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리즘

방백

묵향의 이야기 2007. 3. 20. 19:54
 

   눈이 오고 있어요.  잠시 동쪽 하늘 낮은 곳 구름에 다소곳 가려져


 붉은 둥근 모습만 보였던 햇님은 진작에 찾을 수 없고, 거리를 덮어


 버린 잿빛 하늘만 나의 가슴에 내려 앉아 버렸어요.


   모처럼 일찍 나만의 자리에 와 새로이 찢어내는 달력을 아쉬워 하며


 무언가 정리하고 마무리해야겠다는 마음이었지만, 나의 몸은 그저 좁은


 이 자리를 서성일 뿐 마음은 가슴 깊이 파여져 버린 빈 구석 속으로 나의


 영혼을 감추려고만 해요.


   이제 아득하게만 느껴졌던 '불혹'이란 단어를 맞이해야 할 마지막


 한해의 시작이었기 때문인가요?  공허하기만 한 마음은 또한 혼돈스럽기


 조차 하군요.


   삶의 뒤안길 바라 볼 수 있을 만큼 비바람 맞으며 뿌리 내린 나무지만


 그래도 가끔은 모진 바람에 뿌리 뽑혀 나가 저편 다른 언덕으로 다가가고


 싶을 때도 있답니다.  차라리 꺾어진 나무가지와 뿌리에 응어리진 '진'이


 맺힌다 해도 아직도 가슴엔 정열이 남아 있기에 더 높은 곳을 향하고 싶은


 가 봅니다.   자유의 시간 맞은 지 삼년이 흘렀음에도 내가 이룬 것은 아무


 것도 없기 때문일겁니다.  편한 그 자리에서 벗어 나고 싶은 충동 날 감싸


 게 되는 이유는...


   때론 쉬고 싶습니다.  풀 헤치고 찾아낸 옹달샘에서 가득 타버린 가슴을


 촉촉히 적시고 싶습니다.  하지만 알고 있어요.  난 언덕 위의 나무일 수


 밖에 없다는 것을...  생활도 삶도 그 자리에서 이어가야만 하니까요.


 때문에 찾아 나설 수 없는 것이겠지요.   다가 오기만을 기다릴 뿐이지요.


   조용했던 사무실로 걸려온 전화와 잡다한 일들 때문에 제법 시간이 흘


 렀습니다.  이제는 하늘의 눈도 멎은지 오래 되었고요.


   관념 일 수 밖에 없는 마지막 날이지만, 그래도 마무리짓지 못한 일들로


 가슴 비어 버렸던 아침이었습니다.


   창문을 열어 보니 아직도 가는 눈발 이어지고 있군요.  삶은 쉬지 않고


 흘러가는 것인가 봅니다. 



  9701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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