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리즘

응급실 그리고 주말이야기

묵향의 이야기 2007. 3. 20. 19:48
 

  월말 은행계수 맞추어 달라는 몇 사람의 거절할 수 없는 청 때문에 월말의 이틀을 뛰어 다녀야 했고, 오월의 잊혀져 가는 아카시아 향 되새기려 오월의 마지막 밤에 남한산성이라도 오르려 했건만, 야간 2교시 수업도 들어 가지 못한채 삼성병원 응급실로 달려 가야 했던 그 밤부터 나의 육신은 지칠데로 지쳐 버린 시간이 되었다.


  응급실 한쪽 구석 의자에 앉아 망연히 시간의 흐름을 지키려니 '제한구역' 표지 달린 문이 열리곤 기다란 나무상자가 얹혀진 간이 이동 침대를 마스크 낀 젊은 남자가 끌고 온다.  영원히 영혼을 가두어 버리는 관짝은 아닐지언정 중환자실로 가는 것을 보니 아마도...  하지만 통곡 소리가 나질 않는다.   여기저기서 들려오는 숨가쁜 소리에 또다른 상념을 안고 있으니, 나 있는 곳으로 또다시 마스크 낀 남자 무심히 이동 침대 끌고 온다.  눈 앞 90센티 앞을 지나치는 침대 뒤로 깔끔하고 중후하게 그러나 편한 양복 차림의 노년 신사가 홀로 뒤쫒아 온다.   그리고 지나쳐서는 '제한구역' 안으로 사라져 버린다.  그렇게 어느 주검은 내 앞을 지나쳐 버렸다.  통곡 소리도 들리지 않고 흘러내리는 눈물도 보지 못한 채 영혼 사라진 주검과 그 뒤를 쫒아 오는 오직 한 사람의 모습 바라보면서, 너무도 편하게 죽음을 대면하고 있는 그 죽은 자와 산 자의 다정했던 삶의 이야기 그려 본다.


  남자 등에 엎혀온 6살쯤 소녀의 헐떡이는 숨소리는 응급실 의사들을 불러 모은다.  한참 시간 흐른 뒤에 응급실에서는 모습 보기 힘든 고참 의사도 양복 입은 채 달려 온다.  불과 몇일 전 힘없이 쓰러진 그 소녀 병명 알 수 없어 다시 이 병원으로 옮겨 진게다.  바로 중환자실로 옮겨졌다.  아기의 아빠는 모습 보이지 않고 직장 동료인가 아기의 엄마 친구인듯 한 여인들의 모습만 보인다.  20만원씩 추렴하쟎다.  깊은 시간 달려온 우정도 가련하건만, 넉넉치 못해 보이는 주머니에서 동료의 딸 병원비 보태쟎다.  ...   재작년 머리 아프단지 열흘만에 재 되어 뿌려진 친구 아들 생각난다.  사고로 다친 것도 아닐진데, 어찌된 운명인가?  인간의 무기력에 화장터에서 뼈 꺼내져 하얀 가루되어 가는 모습, 그리고 외진 강가에서 할아버지 손에 뿌려지는 그 영혼!  훗날 그곳 찾고 싶어할 친구 녀석 안내하기 위해 애써 기억해 두었지만, 끝내 함께 그곳 가보자는 말은 친구 녀석에서 들려 오지 않는다.  눈물 메말랐기 때문은 아닐 것인데...  차라리 그렇게라도 잊어야 하는 것인가 보다!


  '아빠 앞으로는 말 잘 들을께요!'  '여보 죽어서는 안돼!' 술취해 비틀거리며 고함고함 내지르는 젊은 남자 등에 엎혀 응급실에 들어온 젊은 여자의 얼굴은 엉망이 되어 버렸다.   뒤이어 또 엎여온 작은 소녀의 얼굴도 엉망이건만, 다시는 말썽 피우지 않겠다며 아빠한테 애걸애걸한다.  왜 그리된 것인가? 



  토요일 새벽 다섯시가 되서야 책상머리에 앉았다. 그냥 혼란스러웠던 시간들 담아두며 새 아침 맞이하려 했지만, 그만 얼굴 책상에 묻고 말었다.  늦게 시내에 들어서서 은행문 닫기 전에 몇군데 비지땀 흘리며 들리곤 마감시간 넘겨 수표 몇장 건네 주었다.  몇십만원의 손해 뻔히 보면서 그 놈의 인간관계 때문에 주판을 내덩기 쳐야 했던 시간이었다. 


  점심 채 떼우지 못한채 고속도로를 들어섰다.  생각보다 막히지 않은 길을 달리건만 어쩔 수 없이 무겁게 내리 깔리는 눈꺼풀 올기기 조차 힘들다.  어둠이 시나브로 찾아 들때서야 광주엘 도착했다.   왠지 불편하게 느껴졌던 도시였지만, 비엔나레 한지 얼마 되지 않아서인지 도시의 모습과 터미날 맥주 광장에 있는 사람들의 표정에서는 '예향의 도시' 답게 친근감 느껴진다.  처음으로 발 내딛은 곳이었지만, 다시 찾아 보고 싶은 곳이다. 


  몇시간 일 마치고 밤 11시 다시 북으로 향한다.  바짝 뒤쫓아 오는 경주 번호 써진 자동차에 오기가 발동해서 처음 달려간 그 길을 시속 160키로로 다시 뒤쫓아 간다.  달려도 달려도 따라 잡을 수 없는 안타까움에 굽이진 길 뒤우뚱 거리며 달려 간다.  미친 짓이지~~~~


  관광버스 편으로 이미 속리산 어느 호텔에 도착해 있을 대학원 동기생들 틈에 끼어 자려면 그래도 새벽 두세시까지는 도착되어야 한다.  회비 내고 괜히 차 안에서야 잘 수 없지...


  거의 지나치는 차의 불빛 받지 못한 채 생소한 시골 길 달려 간다.   산등성이 위 간스레 내 비추는 달님은 날 그리고 나의 자동차를 하나의 달빛 물결의 은은함 속에 묻어 버린다.  새근 새근 잠들어 있는 대지의 숨결 들리는가?  하나의 점일 수 밖에 없는 나의 존재 자연의 품 속에 있음 느끼며 앞으로만 향한다. 


  노친네들이 끼어 있는 학생 무리는 꼭두새벽부터 문장대로 향한다.  몇년 만인가?   강산 변했을 세월이라지만 그 나무 그 골짜기는 그대로다.  지칠대로 지쳐버린 몸 애써 위로 위로 올리며 정상 바위 위에 다다르니 바람 한번 시원해서 좋다!


  생각하며 걷고 싶었던 산행이었지만, 그저 무념 무상 무색 무취!  그것이다!   그저 그 자리에 존재하고 그저 그 흐름 속에 있음 그 자체가 전부일 뿐이다. 


  무념 무상 무색 무취!  정녕 가슴에 와 닿은 말들이었다!


  돌아 오는 길은 또다시 그러했다!  막혀 버린 차들의 행렬 속에 유념 유상 유색 유취가 되어 버렸다!


  에고~~  내주 시험 걱정 태산이다.  한줄의 책도 보지를 않았는데...  정신 차려야지...  기필코 내일부턴 ...

내일 내일이 벌써 얼마나 흘렀던가?  에고~  왜 학교는 가가지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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