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weet home

사랑하는 현주에게

묵향의 이야기 2007. 3. 23. 08:14
 


 우리 집에 보석처럼 항상 빛나는 현주! 네가 우리 곁에 와 준 지 4돌 째 되는 날이구나. 아빠가 이 책을 탈고하고 있을 때 너는 엄마의 심장 소리를 자장가 삼아 세상을 준비하고 있었단다. 몇 달 뒤 새로 태어날 아기에게 남겨주고 싶은 이야기들 있었지만, 어여쁜 공주가 될지 멋진 왕자가 될지 알 수 없었기에 현주에게 남겨지는 편지는 담지 못했었단다. 그러나 이제 할아버지를 추모하며 펼쳤던 이 책을 중판하면서, 현주를 향한 귓속말을 담게 되어 기쁘구나.


 엄마 아빠는 오빠 언니도 행복하게 살아가길 많이 바라지만, 현주에 대한 꿈은 특별할 수밖에 없단다. 그 이유는 우연히 현주가 우리 곁에 오게 된 것이 아니라, 한 아기를 이 세상에 발을 내딛게 해서 그 아기가 자라나고 살아가면서 그리고 또다시 새로운 생명을 이어가면서 번민과 고통보다는 기쁨과 행복 속에서 생이 이어갈 수 있는 것인지 아빠는 많은 고민을 한 뒤 아기를 갖기로 결심했던 것이고, 엄마 또한 두 번의 유산 끝에 너를 잉태하여 거의 한 달간 네가 자리를 잡아 가도록 병원에 누어 있어야만 했었기 때문이야.


 하지만 현주는 우리 가족이 소중한 추억을 더했던 정동진 일출과 태백산의 티 없는 눈꽃 축제를 다녀왔던 그 날 2001년 2월 18일 잉태하였고, 또한 현주 너를 포함하여 우리 가족 모두가 가장 아름다운 추억을 남겼던 카나다 여행 중 엄마의 포근한 뱃속에서 가정의 소중한 행복을 함께 했기 때문인지, 현주는 지금 우리 집에서 가장 웃음꽃을 피어나게 하는 보석이 되어 있단다. 아마도 네가 우리 곁에 와 주지 않았다면, 우리의 행복은 지금보다도 많이 줄어 들었을 거야.


 그러나 아빠 엄마는 항상 미안한 마음을 갖고 있단다. 젊은 아빠 엄마들처럼 너의 눈높이에 맞춰 너를 가꾸어 주지 못하고, 어느 날인가 친구들의 부모보다도 훨씬 늙은 아빠 엄마의 모습을 감추고 싶어 할지도 모른다는 생각은 너의 앞날을 먼저 걱정하지 않을 수 없단다. 하지만 한편 늦둥이 현주에게는 언니 오빠가 누리지 못한 커다란 선물이 있단다. 그것은 바로 오빠 언니의 사랑이야. 이제 아빠보다 큰 키를 뽐내며 제법 가장의 역할도 해내고 있는 오빠는 아빠보다도 더 커다랗고 깊은 마음으로 현주를 보살펴 주고 있고, 막내에서 둘째가 되어 버린 언니는 떼쟁이 현주의 응석을 모두 받아주며 언니의 많은 시간을 쪼개어 현주의 놀이친구가 되어 주곤 한단다.


 사랑하는 현주야! 지금 문득 그 때 생각이 나는구나. 이제 3년 뒤에 현주가 다니게 될 초등학교 운동장이 바라다 보이는 외할머니 댁에 현주와 단 둘이 걷게 되었을 때야. 네가 신발을 신고 걷기 시작한 후 처음으로 옆에 서 있는 아빠의 가장 긴 손가락 하나를 간신히 잡았을 때였지. 아무리 아빠가 걸음 거리를 좁게 해도 현주 네가 아빠의 걸음을 쫓아오기 힘들어 하기에, 앉은뱅이걸음을 걸으며 아빠는 너의 발걸음과 너의 눈높이에 맞추려 했었단다. 하지만 아빠는 더 넓고 더 먼 세상에 익숙해 있기에 결코 현주가 느끼고 생각하는 그 세상에 아빠는 맞출 수 없다는 것을 깨달았단다. 그러나 아빠는 노력할거야! 아빠가 쉰 살 되는 해에 너의 손을 잡고 초등학교 입학식에 가겠지만, 네가 나이든 아빠를 부끄러워한다면 잠시 숨어 줄 거고, 네가 아빠를 부른다면 언제나 다가설 수 있도록 항상 곁에 가까이 있을 거란다.


 하지만 해맑은 늦둥이 현주를 바라보면서 항상 걱정되는 것이 있단다. 적극적이고 욕심도 많고 총명하기에 현주는 더 넓고 더 높은 세상을 향하여 스스로 잘 자라나겠지만, 아빠가 언제까지 너의 곁에 머물러 있어줄지 그리고 현주가 성숙한 여인이 되어 생애에서 가장 행복한 날을 맞이하게 되는 그 날 아빠가 곁에 있어줄지에 대한 걱정을 오빠 언니를 바라 볼 때는 느끼지 못하지만, 현주 너의 밝은 미소를 바라볼 때마다 아빠의 근심이 때때로 가로 막게 되는구나. 그리고 할아버지 할머니가 계셨을 때 또 다른 손주의 모습을 보여 드리려 했었지만, 아빠 엄마의 정성 부족인지 두 분 당신들이 떠나신 뒤에야 너를 우리 곁에 두게 되었던 것이 못내 아쉽기만 하구나. 언니 오빠는 할아버지 할머니의 사랑을 듬뿍 받았건만, 두 분 곁에 있는 현주의 모습을 사진으로조차 남길 수 없었던 것이 무척 가슴을 아프게 하는구나. 비록 현주가 당신들의 따스한 손길을 느끼지 못했다 할지라도, 훗날 현주가 자라나서 어른이 되었을 때는 할아버지 할머니의 은혜와 사랑을 분명 느끼게 될 거야.


 언제나 엄마 품에 안겨 있었지만, ‘엄마’보다 ‘아빠’를 먼저 불러주었던 나의 현주! 지금은 우리 집의 재롱둥이로 머물러 있지만, 너의 키가 조금 더 커지게 되면 아빠의 멋진 친구가 되어 주리라 믿어. 이제는 아빠 엄마의 품을 떠나려 하는 오빠 언니 대신에 우리의 손을 잡고 여행을 다니며, 사라져가는 그리고 변해가는 또다시 새롭게 만들어지는 세상을 둘러보면서 함께 너의 어린 시절의 추억으로 가득 메우게 하고 싶구나. 먼 훗날 짧았던 아빠의 사랑을 그 추억으로 메어주길 바라고, 부족한 사랑은 현주 스스로의 행복을 키워가며, 깊은 아빠 엄마의 사랑을 언제까지나 가슴에 담고 살아가는 아름다운 여인으로 자라나 주길 바란단다. 현주야! 사랑해.


 2005년 11월 5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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