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름 따라 길 따라

미국 달라스

묵향의 이야기 2007. 3. 18. 10:01
 

  드디어 집으로 돌아 가는 비행기에 오른다.  좌석표를 보고는 왼쪽으로 안내하는 스튜어디스의 손짓에 자리를 찾았더니 분명 올 때의 좌석과는 다른 일등석이었다.  국내 일반고속버스 자리 보다도 더 비좁던 보통석과는 비교 안될 정도의 넓고 편한 자리였고 기내식이며 간단한 세면도구까지도 월등히 좋은 써비스였다.  분명 귀국편도 보통석이었을텐데 하며 그 자리의 주인이 올까봐 노심초사 두리번거렸지만 이미 비행기는 태평양 상공을 날고 있었다.  아뭏든 난 그 자리에 앉아 있고 보통석에 배정되었던 스튜어디스 보다도 더 젊고 예쁜 미국인 아가씨의 써비스도 받고 있으니 스스르 꿈 속에 빠져든다.  운이 좋아 남은 일등석 자리를 배정 받았단다..


  오랜만에 들어선 나의 집은 오히려 어색하기만 하다.  펼쳐진 잠자리에서 나의 영혼은 아직도 미국 땅에 머물고 있음인지 한동안 낯설은 어느 곳에서 낯설은 이들과 어울려 방황하고 있는 나의 모습이 꿈 속에 펼쳐진다.


  나는 벽과 자그마한 유리로 둘려싸인 자그마한 의자에 앉아 구름 속 한가운데 머물러 있다.  그저 그곳에 머물러 있을 뿐이다.  시간의 흐름도 공간의 변화도 느낄 수 없는 한곳에 머물고 있을 뿐이었다.  대체 공간이 존재하는 것일까?  그들과 우리는 같은 시간대에 살고 있는 것인가?  그들과 우리는 한 지평선 위에 존재하고 있는 것인가? 


  길고 지루한 정지된 시간은 버스터미날 정도로 느껴지는 샌프란시스코 공항에서 입국심사와 비행편을 갈아타기 위해 다시 흘러가기 시작했다.  이곳이 자동차의 나라 미국에서 나 홀로 차 몰아 되돌아 올 곳이다!    드디어 왔다!


  땅 덩어리 만큼은 크고 거대한 나라다.  샌프란시스코에서 갈아 탄 비행기는 사막의 땅을 지나 미국 그 땅덩어리 한 가운데 위치한 '덴버'라는 곳에 도착하곤 우리를 남기고 어느 곳으론가 날아 가버렸다.  미국 한 가운데에 위치한 덴버는 미국 비행기들의 쉼터다.  동서남북에 흩어진 각 도시를 잇기 위해 만들어진 공항은 정녕 거대하다.  아주 길고 긴 평면 에스커레이터를 타고 '달라스'행 비행기로 몸을 싣고선 어느덧 어두워진 곳을 날고 있으니 또다시 시계를 돌리란다.   태평양에서 그리고 덴버로 날아 오면서 바꾸었던 그 시간은 또다시 바뀌었다.   대체 어떤 시간이 진실된 시각인가?  시간은 시간일 뿐!  달라스의 밤은 어둠이고 그 땅의 어둠은 밤일 뿐이다. 


  달라스의 다운타운에 있던 그 호텔 인근의 밤거리는 고요하다 못해 적막하기 조차 하다.  간헐적으로 지나다니는 자동차에 모습 비추는 행인은 무엔가 쫓기고 있는듯 불안하기 조차 하다.


  로비에 있는 시내 지도를 보니 그 호텔은 다운타운에 있었지만, 인근은 정리되지 않은 주차장 그리고 허스름한 빌딩도 함께 보였다.  아침햇살을 받으며 버스를 기다리고 있는 행인들도 보였지만 서울의 거리와는 너무 대조적으로 한산하기 조차 하다.  1층에 마련된 식당의 분위기는 낯설지 않았지만 외국 호텔에서 식사하는 것이 처음이기에 나중에 안 사실이지만 그야말로 무식이 통통 튀게 식단을 마련하고 말았다.  거의 모든 미국 호텔 조식이 마찬가지였는데, 우선 식당에 들어설 때 쿠폰(호텔 체크인시 제공 받기도 함)을 제시하고 자리를 마련해 주면(그렇지 않은 경우도 많음),  부페식처럼 되있는 라인을 들어서서 접시를 들고 주방장이 서 있는 곳엘 다가선다.그곳에는 오움렛(계란말이?)이나 게란 후라이를 만들어 주는 곳인데, 미국인 조식의 기본이다.  그곳에는 감자 요리와 삼겹살 구이도 기본 요리로 있고, 오움렛 만드는 기본재료(버섯 등등)이 있는데, 무식한 나는 접시에 감자요리와 삼겹살을 놓고 그 오움렛 재료를 접시 위에 담아 놓고 다른 곳으로 향하니 거기에 있던 주방장이 의아스런 눈초리로 날 바라본다.  다음날 비로서 안 것 이지만 우선 주방장에게 오움렛이나(무난함) 계란 후라이를 부탁하면 즉석에서 만들어 주는데 그것을 접시에 받은 후 감자 요리와 삼겹살 요리를 직접 집어서 (조금씩만) 접시를 채우고는, 다른 라인에서 빵이나 그밖의 음식과 음료수를 장만해 자리로 가서 식사하고는 '1달러'를(팁) 탁자에 놓고 나오면 된단다.  그리고 오움렛을 만들어 주기 전에 주방장이 어떤 재료를 넣을 것인가 필히 묻게 되는데 그때 EVERYTHING 정도 대답하면 무난할 듯!


  아침 9시 정각에 출발한 두대의 버스는 프리웨이(한국의 외곽순환도로 도심 도속도로 그리고 고속도로 등을 포함)를 들어서서 급류 같은 자동차 물결과 함께 달려간다.  한동안 달려도 주택가는 보이지 않고 평지를 가득 메운 숲들만이 보인다.  또한 프리웨이와 평행선으로 달리는 또다른 도로도 인상 깊었다.   어느 순간 영화에서 본듯한 숲 속에 들어선 주택가들이 눈에 띄고 한동안 달려 가니 한국의 연립주택과 같은 건물들이 넓은 공간에 흩어져 있다.  산과 사람의 모습은 보지 못한채 넓은 평야와 평지 위의 숲을 지나 어느 자그마한 마을에 도착했다.  유통업체(슈퍼마켓 백화점 할인매장 등등)를 답사하기 위해 왔기에 달라스에서의 몇일간의 여정은 버스와 슈퍼체인에서의 쇼핑 밖에 기억 속에 남아 있지 않다.  하지만 후의 시카고와 서부에서의 여정과 견주어 생각해 볼 때 달라스는 시골 지방의 도시라서 그런지 그곳의 사람들은 정녕 순박한 느낌이 든다.  월마트 주차장에 마련된 임시 판매소에 홀로 있던 어느 아가씨의 동양인 그룹을 보던 다소 신기한 그 눈빛과 호텔 엘리베이터에서 그리고 복도에서 '하이 하이'하며 인사를 건네는 노랑머리 파아란 눈의 그 미국인들의 모습은 전통적인 미국영화에서 보던 그런 친절한 미국인들의 느낌을 받아 좋았다.   아마도 통상적인 남자들끼리의 여행에서 늘 그러하듯 우리 일행의 대부분이 달라스의 밤거리를 그냥 지나칠 수 없었다.  하지만 그래도 큰 도시라 생각하던 그 달라스에는 도대체 유흥가란 찾아 보기 힘들고 듬성듬성 있는 낮은 건물이 어둠과 한적한 거리에 싸인채 간혹 보이는 곳이 술집이란다.  한 20여명이 함께 들어간 그곳은 소위 '누드쇼' 하는 곳이었다.  서울 강남에서 어쩌다 본 그런 정도 수준까지만 하는 곳이라(속옷 착용) 다들 실망한 눈빛이 역력하기만 하다.  조명과 내부의 실내장식 등은 한국의 시골 도시 수준 밖에 되지 않았지만 그래도 인상에 남은 것은 옆자리 다 늙은 어느 할아버지 한분이 혼자 와서는 맥주를 마시며 말을 걸어와 손짓발짓하며 나누었던 음흉한 대화였다.  일행은 모두 호텔로 돌아 갔지만, 홀로 거리를 헤매이길 좋아하는 난 한국인 식당에서 얻은 한국인 택시기사에게 콜택시하고는 그 술집 앞에 서 있었다.  다운타운 가까이에 있어서인지 비틀거리는 흑인도 지나기도 하고허리에 권총 찬 경찰도 지나기도 해서인지 왠지 거리가 음산하기만 하여 주머니 속의 돈뭉치를 꽉 잡게 된다.  불과 5분여 밖에 기다리지 않았지만 그 택시가 오기 전까지 미국의 어둠 속의 거리에 서 있는 것이 왜 이리 떨리는지 살 곳이 못되는 것 같다.  반가운 한국인 택시기사는 날 한시간쯤 달라스의 밤거리를 차안에서 구경시켜 주고 나의 안식처 호텔로 데려왔다.

  낮에도 한적한 느낌이 드는 도시였지만, 달라스는 어둠과 함께 모든 거리가 텅비어 버리는 듯 죽음의 도시 같은 느낌 뿐이었다.  몇번의 식사를 했던 한국인 식당 '영동장' 앞에서 밤에 본 '모델 인 하우스'는 몇개의 도시 중에서 유일한 달라스의 명물(?)이라 기사에게 들었지만 어떤 곳인지는 공개할 수 없고...


  떠나기 전날 가본 달라스 중심가의 쇼핑센타는 지금까지 느꼈던 시골풍의 달라스와는 전혀 다른 세계였다.  서민적이고 순박해 보이던 그 달라스에도 귀족풍의 사치스런 계층이 존재하고 빈부의 편차가 느껴지는 정경이었지만, 새삼스레 '부'를 누리며 살 수 있는 것이 삶의 행복을 넓혀 주는 하나의 방편이라는 생각을 갖게 된다.


  우리가 떠남을 아쉬워 함인가?  맑기만 하던 하늘에는 잔뜩 구름이 쌓인채 가랑비가 조금씩 내린다.  '흑인 엉클 톰' 아저씨를 연상케 해 주던 그 친절하고 인간미 넘치던 흑인 버스기사 아저씨와의 마지막으로 들린 곳은 '케네디'대통령이 암살된 그 거리였다.  삼십년이 넘은 건물을 도심의 개발 속에서도 그냥 보존한채 무엇을 남기려 함인지 그 거리는 그때 그 거리였다.   담배 얻어 피우며 케네디 관련 사진을 팔던 헝클어진 머리의 그 미국여인과 관공서인듯한 건물 주변을 맴돌며 어스렁거리는 흑인 백인의 추한 모습은 어둠 속의 미국의 한단면을 또한 보는 것 같았다.   총을 내밀었다던 그 건물 유리창을 배경으로 사진 한장 찍고서는 나에게는 아무 의미없는 그 거리를 떠나 공항으로 향하니 교통사고로 길이 꽉 막혀 버렸다.  비까지 구질구질 온다.  미국 땅을 다시 밟는다 해도 다시는 올 수 없을 달라스는 이제 희미해져가는 기억과 몇장의 사진으로 나의 곁에 잠시 머물다 사라져간다.  엣날 남부의 그 달라스의 대저택과 카우보이 모자 그리고 양산든 귀부인의 모습은 끝내 나에게 들어내지 않고 나의 상념 어느 가운데 있던 그 모습 그대로 남은채 자그마한 비행기와 함께 달라스는 내 곁에서 멀어져간다.


                            (다음은 시카고...)

1995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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