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름 따라 길 따라

시카고

묵향의 이야기 2007. 3. 18. 10:04
 

  몇시간인가 또다시 시간은 정지되고, 나의 존재는 거대한 땅덩어리 저 남쪽에서 저 북쪽 어느 한 곳으로 옮겨졌다.  지난 시절 기차나 고속버스에 몸 싣고 차창 밖으로 나의 시선을 내던진채 무언가에 나의 마음을 담고 한없는 상념 속에 빠질 수 있었던 그 시절은 이제 삶의 현실 속에 파묻혀 단지 어떤 사실을 사실로만 받아 들이는 무미건조한 시간의 흐름을 맞이하고 있을 뿐이다.


  미처 시카고시 지도책을 준비하지 못했기에 나의 발 처음으로 닿은 그 공항이 어디에 있는지 알 수 없었다.  한 열흘 뒤엔 홀로 지도책을 보며 여정을 꾸려 가야 하기에 빨리 지도를 가지고 나의 위치를 파악할 수 있는 능력을 키워야 했다.  일행에서 뒤쳐진채 공항 내 어느 판매점에서 간신히 구한 지도책을 펴고 나의 시카고 일정은 친구와의 만남에 대한 설레임과 함께 시작되었다.


  오클라호마 공항은 미시간 호수를 곁에 두고 남북으로 뻗은 시카고 중간 쯤에 위치했다.  북쪽에 있는 호텔로 버스로 이동하면서 보인 것은 워낙 큰 공항이기에 공항 내를 순환하는 전철과 시내와 연결되는 전철을 볼 수 있었고, 어느덧 주택가를 지나면서는 현대물 TV에서 볼 수 있는 그런 서민 주택을 보게 되었다.  길 가로 늘어선 주택들은 길가쪽으로 담장도 없는 잔디 마당을 다소 갖고 있고 철창없는 현관 그리고 창문을 길가로 향한채 자그마한 이층집의 모습을 갖추었고 그 뒤로는 담장으로 둘려쳐진 잔디밭과 잔디밭 건너 창고로 하나의 집을 구성하고 있었다.  겉으로는 개방적이지만 속으로는 극히 개인주의적인 미국인들의 사고 방식과 너무 일치하는 그런 느낌이 들었다.  아무리 필름에서 보았던 그런 미국의 정경이지만 나의 눈에 실제 펼쳐지는 그 모습들은 새로움이었다.  집앞 농구대에서 공놀이하는 흑인 꼬마 아이들의 모습도 새로움이었다. 


  도중에 들린 한국인 식당에는 내가 좋아하는 김치볶음도 있었다. 미국에서의 점심 저녁 식사는 집에서 먹는 것보다도 더 한국적이고 많은 종류의 우리 음식을 먹고 있으니 대체 어찌 된 것인지? 


  시카고까지 오면서 그리도 만나고 싶었던 고교 친구에게 전화를 걸려고 했지만 동전 집어 넣으면서 거는 전화가 왜 이리 어려운지 간신히 통화를 하니 그의 와이프가 받는다.  호텔은 평지 숲인지 늪인지 알 수 없는 그런 숲에 싸인 곳에 조용히 자리하고 있었다.  도로가에 있는 '사슴조심' 표지가 보이자 마자 저 숲 속에 몇마리의 사슴이 눈에 띈다.  길가에 바로 접한 그 숲의 많은 나무들은 그 큰 키를 이기지 못해서인지 여기저기 쓰러진 채 헝클어져 있다.  땅덩어리가 그리 넓어서 저리 내버려 두고 있나보다.


  자그마한 키에 다소 거칠게 굴던 점봉이가 드디어 나의 방문을 들어섰다.  지난해 돐 잔치를 치렀다던 그의 아들과 그의 와이프의 모습 그리고 그가 살고 있는 집을 보고파 서울서 가져온 쏘주와 골뱅이 통조림을 갖고 밤늦게 들어선 그의 집은 기찻길 옆 오막살이였다.  시카고 시내를 다니는 자그마한 전철역 바로 옆에 붙어 있는 자그마한 이층집 아파트는 너무 허술하기에 오랜동안 외지에서 고생해 얻은 그의 집에 대해 다소 실망감을 갖을 수 밖에없었다.  반가운 사람들이었다.  케빈은 잠들어 있었지만 어렴풋 그의 아버지를 닮았음을 느낄 수 있었고, '나 홀로 집에..'이란 영화를 만들었던 그 꼬마 배우와 그의 스텝들이 새로 만든 영화를 지난해 그의 자그마한 거실 공간을 배경으로  만들었단다.   세계적인 영화의 스튜디어에 앉아 있는 기분이 또한 묘하다!  오랜만에 벗과 한잔 기울임은 세월을 학창시절로 되돌려 놓는다.  단 두번 밖에 보지 못했던 그의 부인의 쌀쌀맞던 표정도 시카고의 하늘 아래선 다정스럽기만 하다.  빨갛게 달아오른 얼굴을 하고 친구 녀석의 차로 호텔로 돌아 오다가 호텔 근방의 어느 맥주집에 들리게 되었다.  많은 젊은이들 - 흑인도 황인종은 한명도 보이지 않고 오직 노랑머리 젊은이들이 젊음을 발산하는 그런 호프집이었다.  슬럿트머신 같은 놀이기구들이 입구 근처에 놓여 있고 군데군데 높이 달려 있는 텔레비젼에서는 NBA 농구 시합이 그들의 젊음을 더욱 고조시키고, 더러는 서서 더러는 의자에 걸쳐 앉아 맥주를 병채 마시는 그들 모습 속에서 우리 둘의 모습은 이방인이었다.  시카고에서의 여정은 아주 작은 부분이지만 미국의 대중 문화를 직접 접하는 보람 속에서 시작되었다.


  둘달 전부터 점봉이에게 백마(?)와 함께 미국 젊은이들의 문화를 느낄 수 있게 준비를 부탁했더니, 달라스에서의 전화통화를 통해 즐거운 시카고의 밤이 되겠금 백마 준비가 되었다는 그의 말에 난 몹시 가슴 설레며 그날을 기다렸다.  낮의 일정은 물류센타 슈퍼마켓 등등을 돌아 보는 것이기에 이미 시카고 공항을 떠날 때 그 기억은 모두 지워지고 말았다.  


  한국인 식당에서 저녁식사를 하는 동안 시카고의 두번째 밤을 위해 친구의 퇴근을 기다렸다.  그의 신문사 동료들이 한잔 하는 한국인 일식집으로 가잔다!  미국까지 와서 한국인 식당에서 한국사람과 쏘주 한잔하고픈 마음은 정녕 없는데...   주방 뒤에 허스름한 방에서 그의 동료 남자 둘과 여직원 하나 그렇게 쏘주를 기우리고 있다.  기다렸던 백마는 사우나 하고 있다나? ....  통성명하고 몇잔 돌리다 보니 백인 친구가 드디어 왔다.  한 40쯤 되보이며 한국에도 다섯번씩이나 방문했었다는 그의 모습은 친구며 형 처럼 느껴지는 다정한 모습이었다.  하지만 나의 가슴에 밀려드는 허무와 실망감은 무엇 때문일까?


  '바비'의 안내로 우리 일행 - 남자 5 여자 1  아휴!  많은 식구들이 딸렸으니 돈깨나 깨지겠다!!1  - 은 시카고 어느 거리로 달렸다.  가로등이 간신히 길을 비추어 주는 어느 길가엔 지나는 차를 향해 요염하게 손짓하며 웃어대는 아가씨들이 보인다.  거리가 어두워서인지 흑인만 보이고 웬지 역겨운 느낌만 들 뿐이다.  바로 그 거리를 지나자 침침한 분위기 속에 찻집 그리고 술집 처럼 보이는 가게들이 눈에 띄이고, 펑크족들이 타고 다닐듯한 오토바이와 자동차들이 길가에 즐비하다.  주차할 곳이 없어 좀떨어진 골목길에 주차시키고 걷자니, 알카포네의 부하들이 총을 들고 나올듯한 그런 무시무시한 분위기와 길가 담벼락에 마구 흘려 써놓은 낙서 그리고 지저분하게 흩어져 있는 거리의 쓰레기들은 마주치는 흑인들의 눈동자를 더욱 두렵게 만든다.  어느 술집에 들어서니 신분증을 제시해 달란다!  주민등록증을 보여줄까?  침침한 조명 속에 몇몇 여자들이 담배 꼰아물고 재잘거리고, 머리 치렁치렁 늘어 뜨린 머슴아들은 저쪽 한 구석에 놓여 있는 당구대에 모여 심각한 표정 짓고 있다.  안내를 위하여 우리 일행과 함께한 '바비'는 무언가를 찾는듯 두리번거리지만 아무리 둘러 보아도 우리 일행과 합석할 아니 멀리 한국에서 온 친구와 파트너가 되어 줄 미국 아가씨는 보이지 않는지 한잔하고 자리를 옮기잔다.  작은 병맥주 한병씩 들이키고 그 술집을 나오는 순간 오리지날 폭주족이 나의 앞을 쏜살같이 지나친다.  어디서 날아 올지도 모를 총알을 생각하며 대체 이런 곳에서 어찌 살아가는 지 이해할 수 없었다. 


  밤의 시간이 일분 일분 흘러감이 너무 아쉽다.  알 수 없는 그 거리를 벗어나 들어선 곳은 다운타운에 있는 번화가였다.  열시가 가까워서인지 다운타운내 다른 거리들은 인적이 끊긴채 고요하기만 하고, 그 거리는 어두운 밤 바다 한가운데 있는 휘황찬란한 자그마한 섬과 같은 느낌이었다.   북적대는 사람들을 비집고 들어선 곳은 자그마한 호프집 같은 술집이었다.   입구의 문은 없는 것인지 있는 것인지 그냥 뻥 뚤린채 거리 사람들과 술집 사람들과 마치 뒤썪여 있는듯 했다.  간이탁자와 간이의자에 걸쳐 앉아 있는 이들 그리고 여기저기 서서 남녀 뒤썪여 한 손에는 맥주병 한손에는 담배 물고 재잘재잘 떠들고 있는 이들, 뚱뚱한 몸매에 험악한 얼굴을 한채 한손으로 오프너 없이 맥주병을 따서 객들에게 건네주는 웨이터(?), 앞치마 두르고 비좁은 틈을 헤집고 다니며 쌩큐 쌩큐하는 웨츄리스 - 그 자그마한 공간은 낮에 접했던 생소한 미국의 모습과는 또다른 새로움에 대한 흥분을 자아내게 한다.   디스크쟈키의  떠벌임 그리고 뭐 그리 할 말 많은지 노랑머리 젊은 이들이 연신 내뱉어대는 오리지날 영어 그리고 본토에서 듣는 팝송이 뒤썪여 노랑머리들 속의 이방인인 우리들은 그저 맥주만 들이킬 뿐이었다.  함께온 '바비'는 무얼 그리 찾는지 연신 둘러 보다가 결국 어여뿐 웨츄리스와 알 수 없는 이야기만 나눈다.  이민 온지 10년이 된 친구녀석은 본인도 그런 미국인 술집에 온 것은 처음이란다.  나머지 일행도 처음이란다.  멀리 이국땅에서 자기 고국의 모든 것을 던져 버리고 이국의 문화와 삶 속에 자신의 생을 엮어 가기 위해 왔던 그 땅에서 10년이 다 되도록 그 문화와 삶 속에 발을 들여 놓을 수 없었음은 그곳 한인사회에서 그들 생활이 충족될 수 있었음인지 아니면 이방인으로서 변방에 머물 수 밖에 없는 이질감 때문인가?   금요일 저녁 모두들 들뜬 분위기 속에서 우린 노랑머리 사람들의 모습을 바라만 본채 맥주만 들이키고 있었다.  한국서 온 친구를 위한다는 핑계로 미국에 사는 그 친구와 남자 동료들은 미국에 사는 미국 아가씨들과 합석하여 시간을 보내고 싶어 열심히 헌팅하려는 '바비'의 눈치만 보고 있다!  디스크쟈키 앞에 있는 아주 자그마한 스테이지는 디스코 음악과 함께 어느덧 몇 명의 노랑머리 춤으로 장식되고, 한쪽 모퉁이 나의 자리 옆에 있던 네명의 노랑머리 아가씨는 자리에 앉아 음악에 맞춰 흔들어댄다.   몇명씩 모여 있는 아가씨들은 무언가를 찾기 위해 열심히 두리번거리고, 놈팽이들끼리만 온 이들은 끼득끼득 어슬렁거린다.  한명의 흑인도 없이 오직 노랑머리만 있는 그곳의 이방인인 우리는 어색하게 스테이지 한 구석을 차지하고 애써 기분 돋구려 한다.  으례 여행을 떠나면 괜한 용기가 생긴다.  더 이상 '바비'와 친구에게 기대할 것이 없다고 생각한 난 드디어 용기를 낸다.


  "유 아러 굳 댄써!"  나의 자리 옆에 있던 그 촌스런 여대생(?) 중 그래도 상냥하고 예뻐 보이는 아가씨에게 던진 첫마디였다.  시끄러운 음악과 '유 아러 걸, 아이앰 어 보이!" 수준의 영어를 감추기 위해 손짓 발짓하며 드디어 합석하는데 성공!  함께 맥주하며 어깨 손얹고 사진 찍고 비좁은 공간에서 몸 흔들고...  아!  이만하면 나도 이젠 국제적인 플레이보이가 되었나?  미국에 오래 전에 이민 온 내 친구의 동료들은 어이 없는 듯 부러운 듯 아직도 이방인 노릇만 하고 있다.  무료하게 앉아 있는 내 친구 여자 동료와 그리고 어딘론가 가자고 자꾸 보채는 동료 때문에 난 일리노이주 어느 시골에선가 주말을 즐기러 온 그녀들과 작별을 위해 명함을 건네야했다.  미국 아가씨에게 한국말로 쓰여진 명함을 건네 주었다?  사진 보내 주고자 주소를 물으니 'NO'!  철저히 순간 순간의 시간을 최대한 즐기는 그네들의 또다른 단면을 볼 수 있었다. 


  길거리의 여자들이 서 있던 그 침침한 길을 되돌아 지나 어느 길로 들어서니 제법 혼란스런 네온싸인과 북적거리는 사람들이 보이는 곳에 일행 모두 내리게 되었다.  머뭇거리는 여직원을 달래며 10달러의 입장료를 내고 들어선 곳은 태어나 난생 처음 들어와 보는 "오리지널 누드쇼"하는 곳이었다.   한국 영동 거리풍의 달라스 쇼와는 달리 너무도 원초적인 풍경이었다.  종종 외국 여행하는 이들로부터 듣기는 하였지만 막상 나의 눈 앞에서 펼쳐지는 그 모습에 난 색다른 세계와 와 있음을 실감하게 되었지만, 이제 세월의 흐름이 나에게도 지났음인지 내 친구의 젊은 그 동료의 흥분하는 모습과는 달리 그저 담담하기만 했다.(진짜!)  무대에서 춤을 끝내고 테이블 마다 돌아 다니는 늘씬한 아가씨들이 우리 곁에도 다가선다.  10달러짜리 지폐 한장을 건네주면 바로 눈 앞에서 음악에 맞추어 하나씩 옷을 벗으며 온갖 관능적인 춤을 아니 원초적인 그런 몸짓을 보여 준다.  절대 "NO TOUCH"!   세월의 흐름이 때때로 좋을 수도 있다는 것을 새삼스레 느끼게 된다.  그저 눈 앞에 펼쳐지는 그런 세상사를 그저 현실로 담담히 받아 들일 수 있는 마음의 여유가 생김에 담배 연기로 그 모습들을 가리워 버린다.  잔뜩 화가 난 듯 아니면 충격에 얼이 빠진 듯한 얼굴로 한쪽 구석에 자리하고 있는 친구의 후배 여자동료의 얼굴은 잔뜩 굳어만 있다.  다음날 친구와 그 동료들이 그녀를 어찌 대하려는지...   대학 2학년 때인가?  동아리 모임 뒤의 뒤풀이를 끝내고 집 근처에 사는 여자 후배(같은 학년이었다)를 집에 바라다 주면서 싫다는 후배에게 세상의 모든 것을 또한 냉엄히 바라 보기도 해야 한다며 난 그녀를 소위 "미아리 텍사스" 골목으로 이끌었었다.  난 십 미터쯤 앞서서 거리에 나와 지나는 남자들의 옷자락을 잡고 이끌어 대는 거리의 여인들을 뿌리치며 천천히 발걸음을 옮기고, 후배는 그 모습과 커다란 유리창 뒤에 마네킹처럼 짧은 치마를 입고 담배를 뿜어대는 여인네들의 모습을 바라보면 뒤쫓아 오고...   대부분의 사람들의 삶의 모습이었다.  한국의 뒷거리 그리고 미국의 뒷거리에도 사실로써 존재하는 그런 사실이었을 뿐이었다.  잡지책이나 귓동냥으로 듣던 그런 일들이 바로 옆에서 펼쳐지고 있는 것이다.  하지만 왠일인지 나에게는 그런 원색적인 모습들이 그저 영상 속의 화면의 장면 장면으로만 지나칠 뿐이었다.  차라리 한국에서 볼 수 없었던 그런 문화의 충격은 다운타운에서 시간과 여유를 즐기는 젊은이들의 활기차고 밝은 모습 속에서 더 느낄 수 있었다.  나의 친구가 아니었다면 그리고 그 백마 아저씨의 도움이 없었다면 결코 접해 보지 못했을 젊은이들의 대중문화는 25일 동안의 미국여행에서 가장 인상 남는 깨끗한 미국의 한 모습이었다. 


  햇살은 다시 비추고 두대의 버스에 나눠 탄 50명의 일행은 또다시 되풀이되는 일정에 피곤한 모습들이었다.  하지만 여기저기서 들려오는 지난 밤의 환락가에서의 모험 이야기들은 호텔방에서 따분하게 야한 TV물이나 보아야했던 사람들의 호기심을 잔뜩 부풀어 놓고 그날 밤에 안내를 선구자들에게 부탁하게 한다.  그날 밤 이십여명이 넘는 사람들이 그 환락의 쇼를 찾았다니 아마도 이틀동안 족히 40명 가까운 사람들이 시카고의 그 밤거리를 헤매었으리라...


  토요일의 밤거리는 한산했다.  저녁 식사 때 식당으로 찾아 온 친구와 다시 다운타운으로 향했다.  어둠이 깔리는 그 거리에서 마치 마네킹을 길거리에 세워 놓은 듯한 한 예술가의 모습을 보았다.  일달러 짜리 지폐를 상자에 넣으면 잠시동안 몇가지 움직이는 동작을 보이고는 또다시 한동안 눈 한번 깜짝하지 않는채 그저 그 자리에 서 있는 한 고독한 길거리의 자칭 예술가는 삶의 행복에 대해 생각케 한다.  그는 모아지는 돈을 위해서가 아니라 자신의 만족을 위해 오가는 사람들 사이에 서 있는 것일 뿐일게다.  그의 뒤의 밤거리를 타박타박 지나는 마차는 세계적인 도시로서의 시카고의 한 모습을 또한 보여 주고 있었다.  낮에 잠시 들렸던 시카고 다운타운의 건물들은 과히 예술작품이었다.


  지루한 연수 일정에 불만 터뜨리는 이들을 달래기 위해 맑은 하늘 아래서 시내 관광을 했던 그 토요일 오후는 건축의 도시 시카고의 찬연한 이름을 새삼 되새길 수 있었다.  백년이 넘은 고층 건물은 하나 하나가 예술 작픔이었고 어느 광장에 있는 피카소의 거대한 조각 작품은 옛 건물과 현대 건물들 사이에서 시간을 이어주고 있었고 ....


  아뭏든 시카고 도심의 건물은 정녕 아름답고 자랑할만했다.  도심 거리의 튜립 축제도 인상깊고.   시카고를 또한 아름답게 만드는 미시간 호수 아니 바다라 할만한 그 호수가를 따라 끝없이 길게 난 공원내 도로를 따라 롤러스케이트 사람들 그리고 싸이클링하는 사람들 조깅하는 이들.....  아름다운 주말 오후의 모습이었다.  ....   요트들이 정박한 자그마한 부두!  호수가에 접한 천문대와 그곳에서 바라본 시카고 도심 건물들의 화려한 모습! 시카코강을 타고 도심을 관광하는 배를 타지 못한 아쉬움을 남긴채 토요일은 저물어 가고 점봉이와의 밤의 시간은 별거 아닐거라고 생각했던 야경에 찬탄하면서 마무리짓게 되었다.


  일요일 개막하게된 식품전시회에 참석하고 오후에는 일행에서 빠져나와 친구와 그의 아내 그리고 케빈과 함께 시간을 보냈다.  미시간 호수를 곁에 두고 난 길을 따라 북쪽 어느 공원을 향하다 동네 자그마한 공원에서 벼룩시장이 열리는 것을 보게 되었다.  자신들이 만든 작품을 펼치고 한가로이 책을 보면서 때론 동네 사람들과 이야기하는 모습에서 또한 미국의 한 문화를 느낄 수 있었다.  소박하면서도 아름답게 꾸며진 집들과 영화 속에서 보던 그런 대저택들이 미시간 호수와 어우려져, 나로하여금 "끝내준다!"는 탄식을 연발하게 만든다.


  공원에서 친구의 부인을 위해 이리저리 셔터 열심히 눌러댔고, 저녁에는 친구의 부모님과 저녁식사를 신문사 일로 바뻐 참석하지 못한 친구를 대신해 함께 했고, 고요해져만 가는 시카고에서의 마지막 밤이 아쉬워 늦게 친구와 또다시 술자리를 갖게 되었다.  한인거리에 있는 룸싸롱!  저기 시골 구석에나 있음직한 그런 우중충하고 볼품없는 곳이었지만 가장 붐비는 곳이란다.  무슨 사연들이 그리 많기에 멀리 바다 건너 그 어두운 곳에서 젊음의 시간을보내야 하는 어느 아가씨와의 언쟁으로 나의 시카고에서의 추억은 빛 바래 버리고 말았다.  하지만 바쁜 삶 속에서도 4일의 밤 시간을 나에게 전부 할애하여 주었던 그 친구의 진한 우정과 아마도 다시는 접해 볼 수 없을 미국 젊은이들 그 삶의 한 일부로 잠시의 시간을 보냈던 그 추억은 지금 길고 긴 이 글을 남기게 하였다.


1995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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