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쁜 세상 바라보기

봉평 가는 길

묵향의 이야기 2007. 3. 16. 19:21
 

   봉평 가는 길은 소달구지 넘었음직한 나즈막한 산등성이 넘어, 채 파헤쳐지지 않은 산과 산 사이의 자그마한 평야를 가로 지른다.  굽이쳐 숨가삐 오르막 영동 고속도로를 타고 가다가 청계산 휴양림이 나올 쯤부터 겨울의 끝자락으로 군데군데 하얗게 모습 남긴 뫼를 넘고 또 가운데를 지나가면 길음이란 자그마한 샛길이 나와 시멘트 더미로 쌓아 올린 휘닉스 스키장을 지나치게 하고, 둔내와 평창으로 가는 갈림길에서 길손의 마음은 그저 달구지 자욱 남아 있는 길로 향한다.  굴렁쇠 데데굴 내리 굴러감에 아쉬어 힐끗 고개 돌려 바라 보니 여인네 옷소매 선 마냥 한 점 산 끝에서 흘러내리는 농부님네 밭데기는 자그마한 평야를 이룬다.  길가 한 뼘 땅붙이 굽이진 계곡에 앗긴 어느 촌부의 오두막과 자그마한 이랑은 이미 나의 것이 되어 몇 채의 보금자리와 봄내음 잠겨 있는 찻집으로 바뀌어 나의 가슴에 담겨 있다.  감히 벗의 권유 받아 들이지 못하고 있음에 그냥 지나치니 허물어져 주인 잃은 폐가는 차라리 마을의 이정표 되어 스쳐 지나간다.


   한 길가에 흙더미 발라 바람 막은 철물점과 건너 시멘트 이층에 새로 들어선 편의점은 차라리 봉평 마을님네들의 순박한 마음 그것일 뿐이다.   산 넘고 고개 넘어 찾아 온 도회지 사람에게 모습 보여주기 부끄러운듯 골목길에 숨어 버린 진미식당은  그저 시골집 아줌마 밥집일 뿐이다.   몇개의 탁자와 군불 지피워 길손의 몸 녹여주는 온돌방 두어개는  굳이 찾아온 이 무뚝뚝하게 반기는 주인의 모습 같다.   숭늉인지 육수인지 알 수 없는 투박한 물 한 모금에 허기진 배 채우고 한 점 돼지고기와 쏘주 한잔으로 하늘 아래 자그마한 마을 가득 채울 메밀꽃 필 무렵을 그리고 있으니, 그제야 메밀국수 한 사발이 나온다.   언제까지나 쟁반막국수란 것 차림표에 나오질 않길 바라며, 빈대떡이라도 시키려니 그저 메밀국수 그리고 곱배기 그 뿐이다.  단지 메밀꽃 사이에서 그리움 그리고만 장돌뱅이 급한 마음 달래 주기 위해 돼지고기와 쏘주만이 마련되어 있을 뿐이다.


   앞으로 나아가지 못하고 되돌아 서야 함은 아쉬움을 남기기 위함이다.   떨어져 있어야만 하는 이 가슴 속에 담고 싶은 것은 그리움을 남기고 싶음이다.   희미해져 버린 그 이야기 굳이 되돌아 보지 않으려 함은 나의 '메밀꽃 필 무렵'의 기억 영혼 속에 담고 싶음이다.


   봉평 가는 길은 차라리 해질녁 걸음 걸음 내딛으며 산등성이 넘고 싶은 길이다.



                                         1996년  3월  17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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