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A 국제공항! 드디어 라성에 발을 내딛게 되었다. 시카고로부터 날아오는 시간과 지구를 거꾸로 날아 와야 하는 시간 때문에 한나절을 지나쳐 버렸다. 많은 일행이 있었기에 그저 뒤만 쫓아 공항을 벗어나 두대의 버스에 나눠타고 어디론가 향한다. 처음으로 대하는 LA의 거리는 커다란 야자수의 모습이 인상 깊었지만, 불안과 기대 속에 이 날을 기다렸기에 난 지도를 펼치고 버스가 달리는 길을 찾느랴 여념이 없다. 순식간에 공항길을 벗어나 시원하게 뚫린 프리웨이로 들어서 달려간다. 몇번 도로인가? 몇일 뒤에는 이 공항에서 차를 빌어 나의 여정을 꾸려 가야 하기에 미국의 도시마다 다소간 차이가 있는 신호체계 차선 운전매너 그리고 길의 특성을 익히느라 온 신경을 쏟는다.
프리웨이를 벗어나 웨스턴AVE로 들어서니 지저분하고 우중충한 분위기의 건물과 거리가 나타나고 올림픽BLVD와 만나는 사거리쯤에 오니 부근이 한인촌이란다. 지도를 펼치니 LA 도심 바로 서편에 위치해 있다. LA 한인촌의 압구정동이라 불리는 어느 거리 한 음식점을 들어서려니 시커먼 흑인들이 어스렁거리며 할 일없이 지나는 이들의 모습을 바라보는 것이 보이고 주변에는 동대문시장이란 간판도 보인다. 한인 음식점을 들어서자 열흘 동안의 달라스 시카고 여정을 통해 알게 된 한인신문을 몇부 움켜 쥐고 계산대에서 전화카드를 몇장 구입한다. 동전으로 전화하는 것은 지역마다 다소의 방식이 다르고 한국까지의 통화를 위해서는 많은 동전이 필요하기 때문에 미국 여행에서는 그곳에서 판매하는 전화카드가 아주 유용하게 쓰였다. 한국의 전화카드와는 달리 하나의 전화카드 고유번호가 적힌 카드를 구입하고 그곳 카드회사의 수신자부담 전화번호를 돌려 고유번호를 입력하여 사용하는 것인데, 미국 국내 전화나 한국과의 통화시에 아주 편하고 쉽게 사용할 수 있었다. 또한 한인촌 어디에나 무료배부 또는 판매되고 있는 현지 한국신문은 한국인 택시 - 일종의 콜택시이지만 아마도 자가용 영업하는 것임 - 안내 전화번호가 기재되어 있어 미국 여행시 언어의 불편을 해소하면서 식당 등 여러 여행정보를 얻을 수 있어 필히 해당지역의 한국인 택시 전화번호를 먼저 습득하는 것이 그 지역의 여정에 많은 도움이될 것이다.
호텔로 향하는 길가 한인촌과 한인촌을 둘러싼 흑인 그리고 멕시칸계 사람들이 사는 동네의 모습은 불쌍하기 조차하다. 시카고 서민들 사는 동네에서는 볼 수 없었던 쇠창살 달린 창문의 모습이 즐비했고, 거리는 온통 지저분하게만 느껴졌고, 한국에서 배워 온 것인지 멕시칸계들의 거리 행상도 미국에서는 이채롭기만 하다. 흑인 폭동 때의 그 분위기를 생각케 된다.
LA에서의 첫날밤은 하늘의 별이 보이는 호텔 스카이라운지에서 보름 동안의 룸 매이트와 함께 맥주를 마시며, 한편 메스꺼우면서도 한편 배아픈 장면을 목격해야 했다. 한쪽 구석에 아름답고 우아하게 앉아 이야기 나누던 노랑머리 늘씬한 아가씨 둘에게 자꾸 시선이 가던 우리에게 그들과 우리 두 좌석 가운데에 앉아 있던 어느 일본 중년 남자와 미국인의 존재는 눈엣 가시였다. 그저 아쉬운 맘을 맥주로 채우고 있으니 그 미국인은 그녀들에게 몇마디 걸며 일본인 중년 남자와 끼득끼득 좋아하더니 어느덧 두 좌석은 하나로 되고는, 얼마 후 회심의 미소를 짓으며 거들먹거리는 일본인과 그 일행은 어디론가 사라져 버린다. 씁씁한 마음에 우리 둘은 LA의 밤거리로 향하고 싶었으나 숱하게 들었던 미국 밤거리의 공포 때문에 그저 방에 콕 박혀 있어야 했다.
LA에서 북쪽으로 3시간 넘는 거리에 있는 샘스 클럽의 물류 창고를 시찰하기 위해 달리던 버스에서 바라본 미 서부의 모습은 달라스가 있는 남부지방의 모습과는 분명 다른 것이었다. 그 남부지방도 산이 없는 광대한 평야지대였지만, 저지대 평야로 울창한 수목들로 땅이 덮여 있었지만, 그곳에는 끝이 없이 펼쳐지는 오렌지 나무들 이외에는 좀처럼 무성한 나무나 풀을 찾아 볼 수 없었다. 사막지대였다! 멀리 후버댐에서 물을 끌어다 경작하고 있다니 한편 놀랍기도 하고 한편 불쌍한 나라라는 생각도 든다. 또한 어느 지방도로에서는 디딜방아 처럼 생긴 커다란 석유 뽑는 쇠뭉치들이 즐비하게 평야에 펼쳐져서 이방인의 눈길을 끈다.
LA에서의 공식 일정은 느슨했다. 긴 여정에 지쳐 있기도 했고 계속 유사한 유통업체를 견학하여 무감각해져 버린 탓에 툭하면 한인이 운영하는 쇼핑센타에 들리곤 한다. 다른 곳에서 사는 것 보다 훨씬 싸다는 안내원의 말에 많은 이들이 이것저것 사재기 했고 나 역시 자동차 청소기를 구입했지만, 후에 어느 아우렛에서 동일 제품의 가격을 비교해 보니 그곳 한인 쇼핑센타에서 판매했던 가격이 훨씬 비쌌다! 워셔가에 있는 어느 쇼핑센타에 또다시 우리 일행은 내려서 시간을 채우기 위한 쇼핑에 나선다. 난 그 문은 들어서지 조차 않은채 LA에서 유일하게 고층건물들이 들어선 워셔가의 모습을 바라본다. 지진대에 속해 있는 LA 중에서 유일 하게 지층구조가 안정되어 있어 고층건물을 지을 수 있는 곳이란다. 버스 정류장 앞에 서 있으니, UCLA를 거쳐 산타모니카로 향하는 버스가 다가온다. 아직도 해가 높이 떠있는 네시 밖에 되지 않아 나는 그 버스에 오르고 싶은 충동을 느낀다. 익히 들었던 그 대학 캠퍼스를 거닐고, 널리 시원하게 펼쳐져 있는 산타모니카의 해변에서 저물어 가는 낙조를 바라 보고 싶었던 나의 여행 일정을 저 버스에만 오르면 이룰 수 있는 것이었다. 몇일 뒤 렌트카로 돌아 볼 수 있겠지만, 시간을 절약하기 위해서는 쓸데없는 쇼핑 대신 저 버스엘 올라야 한다! 하지만... 버스 요금은 어떻게 내야하나? 한국에서 여행안내 책를 열심히 읽었지만 뭐 티켓을 사고 어쩌구 저쩌구 했던 말들이 하나도 기억나질 않는다. 아니 이해되지도 않았다. 짧은 언어 실력으로 운전하는 기사하고 실랑이 할 수도 없고... 버스 뒤를 보니 시커먼 흑인들의 얼굴도 보이고 이상한 치장을 한 젊은이들의 모습도 보인다. 여기저기 분산시켜 쑤셔 집어 놓았던 달러와 여행자 수표가 아직도 칠천 달러는 남아 있는데... 괜시리 나의 손은 주머니를 움켜쥐게 된다! 한번 버스도 타고 싶었는데... 지갑 속에서 신문조각을 꺼내 전화를 건다. 산타모니카까지 25달러란다. 누구 없소? 동행할 사람을 찾고 있으니, 꽃게 요리를 먹으러 산타모니카로 가려 하지만 어찌 가야할지 몰라 허둥대고 있는 세명의 일행을 만났다. 이런 바보들! 벌써 열흘 넘게 미국생활 했는데 그것도 모르다니... 괜히 우쭐대며 난 한국인 택시회사에 전화해 콜하니 십여분만에 우리 일행을 실으러 캐디락 한대가 달려 온다. UCLA를 들려 미국 대학생들의 문화를 접해 보자는 나의 제안은 달리는 택시에서 날려 보내야 했고, 미국에서의 운전에 대해 물으니 절대 불가란다! 한국에서 택시기사 하다가 미국에와 운전을 처음하게 되었을 때 죽었다 살아 났단다! Impossible! 혹 운전하다 문제 생기면 몇시간 거리라도 달려 갈테니 전화번호 꼭 지니고 있으란다! 아~ 드라이브의 꿈도 바람에 날려 버려야 하나?
택시기사가 내려 준 곳은 해변에 바로 못미친 거리 한 구석의 어느 한국인 미국 간판의 횟집이었다. 그곳이 아주 잘하는 곳이란다! 하지만 그곳은 바다도 바라 볼 수 없었고, 선창가에 한국인 횟집이 있다는 신촌 백화점의 어느 이사의 말에 따라 우린 바닷가로 발걸음을 내딛었다! 와~ 드디어 태평양 한 가장자리에 왔다! 남북으로 시원하게 뚫린 길과 하늘을 찌를듯한 야자수 그리고 널리 펼쳐져 있는 모래사장은 지칠대로 지친 여독을 한껏 풀어 준다. 절벽 아래로 난 또다른 남북간 도로를 구름다리를 통해 건너가니 산타모니카 피어다! 길게 바다 한 가운데로 뻗어 있는 pear는 아마도 그 예전에 커다란 배들을 접안시키기 위해 나무로 만들어 놓은 것인게 보다. 미국 어느 해변에서나 이런 피어를 볼 수 있었다. 큰 모래사장 위를 지나 바다까지 뻗어 있는 피어에는 자동차도 들어 설 수 있었고 여러 음식점들이 즐비하게 늘어 서 있다. 여기에 우리 일행을 내려 놓지 않고 엉뚱한 음식점 앞에 차를 정지 시켰던 그 기사의 속셈을 생각하니 괘씸하기 조차 하다. 모래사장에 만들어 놓은 롤라스케이트 장에는 바닷바람을 가르며 달리는 사람들이 보였고 조깅하는 이 싸이클링 하는 이의 모습도 볼 수 있었지만, 기대했던 비키니 수영복 입은 아가씨들이 일광욕하는 모습은 아쉽게도 볼 수 없었다. 피어 끝까지 걸어가니 이층집 햄버거 집이 있다. 왜 하필 햄버거 집일까? 횟집이면 쐬주 한잔에 초고추장 맛을 볼 수 있을텐데. 낚시를 즐기는 사람들의 모습과 이층 난간에 기대어 저기 멀리 태평양 한 가운데서 불어 오는 바닷바람에 머리 날리며 꼭 껴안고 달콤한 키스에 여념이 없는 젊은 남녀의 모습을 배경으로 사진도 몇장 찍고... 태평양 꽃게 요리를 파는 음식점을 찾다 보니 '부산집'이란 간판이 눈에 띈다! 오랜 전에 자리했다는 산타모니카 피어 위의 '부산집'! 들어 서니 라틴계 종업원들만 있어 엉거주춤 자리에 앉아 있으니, 어느 꼬마 녀석이 들어 온다! 우리 카메라로 사진 한장 눌러 준단다! 다들 김치~ 아니 (미국이니) 치즈~하고 나니 그 꼬마 녀석은 손을 내밀며 돈을 달란다! 눈 뜨고 코 베일 세상이다. 날은 저물어 어둠이 밀려 와 세상 모습 감추듯 멀리 태평양 건너 산타모니카 피어 위의 부산횟집에서 기울이는 진로 쏘주 한 잔 한 잔에 나의 정신은 희미해져간다.
어? 여기가 어딘가? 지끈지끈거리는 머리를 애써 들어 올려 둘러 보니 호텔방이다! 주머니 속에 넣어 두었던 돈 봉투 몇개를 찾아 보니 다행히 그대로다. 룸메이트의 모습은 보이질 않는다. 해는 중천에 떠 있고... 아마도 쏘주를 나의 가슴에 붓다가 그만 나를 쏘주 잔에 담아 버렸던 모양이다. 난생 처음 저지른 일이다. 그것도 미국 땅에서... 서둘러 버스에 올라 일행을 찾으니, 지난 밤 '홀딱쇼'로 가 보자는 일행의 주장을 눌러 버리고 '머드쇼'하는 곳으로 택시를 안내하더니 차에서 내리지도 못한채 잠에 떨어져 버렸었다는 것이다. 억울하다! 가락동 책방에 꽂혀 있던 미국관광 안내 책에 재미있게 소개되어 있었고, 시카고에있던 친구 동료가 꼭 들려 보라 했던 '머드쇼'를 기껏 남에게 안내만하고 난 보질 못했으니... ( 진흙 칠을 한 수영복 차림의 아가씨들이 무대에서 레스링을 하여 승자가 결정되면 객석의 손님들 중에서 어느 한 사람이 경매 방식으로 그 승자와 진흙칠을 한채 무대에서 레스링을 하게 되는데 보는 이에 따라 상당히 흥미롭고 이색적인 쇼란다!)
LA에서의 이틀 일정을 남긴 50명의 이방인들은 그저 시간의 흐름만을 기다리고 있는듯 하다. 낮의 공식일정은 그저 그렇게 보내고, 버스에 자신의 하루의 생활을 맡겨 버리고 있으려니 그저 평범한 길을 지나 평범한 어느 AVE로 들어서니 버스에서 내리란다. 별의 모양이 새겨진 보도블럭이 몇십 미터 깔려져 있는 것이 많이 본 모습이다. 바로 그 길 옆에 백여평되는 아주 자그마한 광장이 나타나고, 치마가 바람에 들리어 속옷이 살짝 보이는 마릴린몬로의 수줍어 하는 밀랍인형도 보인다. 아주 자그마한 공간과 별 볼 일 없는 보도블럭에 새겨진 손과 발 자욱이 멀리 어느 세계에 살고 있는 이의 호기심을 불러 일으켰던 스퀘어광장이었다. 난 소피아로렌의 자욱 위에서 사진을 한장 새기고 옆을 둘러 보니 합성사진 찍은 곳에 많은 이들이 모여 있다. 다른 이들의 눈치를 보느라 그저 바라만 보고 있던 이들은 결연히(?) 나서서 인디아나존스의 모습이 되어 나온 나의 사진을 보고는 서로들 나서서 그 가게를 들어선다. 시간이 있었다면 오랜 역사를 지녔다는 그광장의 중국식 극장을 젊은이들과 휩싸여 둘러 보았겠지만 아쉬움에 뒤로 했다. 몇십분 거리에 있는 유명 배우와 갑부들이 산다는 비러리힐스 그리고 호화스런 쇼핑 가게와 유명 배우들의 얼굴을 볼 수 있다는 선셋??? 거리가 있었지만, 혼자만의 일정이 아니었기에 몇일 후 렌트카로 다시 올 것을 기약하며 버스에 올라야 했다.
어두워진 호텔 인근은 적막했다. 도심에서 떨어진 곳에 위치해 있던 호텔 지하 나이트 - 3개의 당구대가 있고 조그만 스테이지와 악단이 있는 곳으로 나이트 클럽이라 하기에는 적절치 않지만 - 에서는 아마도 여고생들의 파티가 벌어지는지 많은 노랑머리 아가씨들의 모습이 보인다. 젊은 일행 몇이서 들어가려 했지만 선생님인지 알 수 없는 젊잖은 남자가 입구에서 출입을 통제하고 있다. 발걸음을 돌린 경제신문 기자인 나의 룸메이트와 일행 몇은 또다시 밤거리로의 진출을 논한다. 시카고 그 호프집에서 느꼈던 건전한(?) 밤의 미국문화를 다시 접해 보고 싶었던 난 선셋거리에서의 방황을 주장했지만, 일행은 또다시 쇼를 구경하러 가길 주장한다. 차라리 머드쇼 장으로 가길 바랬지만 다수의 의견은 또다시 홀딱쇼하는 곳으로 모아진다. 한인촌과는 얼마 떨어져 있지 않은 듯한 어느 곳에 우리를 내려준 택시기사와 한시간 뒤에 다시 만나기로 하고 들어선 곳은 시카고의 홀딱쇼 하던 곳과는 비교가 안될 정도로 작고 너저분한 느낌이었다. 하지만 조그마하기에 요염하게 춤을 추며 온갖 모습을 보여주는 진짜 예쁜 미녀들의 전라의 모습을 가까이서 볼 수 있어 좋았지만 한 오분 앉아 있으니 그렇고 그런 것이 흥미를 잃고 앉아 있는 것 자체가 고역이 되어 버린다. 무대 건너편에는 아주 젊은 동양인 남자들이 몇군데서 그 모습을 드러낸다. 정신을 빼고 바라 보다가 지갑 속에서 일달러짜리 지폐 뭉치를 꺼내더니 바로 앞의 무대에 마구 뿌려댄다. 저쪽 구석에 있던 긴머리 노랑머리 아가씨는 그 친구 가까이로 다가가 마치 요가를 하듯 길고 긴 다리를 하늘로 쭉쭉 뻗기도 하며 당장이라도 그에게 안기기라도 하듯 얼굴 가까이 그녀의 머리결을 휘날리기도 하며 마냥 행복해 한다. 무대 위에 널려진 옷가지와 일달러 지폐들을 움켜진채 가벼운 발걸음으로 사라지는 모습을 본 그 일행들은 한바탕 떠들어댄다. 소위 유학생들이다! 나였다면 어찌했을까... 예쁘긴 예쁘다! 그녀들 중에는 학교 선생님도 있고 회사원도 있다는데 강남의 그 많은 술집에서 춤추는 아가씨들과 술 시중하는 아가씨들은 무엇을 하던 이들일까? 한 무리의 동양인이 또다시 우리 곁에 자리를 한다. 왁자지껄이는 모습이 한국인 관광객이다. 미국이고 동남아이건 간에 남자들에게는 으례 이런 곳이 관광코스가 되어 버린 것인게다. 아니 연수 코스가 되어 버린 것이겠지! 밤 문화에 대한 한국과 미국과의 비교 연구 과제로...
호텔 지하 나이트에서는 파티가 다 끝나서인지 그 앞을 기웃거리는 우리 일행의 입장을 허락한다. 시카고 미시간 호수 항구에 있던 어느 커다란 배에서 아마도 대학졸업파티를 마치고 검은 파티복을 입은 남자와 하얀 파티복을 입은 아가씨들이 끼리끼리 나오며 부두가에 즐비하게 늘어선 버스 만큼 큰 링컨컨티넨탈 승용차에 올라 타고 어디론가 향하던 모습이 떠오른다. 종로에 있는 ELS 학원의 미국 여선생님이 집으로 초대해 처음 접해 보았던 아주 조촐한 파티에서 어색하게만 있어야 헸던 우리 학생들의 모습도 떠오른다. 삶을 즐기려 노력하는 미국인들 생활의 한 모습이었다. 아마도 건전한 여학생들은 집으로 돌아가고 이제 끼있는 여학생 얼마가 남아 그들의 파트너와 찐한 춤을 추며 밤의 밀어를 즐기고 있는듯 하다. 새로운 것을 보고 새로움을 느낄 수 있는 것은 정녕 좋은 것이다!
이제 금요일이다. 내일 아침 일찍 공항으로 향하는 일정만 남긴 일행은 지친 모습으로 버스에 오른다. 유일하게 하루 일정이 관광으로 채워진 날이었다. 목적지는 유니버셜 스튜디오! 지도를 펼치고 길을 익히는 것도 이젠 싫증이 나 버렸다. 우르르 내려 들어서니 스튜디오가 아니라 하나의 관광지였다. 아랍사람 중국사람 노랑머리사람 그리고 손에 손잡고 멀리 한국 어느 시골에서 온 할아버지 할머니의 모습도 보인다. 아이들에게는 매우 흥미 있었을 몇군데에서 시간을 보내고 무지개열차에 오르니 스피커에서 마구 지껄여대는 미국 본토말이 나의 귀를 시끄럽게 한다. 거대한 촬영셑장을 버스에 탄채 둘러보는 코스다. 아마도 유니버셜 스튜디어 관광에서 대표적인 코스일게다. 앞은 멀쩡한 1800년대 건물이고 뒤는 나무와 합판으로 만들어진 건물들을 돌고 돌다 보면, 물이 갈라지는 곳으로 열차가 들어가 호수 속으로 달려가고, 커다란 스튜디어 문이 열리며 어두침침한 곳으로 들어서니 도시 건물은 화염에 휩싸인채 불현듯 커다란 킹콩이 모습을 드러낸다. 자지러지개 울어대는 꼬마녀석의 모습도 비디오에 담으며 또다른 스튜디오를 들어서니 땅이 갈라지고 건물들은 무너지며 화염에 휩싸이고 멀리 있는 둑이 무너지며 집채 같은 물이 밀려오고, 타고 있는 열차는 마구 흔들거리며 바로 뒤집혀질 것만 같다. 아~ LA에 지진이 발생한 모양이다!
환상의 스튜디오라고 그리도 들었으니 여유있는 여정 속에서는 들려 볼 곳은 되지만 굳이 시간을 쪼개어 돌아 볼 만큼 환상적인 곳은 되지 못했다. 차라리 길가 어느 곳에서 영화 속에서 보았던 검은 양복과 썬그라스를 낀 홀쭉이와 뚱보의 열창과 흑인 뚱보 여인의 열창에 환호하며 즐기는 시민들의 모습이 더 이색적이다. 그리고 가슴에는 갑돌이 갑순이 명찰을 단 채 손에 손 잡고 앞만 보며 걸어 가는 우리 할머니 할아버지의 모습도 색다른 감흥을 느끼게 한다.
LA의 마지막 밤은 아쉬움이 남지 않았다. 아침 일찍 공항으로 떠나는 이들을 배웅하고 두대의 버스의 뒷 모습을 바라보니, 이제 혼자다! 한숨 크게 내쉬고 하늘을 한번 바라본다. 대학 때 홀로 저 멀리 울릉도 항에 내려 하늘 아래 있던 오래된 향나무를 바라보던 생각이 난다. 앞으로의 일정은 아무 것도 정해지지 않았다. 그저 발 길 가는 곳이 나 가는 곳이다! 어찌하나?
95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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