다.  밝아 올 한가위 아침은 한껏 나의 가슴에 신선한

바람결을 지나게 할 것이다.  가을의 시간을 멈추게 하고 싶음이다. 

9409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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